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이_보고_있다

 

[프로페셔날의 조건]에 나온 이야기.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위에는 페이디아스라는 조각가의 작품이 서 있는데 지금도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런데 정작 아테네의 재무관은 작품료 지불을 거절했다. "조각들은 신전의 지붕 위에 있고 신전은 아테네의 가장 높은 언덕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조각의 전면 밖에 볼 수 없다. 그런데 당신은 아무도 볼 수 없는 조각 뒷면의 비용까지 청구했으니 줄 수 없다."가 이유였다. 이에 대해 페이디아스는 이렇게 답했다. "아무도 볼 수 없다고? 당신은 틀렸어. 하늘의 신들이 볼 수 있지."

그리고 이어서 피터 드러커는 사람들로부터 "당신이 쓴 책 가운데 어느 책을 최고로 꼽습니까?"라고 물으면 "바로 다음에 나올 책이지요"라고 대답한다는 말을 남겼다.

프로 바둑 기사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바둑 해설을 보다보면 [정석에 대한 오해]와는 달리 프로 기사들의 유연한 사고 방식이 참 많이 느껴진다. 특히 포석 단계에서는 이렇게 두어도 한 판의 바둑, 저렇게 두어도 한 판의 바둑이라는 말처럼 유연성이 많이 강조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기사들은 포석 단계에서도 신의 한수를 추구한다. 언젠가 조훈현 9단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가볍게 이야기할 때는 이렇게 두어도, 저렇게 두어도 한 판의 바둑이라는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은 분명히 최선의 한 수가 존재한다. 단지 찾지 못하고 있을 뿐이고 프로 기사들은 모두 그 한 수를 찾기 위해 끊임 없이 연구한다. 이런 자세가 아마도 젊은 기사가 득세하는 바둑계에서 환갑을 바라보는 조훈현 9단이 살아 남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나에게도 비슷한 욕망이 있다. 당장은 현재의 기술로도 한 판의 프로젝트를 제대로 해낼 수 있다. 하지만 늘 그 너머의 신의 한수를 찾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건 프로그래밍 언어가 되기도 하고 프레임워크가 되기도 하고 OS가 되기도 한다. 이런 욕망들이 기술의 발전을 이끌고 있는 것이리라.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