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2006-12-06

요즘 뭔가 내가 소모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여러 모로 생각해본 결과 가장 큰 이유는 퇴근 시간인 것 같다. 회사가 분당으로 이사간 후 퇴근 시간이 확 늦어졌다. 퇴근 시간인 7시가 되면 무언가 아쉬운 느낌이 들어서 조금 뭉기적 거리다보면 밥 안 먹을 때는 7시 반에서 8시 사이에 퇴근하게 되는데 집에 도착하면 9시가 넘는다. 밥 먹기엔 너무 늦은 시간. 그렇다고 밥 먹고 퇴근하면 9시 반은 우습게 넘는다. 그러면 나에게 주어진 자유시간(?)은 3시간도 채 안되는 셈이다. 하루의 일과에서 일과 잠을 빼버리면 너무 초라해진다. 이것저것 문어발처럼 많던 관심사도 대부분 접었다. 일에서 성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일하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닐 텐데...

얼마 전 원일이를 만났다. 이제 내 친구가 의대생이 아니라 의사인 나이가 되었다. 술 마시면서 들어보는 의사의 삶은 솔직히 그닥 부럽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주말은 그래도 쉬는 모양이지만 평일에 하루 10시간 이상 근무를 한다. 그래서 일은 재밌냐고 물어보니까 일도 재미 없댄다. 그 때는 그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오히려 좀 애처로운 느낌마저 들었다. 일도 재미 없고 평일엔 자기 시간도 없고 그럼 삶의 낙이 무엇일까.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랑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영주랑 같이 살면서도 정작 영주랑은 하루에 30분도 이야기하지 못한다. 예전엔 선화도 거의 매일 만났는데 요즘은 그러지도 못한다. 그러다보니 하루가 가는 게 아쉬워 일찍 자기가 싫어지고 이것저것 쓰잘데기 없는 것들을 하다가 늦게 자게 된다. 일이 아무리 재밌어도 내 가족, 내 친구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이것 뿐이라면 정말 슬픈 일이다. 정말 이것이 직장인의 운명일까?

얼마 전 워크샵 때 실장님이 본인이 정말 즐겁게 일할 수 있다면 하루 4시간 근무하게 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물론 연봉도 반 깎고-_- 당시에는 내 이야기도 아닌지라 별 생각 없이 넘겼는데 지금은 웬지 끌리는 제안이다. 당장의 돈 몇 푼보다 SustainablePace가 더 중요한 것 아닐까. 이게 어쩌면 정말 내 퍼포먼스가 더 높게 나올 수 있는 방법일 것 같기도 하다.

근데 이제 내가 자기 전에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알겠는데 회사에서 퇴근하기 전에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또 왜일까. 단지 프로젝트의 진행이 느리기 때문에? 아니면 회사 컴터가 집 컴터보다 좋아서? 이 문제는 좀더 생각해봐야겠다. 어쨋든 당분간은 7시 땡하면 칼같이 퇴근하는 습관을 다시 찾는 것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