글로벌이냐 미국 로컬이냐

국내 소프트웨어 회사 치고 글로벌을 꿈꾸지 않은 회사가 있을까? 개발자들도 다들 글로벌을 꿈꾼다. 근데, 이상하게도 글로벌을 목표로 하는 회사나 사람 중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

글로벌 진출을 하려면 미국에 가서 해야 한다

나는 이 주장에 대해 반박을 하고 싶다. 우선,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왜냐고 물어보면 다음과 같은 논리를 제시한다.

  1. 미국에서 성공하지 않으면 글로벌에서 성공했다고 할 수 없다.
  2. 미국에서 성공하려면 미국 문화를 이해해야 하므로 미국에 가야한다.
  3. 고로, 글로벌에서 성공하려면 미국에 가야 한다.

2+. 여기에 덧붙여, 단순히 미국에 가는 것 뿐 아니라 미국 문화를 잘 이해하는 미국인을 채용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하기도 한다.

 

난 여기서 1, 2번이 모두 틀렸고, 그래서 1,2에서 이끌어낸 결론도 틀렸다고 생각한다.

 

우선 1번. 미국에서 성공하지 않으면 글로벌이 아니다?

반대로 질문해보자. 미국 이외의 모든 나라에서 흥한 서비스가 있으면 그건 글로벌에서 성공한 것인가, 아닌가? 라인이 쭉쭉 뻗어나가서 아시아 뿐 아니라 유럽, 남미 시장까지 다 장악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라인은 글로벌에서 성공했다고 인정할 수 있는가? 아마도 대부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다들 이런 말도 안되는 주장을 근거라고 대는가?

거기에는 어느 정도 이유가 있다. 우선, 미국에서 흥한 서비스는 다른 나라로 퍼져나가기 쉽다.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미국은 세계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작이 어디가 되었든 미국을 점령하고 나면 그 다음은 쉽게 다른 나라로 확장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미국은 글로벌 진출을 위한 최고의 디딤돌로는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미국이 가장 hot한 시장이라는 것이다. 뛰어난 IT 기업들이 가장 먼저 서비스를 내놓는 곳이 미국 시장이니만큼, 거기서 증명한다면 상당히 좋은 아이템이라고 증명하는 셈이니 다른 곳에서도 통할 확률이 높은 것이다.

그러니까, 1`. 미국에서 통하는 서비스라면 글로벌에서 통할 확률이 매우 높다라고 한다면 이건 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위의 3단 논법에서 1번을 거론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런 논리를 펼친다. 안타까운 건, 여기까지는 참이라고 하더라도 저 명제의 가 참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저 명제는 미국에서 통하지 않는 서비스가 글로벌에서 통할지 아닐지에 대해 아무 것도 말해주지 못한다. 지금껏 글로벌에 대해 위의 3단 논법을 주장한 사람들에게 1의 근거를 요구하면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1`의 근거를 말했다. 반복하지만 1`가 참이라도 1이 참이 되진 않는다.

고로, 1번 명제는 틀렸으므로 저 3단 논법은 이미 틀렸다. 그러나, 사실 더 중요한 오류는 2번에 숨어 있으므로 2번까지 헤집어 보자.

 

2. 미국에서 성공하려면 미국 문화를 이해해야 하므로 미국에 가야한다.

이 명제에서 가정하고 있는 것은 A 나라에서 성공하라면 A 나라의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내가 2번 명제를 반박하기 쉽게 만드려고 일반화시킨 게 아니고, 2번 명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저 명제를 일반론으로 믿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그 나라에서 성공하고 싶으면 그 나라의 문화를 잘 이해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는 반문도 많이 받아봤다.

자, 이것도 반대로 질문해보자. 스티브 잡스가 동양 철학에 심취한 적이 있어서 아시아를 잘 이해했기에 아이폰이 한중일에서 한 때나마 대박을 냈었다고 생각하는가? 야후는 대체 일본에 대해서 뭘 알았기에 일본 시장을 장악했었는가? 구글은 전 세계 각국의 문화를 잘 이해해서 전 세계 검색 시장을 제패했는가? 페이스북은? 트위터는?

그야말로 글로벌 서비스의 존재 자체가 2번 명제를 몸으로 반박하고 있다. 그 나라에서 성공하기 위해 그 나라의 문화를 잘 이해해야 한다면 글로벌 서비스는 존재할 수 없다. 주장 자체가 모순인 것이다. 드랍박스는 대체 미국의 무슨 문화에서 탄생했는데? 이베이는 미국의 문화를 잘 이해했기 때문인가? 아마존은 미국 문화에서만 발생할 수 있는 독특한 서비스인가?

이것은 서비스의 카테고리 분류 실패에서 오는 오류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오픈 테이블은 성공했고, 한국에서 포잉은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여기에는 문화의 차이가 존재한다. 괜찮은 레스토랑 찾아서 식사하려면 일단 차 타고 나가야 하는 미국과 도심에 맛집이 밀집해 있는 한국의 차이가 있다. 밥 한 번 먹으려면 예약해야 하는 나라와, 데이트할 때만 예약하면 되는 나라의 차이다. 그런데, 소셜 커머스는 어떤가? 그루폰의 모델을 그대로 카피한 티몬과 쿠팡은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 비즈니스 모델은 미국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인가? 반대로 이 모델을 한국에서 발굴해서 미국에서 런칭했으면 한국 사람이 했으니까 실패했을까?

글로벌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글로벌에서 통하는 제품을 만든다는 것은 세계 각국의 문화적 차이와 큰 상관이 없는 인류 공통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제품을 만든다는 것이다. 위대한 IT 기업은 모두 그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에 글로벌 기업이 된 것이지, 미국 문화를 잘 이해했기 때문에 글로벌 기업이 된 것이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미국 문화를 잘 파고들어서 이루어낸 성공은 글로벌 성공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미국인만의 문제를 해결한 제품을 만들어낸다면 그게 글로벌에서 통할지 아닐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래서 난 이건 오히려 정반대라고 생각한다. 미국인이 미국에서 만들고 미국에 출시해서 성공시킨 서비스가 글로벌 확장에 성공할 확률 vs 한국인이 한국에서 만들고 미국에서 출시해서 성공시킨 서비스가 글로벌 확장에서 성공할 확률. 어디에 걸겠는가? 난 당연히 후자다. 후자가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제품일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고로, 미국에 가서 미국인도 채용하고 미국 문화를 이해하면서 해야 글로벌 성공을 이뤄낼 수 있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 안티 글로벌이나 다름 없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또 이런 주장이 있다.

 

미국 이외에서 만든 서비스가 미국에서 흥한 사례가 있는가?

거의 없다. 작은 사례들은 많이 있지만 페이스북, 구글, MS, 애플, 아마존, 이베이, 넷플릭스 이런 수준으로 성공한 사례는 아직 없다. 근데 그게 왜? 카톡, 라인 이전에 한국 서비스가 해외에서 성공한 적이 있었나? 그래서 라인이 해외 진출 안했었더라면?

그리고 제품을 소프트웨어에서 조금만 넓혀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삼성전자는 여전히 핵심 제품 개발을 수원에 있는 연구원들이 진행하며, 이들이 제품 개발을 위해 해외 문화를 체험한다든지 하는 일은 없다. 그저 아이폰을 베낄 뿐. 그럼에도 갤럭시 S는 엄청난 글로벌 성공을 이뤄냈다. 만약 삼성이 애플 따라잡자고 미국에 연구소 세우고 미국 개발자 채용하고 그랬으면 과연 지금처럼 아이폰을 제치는데 도움이 되었을까?

소프트웨어 안에서도 게임을 본다면 대박은 얼마든지 많다. 왜 굳이 게임과 비 게임을 나눠야 할까? 오히려 게임이 더 문화적 차이가 크게 작용하는 분야 아닌가? 그런 게임에서도 한국에서 만든 게임이 미국에서 대박 친 사례가 여럿 있다면 다른 소프트웨어가 안될 이유는 무엇인가?

 

카톡은 왜 미국 시장에 파고들지 못하는가?

뭐, 내가 카카오에 있으니까 이번 카톡도 생각해보자. 카톡은 왜 미국 시장에 파고들지 못하는가? 카톡은 미국에 파고들지 못했으니까 글로벌 서비스가 될 가능성이 없는 서비스인가? 라인은 그저 일본과 동남아에만 통하는 서비스인가?

이건 가치 가설과 성장 가설의 차이를 혼동하는데서 오는 오류다. 구글 플러스를 보자. 구글 플러스는 출시되고 나서 제품 자체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많이 받았다.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장점은 모두 흡수하고 단점은 다 해소했으며, 사진, 채팅 등의 연동으로 더 강력해졌다. 근데 왜 구글 플러스는 성공하지 못했는가? 구글 플러스는 제품이 사실은 나쁜 것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없었다면 아마 빠른 속도로 SNS 시장을 장악했을 것이다. 그런데 경쟁자를 어떻게 제칠지에 대한 고민 없이 제품만 잘 만들려고 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

카톡도 마찬가지다. 아니, 문자를 공짜로 주고 받는데 무슨 문화가 필요한가? 이건 한국에서 만들어낸 자랑스러운 글로벌 서비스다. 글로벌 서비스로서의 가치가설은 이미 라인과 함께 증명했다. 단지 성장 가설이 증명되지 못한 것 뿐이다. 미국시장에 파고들지 못한 것은 카톡이 부족해서가 아니고 페이스북 메신저가 이미 시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카톡이 미국 시장 진출을 하려면 페이스북을 어떻게 이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고, 어떻게 글로벌에 통할 제품을 만들어낼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 페이스북 메신저가 빠른 속도로 카톡을 카피하고 있지만, 아직 단일 제품으로만 비교하면 페이스북 메신저보다 카톡이 훨씬 낫다. 하지만 이 기회는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길어야 1년일 것이고, 그 때까지 카톡이든 라인이든 미국에 성공적으로 진출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꽤나 오랫동안 페이스북을 따라잡을 기회는 오지 않을 것이다.

흔히 메신저 시장은 친구가 다 엮여 있어서 쉽게 바뀌지 않는 시장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이것도 사실과 다르다. 국내 메신저 시장만 봐도 초기에 인터넷 부흥기에 ICQ에서 MS가 메신저 밀면서 급격히 MSN 메신저로 이동했고, 또 네이트온이 등장하면서 다들 네이트온으로 이동했다. 그러다가 모바일 세상이 되면서 카톡으로 이동했고, 또 카톡의 속도가 문제될 때는 대거 틱톡으로 이동하는 현상도 보였다. 프리챌에서 싸이월드로, 다음 카페에서 네이버 카페로, 그리고 다시 페이스북으로 유저들은 끊임 없이 더 좋은 서비스로 이동한다. 오히려 친구가 엮여 있기 때문에 한두 명의 얼리어답터가 많은 친구들을 쉽게 움직이는 건지도 모른다. 이미 우리는 "야, 틱톡이 훨씬 빨라, 이제 틱톡 써"하는 모습을 목격한 바 있다. 네이버 카페에서 페이스북 그룹으로 옮기는 것도 대부분 한두 명이 주장해서 다들 옮겨간다.

그래서, 페이스북 메신저가 아직 부족한 지금이야말로 카톡과 라인이 온 힘을 다해 뛰어들어서 경쟁해야 할 시점이다. 근데 대체 왜!!!! ㅁ나ㅣ어헤ㅐ80ㅗ2ㅝㅁ너ㅟㅜ.ㅓㅣㅏ ㅁ나

 

한국 개발자들 글로벌에 대한 이해도 있고, 서비스나 UX에 대한 안목도 높고, 개발도 잘한다. 좀 믿고 맡겨 봐라. 어설픈 미국 개발자 채용할 생각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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