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_쉬게_하자

 

머리에 너무 생각이 많이 차서 CPU 사용율이 100%에 달했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러면 버벅거리면서 응답 속도가 느려지고 효율이 떨어진다. 다시 CPU 사용율을 떨어뜨려야 한다. 생각할 꺼리가 쌓여 있을 땐 의식적으로 머리를 비우려고 해도 좀처럼 CPU 사용율이 떨어지지 않는다. 한 태스크를 강제 종료 해도 다른 태스크가 금방 CPU를 차지한다. 이럴 때 좋은 방법은 IO bound job을 실행하는 것이다. IO bound job을 실행하면 IO의 속도가 CPU의 속도보다 훨씬 늦기 때문에 그 속도 차이만큼 CPU가 쉴 수 있다. IO bound job은 대화일 수도 있고 무언가 단순하지만 약간 머리를 써야 하는 일, 혹은 산책도 될 수 있다. 대화도 분명 CPU를 많이 쓰지만 생각의 속도는 말의 속도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똑같은 태스크라도 대화를 하면 CPU 사용율이 좀 내려 간다. 운동도 확실하게 CPU 사용율을 떨어뜨리는 방법이다. 운동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운동은 그 자체가 CPU를 어느 정도는 사용하지만 높은 점유율을 필요로 하진 않는다. 인간의 대뇌는 싱글 태스킹 밖에 안되기 때문에(내부적으로 멀티 쓰레드라 하더라도) 운동처럼 IO가 많으면 다른 생각은 하기 어렵다. 그래서 운동 태스크에만 CPU를 쓰게 되고 운동 태스크는 IO bound기 때문에 CPU가 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설겆이도 이렇게 보면 그렇게 시간 낭비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도 받을 수 있다.

산책은 좀 특별하다. 산책할 때는 선택이 가능하다. 산책하면서 다른 생각을 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운동의 강도가 높지 않고 워낙 자연스럽게 하는 동작이라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딱히 IO bound가 되는 것 같진 않지만 산책이라는 행위 자체가 CPU를 오버클럭하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throughput은 유지하면서 CPU 사용율을 떨어뜨릴 수 있다.

또, 산책을 할 때는 눈앞의 풍경이 바뀌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몰아 내기가 비교적 쉽다. 사람은 CPU 자원을 [시간당 흥미의 밀도]에 따라 할당한다. 그런데 시각적인 자극은 그냥 생각만 하는 것에 비해 [시간당 흥미의 밀도]가 높다. 그래서 대기 중인 생각에 CPU를 빼앗기지 않고 쉴 수 있다. 이 두 가지가 내가 산책을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다.

그런 면에서 휴식이 가만히 앉아서 쉬는 것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대기 중인 생각이 많다면 가만히 앉아서 쉬어 봤자 금방 CPU가 잠식 당하고 원하는 휴식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실상 지식 노동자에게 필요한 휴식은 육체적 휴식이 아니라 뇌의 휴식이다. 휴식 시간에는 무조건 돌아다녀야 한다.

좌뇌와 우뇌를 번갈아 가면서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대화는 아마도 우뇌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좌뇌의 사용율이 떨어지는 것이리라. IO bound job이란 것도 결국 뇌의 다른 부분을 사용하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공부할 때도 이런 전력이 꽤 효과가 있었다. 공부 시간표를 수학 물리 화학 국어 영어 이런 식으로 잡는 것보다는 수학 국어 물리 영어 화학 이런 식으로 섞어주는 것이 훨씬 집중력이 오래 가고 효과가 있다. 아마도 뇌가 부분적으로나마 쉴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 인생을 그렇게 빡빡하게 살 필요는 없다. 굳이 뇌의 최대 효율을 발휘하려고 애쓰기보다 그냥 제대로 쉴 수 있는 방법을 하나 쯤 갖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나에게는 그것이 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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