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여를 준비해왔던 스타트업을 위한 웹 개발 기초를 오늘 진행했다. 결과는 경기장 밖에서는 실패, 경기장 안에서는 성공.
우선 좋은 것부터 이야기하자면, 강의 주제의 목표를 제대로 달성했다. 개발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 하루 만에 기본적인 기능이 탑재된 웹사이트를 개발해내는 것. 실제로 프로그래밍 언어란 게 뭔지 모르는 수강생도 있었지만, 훌륭하게 예제를 소화해냈다. 개발자가 아니라도 하루 만에 웹 개발의 기초를 배우는 것은 가능하다.
강의 평가도 꽤 좋았다. 점수는 다 5점 척도. 주관식은 프라이버시 문제상 공개하지 않음.
- 이 강의가 수강한 목적에 도움이 되었나요? => 4.5
- 이 강의 이후 심화과정도 수강할 생각이 있나요? => 4.5
- 교육과정의 가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3.5 (1:비싸다, 5:싸다)
- 스타트업을 하고 싶어하는 지인이나 동료들에게 이 강의를 추천하실 의향이 있나요? => 5
우려했던 바와 달리 결제를 한 사람들은 22만원이라는 가격을 비싸게 느끼지 않았다. 아예 무료라면 모를까, 돈을 내고 배운다면 이 정도는 내야지 같은 느낌이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물론 나도 프로그래밍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하루 만에 여기까지 할 수 있는데 비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NPS를 의도한 질문인 추천의향은 전원 5점을 줬는데, 사실 여기에는 약간의 편향이 있어서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면 안될 것 같다. 강의 인원이 소수다보니 약간 사적인 이야기도 나누었고, 그러다보니 어느 정도 인간 관계가 형성이 되서 심리적으로 더 좋게 평가했을 가능성이 있다. 어쨋든 정말로 추천하면 참 좋겠다.
잘된 부분들을 보면, 일단 강의 교재 준비는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초보자가 이해할 수 있는 스텝의 크기를 정확하게 분석했다. 이건 내가 자랑하는 능력 중 하나이며, baby step에서 배운 것이다. 고수는 일의 크기를 자유자재로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스피드를 내야 할 때 big step을 밟으면서도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baby step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 이게 가능하기 때문에 초보자에게도 일을 시킬 수 있는 것이지. 물론 교재와 소스코드는 tutorial은 아니다. 혼자서 보고 따라하는 게 아니라 강의에서 활용하는 것을 전제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것만 보고 초보자가 따라할 수는 없다. 그래서 자료 보고 강의는 안 올까 하는 걱정을 하지 않고 강의자료와 소스코드를 모두 미리 공개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계산대로였다.
에러 메세지를 보고 다음 스텝을 결정하게 만드는 시나리오도 꽤 적중했다. 단계를 밟아나갈 때마다 에러 메세지가 바뀌는데, 에러 메세지가 나쁜 것이 아니라 정보를 담고 있으며, 다음 할 일을 가르쳐준다는 점을 인식시키는데 성공했고, 두어 번은 수강생이 스스로 다음 할 일을 짚어내기까지 했다. Django tutorial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지.
반복 요소도 적당히 효과를 봤다. 짧은 시간의 강의를 하다보면 이것저것 소개만 하다보니 강의 중에는 복습이 안되기 쉬운데, 앞에서 배운 내용을 뒤에서 다시 반복할 수 있는 기회들을 꾸준히 만들어서 처음엔 계속 실수하던 것을 나중에는 스스로 해결하기도 했다.
계산을 빗나간 부분은 수강생들의 진도가 저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따라하기도 바쁜데, 어떤 사람은 지루할 수 있다. 게다가 수강생들의 진도를 눈으로 확인하기가 어려워서 일일이 물어봐야 하다보니 더 어려웠다. 그나마 수강생이 적어서 오히려 다행이었달까. 10명 다 찼으면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부분은 대책이 필요하다.
또 하나 몰랐던 사실은, 강의를 하면 목이 아프다는 것이다. 원래는 이 강좌를 시발점으로 일주일 짜리 강좌도 만들려고 했는데, 내가 일주일 연속으로 강의를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 차크라 소모를 생각하면 한 달에 2회가 한계인 듯.
아뭏든, 여기까지만 보면 대성공이지만, 큰 그림으로 보면 대실패다. 왜냐면, 10명 정원인 강의에 2명 밖에 안 왔기 때문이다. ㅠㅠ 참석한 사람은 사전에 결제한 두 명 뿐이고, 대기자에 있던 사람들은 끝끝내 결제도 하지 않았고 참석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온오프믹스의 유료 모임에 미결제 대기자로 있는 건 참석 안함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그래서 두 명 밖에 안되는데 모임 장소는 더 작은 곳으로 바꾸지 못해서 모임 장소 비용과 온오프믹스 수수료로 비용이 나가고 나면 남는 돈은 오늘 하루치의 인건비도 안된다. 강의 준비는 거의 풀타임 3일치인데...
그래서 사실 에브리클래스처럼 수강 정원이 차야 강의를 하는 방식이 가능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이건 사실 반대로 생각하면 실패에 대한 비용을 줄이는 것이지 성공을 위한 방법은 아니다. 더 좋은 것은 기간 내에 수강 정원이 차고, 다 참석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못했던 것이 실패의 핵심이다.
정원이 다 차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겠다. 우선 핵심 가설, 프로그래밍 경험이 없지만 배워서라도 자기 아이디어를 실현해보고 싶은 사람이 많다는 것이 틀렸을 수 있다. 그것보다는 개발 할 줄 아는 사람을 구하는 게 더 쉽다고 생각할 수 있을 듯. 만약 이 가설이 틀렸다면 이 강의는 여기서 스톱해야 한다.
핵심 가설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홍보 부족일 가능성도 크다. 온오프믹스 대기자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컨택해온 대기 수요도 꽤 많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홍보가 다섯 배 더 잘되었으면 정원을 채웠을 거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내 SNS만 홍보한 것은 너무 부족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내가 SNS를 넘어선 효과적인(그러면서 돈 안드는) 홍보 방법을 모른다는 문제는 극복해야 할 것이다.
핵심 가설이 맞고, 홍보도 많이 되었지만 하루 만에 비 개발자가 개발을 배우는 게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을 수도 있다. 홍보의 양과는 별개로 홍보의 설득력이 부족했을 가능성이다. 이건 지난 번 시범 강의와 이번 강의 평가를 공개하면 많이 보완할 수 있다.
평일 강의라는 점도 제약일 수 있다. 몇몇 지인과 선화가 이 문제를 언급했다. 이건 토요일 강의를 해보면 알겠지.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원래 이 강의를 내가 기획한 것은 안정적인 수입원을 찾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2년 후에 대박 나는 것, 내일 10원 벌기 시작할 수 있는 것, 이번 달에 수백만원 벌 수 있는 것,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눠서 분산 투자를 하고 있는데, 세번째 카테고리에 속했던 교육 사업이 지금 상태로 봐서는 두번째 카테고리에 더 가까운 일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럼 세번째 카테고리가 비는 문제도 생길 뿐더러, 두번째 카테고리의 다른 아이템과의 경쟁 문제도 생긴다. 말하자면, 이 교육사업은 안정적인 수입원이 아니라 스타트업인 셈이다. 사실 다른 pros & cons는 다 예상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는데, 이 점 하나만큼은 오늘 해보고서야 깨달은 것이다. 생각해보면 전에도 깨달을 수 있었던 문제인데, 역시 난 내 손으로 해봐야 되는 타입인 듯.
그래서 두 가지 방향으로 생각 중이다. 일단은 2차 강의는 한 번 더 해봐야 한다. 핵심 가설 이외의 문제점들은 일단 다 극복 가능해보이므로 거기까지는 시도해본다. 두번째는 방향을 살짝 틀어서 동영상 강의로 제작하고 vod나 유튜브 광고 수입을 노려보는 것이다. 여기까지 해보고 나면 아마 접을지 말지 시원하게 결정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고보면 예제 소스를 먼저 만들어 본 것, SNS에서 의향 조사를 해본 것, 시범 강의를 열어본 것 등등 모두 린 스타트업 방식으로 해왔는데, 그래놓고도 이게 스타트업이 아니라 안정적인 수입원이라고 생각했다는 게 참 멍청했던 것 같다;; 당연히 처음부터 스타트업으로 분류될 일인 것을.
어쨋든 이번 주 목표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제대로 달성했다. 슬프지만 뿌듯한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