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2007-02-15

오늘은 스타리그 이윤열 한동욱의 4강전, 그리고 W3 장재호의 1차 방어전, 그것도 세계 최강 그루비가 상대인 경기가 있는 날이다. 생방송은 7시 퇴근으로는 죽었다 깨나도 볼 수 없다는 게 한스럽다 ㅠ.ㅠ 오늘 울 플젝 릴리스만 아니었어도 휴가 쓰고 집에서 봤을 텐데 ㅠ.ㅠ 선화랑 발렌타인 데이트를 하고 집에 오니까 11시 40분. 티비 켜니까 스타리그 4강전은 4차전을 하고 있다. 이윤열이 2:1로 앞선 상태에서 4경기는 한동욱이 우세한 상태. 중계 멘트들을 들으니 정말 재미 있었을 것 같다. 어쨋든 5경기는 다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위안하고 W3 재방송 스케쥴을 보니 내일 낮 12시다. 어쩌라고! 다음 재방송은 일요일 11시인데 그 때쯤에나 볼 수 있을 것 같다.

스타 동족전은 재미 없다지만 테테전만큼은 타종족간 경기 이상으로 재미 있을 때가 있다. 타종족간 게임이 그냥 전투의 연속이라면 테테전은 정말 전쟁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바둑이랑도 비슷한 느낌이 들고. 게다가 이 두 녀석의 테테전은 어떤 테란보다도 재미 있을 것 같은 대결이다. 천재 테란이라는 수식어가 이젠 어린 느낌이 들만큼 많은 우승 경력이 있는 이윤열, 수비의 종족이라는 테란으로 막강 공격력을 보여주는 한동욱. 테테전 승률 1위야 이병민도 먹었다가 변형태도 먹었다가 하지만 5전 3선승제 치뤄본 적도 없는 변형태, 지난 대회 4강에서 이윤열에게 3:0으로 스윕당한 이병민과는 격이 다르다. 물론 최연성이라는 또 하나의 예외적인 존재가 있긴 하지만 요즘은 비리비리하니 이윤열 vs 한동욱은 지금 시점에서 분명 최고의 테테전 매치업이다.

그러고보면 온게임넷은 정말 대회마다 4강 이상에서는 흥미진진한 매치업이 나오는 것 같다. 어쩌다가 재미 없는 매치업이다 싶으면 월드컵에 밟혀서 소문나지 않고 넘어간다-_- 한동욱도 그 월드컵 시즌 우승자이긴 하지만 무명을 딛고 어설픈 애들 밟고 올라온 그 때와 지금은 기세가 다르다.

어쨋거나 5경기가 시작되었다. 재방송이지만 결과를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긴장되었다. 기세는 3,4경기를 연속해서 힘싸움으로 이긴 한동욱이 앞선 상태고 한동욱은 기세를 타면 정말 강하다. 하지만 맵은 알카노이드. 이윤열이 11승 1패를 하고 있는 맵이랜다. 묘하게 이런 맵들이 있다. 강민이 10연승을 달리고 최종적으로 14승 1패를 기록해 강민틴이라 불렸던 기요틴, 임요환이 14승 2패를 기록하면서 임포인트라 불렸던 알포인트, 최근에는 염보성의 승승장구로 염두대간이라 불리는 백두대간. 이처럼 자기 홈그라운드라고 할 만한 맵을 만나면 그 선수는 정말 강한 모습을 보인다. 같은 맵의 1경기에서 이미 이기기도 했고. 게다가 이윤열은 온게임넷에서 4강에 오른 대회는 모두 우승으로 마감했다. 아무래도 이윤열이 웬지 이길 것 같았다.

근데 경기가 시작되자 초반을 한동욱이 주도하기 시작했다. 이윤열은 더블 이후 2스타 레이스, 한동욱은 골리앗 드랍쉽. 이 맵에서는 에어 대 드랍으로 붙으면 드랍이 이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좀 불안했다. 그래, 난 이윤열 편이다. 한동욱이 먼저 4골리앗 실은 드랍쉽을 날렸는데 바락에 들켜서 골리앗 내려서 걸어가고 레이쓰 3기가 주변에서 맴돈다. 근데 이윤열은 주위를 맴돌기만 한다. 이 때 엄옹의 한 마디. "달려들질 않네요. 정말 격이 달라요. 저걸 참을 수가 있나요?" 정말 절대 공감. 나 같으면 무조건 클록킹하고 달려들어서 드랍쉽 잡고 빠지려 했을 것이다. 이윤열의 생각은 이런 것이다. 레이쓰가 달려들면 드랍쉽은 틀림 없이 잡을 수 있다. 근데 만약 한동욱이 빨리 반응해서 컴셋 찍으면 레이쓰 둘 이상 잡힐 가능성이 아주 높고 그러면 바로 다음 타이밍에 오는 3드랍쉽 12골리앗을 막을 방법이 없다. 그러면 겜 오버. 이걸 게이머들이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혹시 상대의 반응이 늦어서 운 좋게 잡고 빠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달려 들게 된다. 설령 상대가 그럴 리 없는 절정 고수라는 걸 알아도 그 유혹을 이기기가 쉽지 않다. 근데 이윤열은 3,4 경기의 혹독한 경험으로 한동욱을 인정한 것이다. 이런 게 정말 고수와 고수가 맞붙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그런 긴장감이고 이 맛에 온게임넷 4강, 결승은 챙겨보게 된다.

이윤열은 제공권을 기반으로 제2멀티를 하면서 조금 앞서 나간다. 근데 공격의 한동욱이 내버려 둘 리가 만무, 레이쓰의 경계가 늦춰진 틈을 타서 3드랍쉽을 제2 멀티에 드랍하는데 성공, 멀티를 날리고 수비하러 온 탱크까지 꽤 많이 잡는다. 여기서 이윤열은 또 한 번 천재의 감각을 보여준다. 여기서 레이쓰가 탱크랑 같이 어설프게 수비하러 왔으면 좀더 빨리 막긴 했겠지만 레이쓰 전멸하고 앞서와 마찬가지로 다음 드랍쉽에 망한다. 그래서 침착하게 돌아가는 드랍쉽만 잡아내고 탱크로만 수비한다. 머, 어쨋든 한동욱의 펀치가 한 방 제대로 들어가긴 했으므로 경기는 한동욱이 리드하기 시작한다. 이윤열이 제2멀티를 재건하지만 한동욱도 동시에 제2멀티를 해서 멀티는 팽팽, 병력은 한동욱이 우세한 상태. 한동욱이 또 펀치를 날린다. 이번엔 가까운 멀티 쪽 공격. 자리를 너무 멀리 잡아서 별 피해 못 줄 것 같았는데 교전에서 병력 이득을 상당히 많이 보고 레이쓰도 전멸시킨다. 앞서 레이쓰를 조심스럽게 다뤘던 이윤열이 이번에는 드랍쉽 잡기에 올인하면서 레이쓰를 그냥 다 내준 점이 약간 의아했는데 이후 상황을 보니 이해가 되었다. 어차피 레이쓰는 초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용도고 물량전 체제가 갖춰져서 대규모 드랍쉽 공방이 벌어지기 시작하면 레이쓰 컨트롤할 여력이 남지 않는다. 그리고 아까와는 달리 드랍쉽의 숫자를 줄이는 게 더 중요한 타이밍이 되었기 때문에 차라리 속시원하게 다 죽고 드랍쉽을 줄여서 이후 드랍쉽 대결에서 앞서려는 생각인 것 같았다.

전투에서 손해를 보는 바람에 이런 계산이 좀 빛이 바랬지만 한동욱도 자리 잡은 위치가 너무 멀어서 자원에는 타격을 주지 못했다. 그러면서 그 새 이윤열은 제3확장을 시도한다. 최연성이 생각나는 순간이다. 최연성은 한 곳에서 팽팽한 공방전이 일어날 때 거기에만 집중해서 전투를 이기려고 하는 게 아니라 전투는 최소한의 피해로 막으면서 확장을 시도한다. 그래서 국지전은 계속 지지만 나중에 어마어마한 물량으로 압도해버리는 것이다. 흔히 전투에선 지지만 전쟁에서 이기는 전략이 좀더 멋있고 훌륭한 것처럼 이야기를 하긴 해도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최연성이 그렇게 했고 그래서 한동안 패권을 잡았다. 이윤열도 최연성에게 그렇게 많이 당한 피해자였지만 이제 그걸 다 흡수해서 이제 한동욱에게 써먹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전투에서 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웬지 이윤열이 이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한동욱의 장기는 이곳 저곳을 타격하는 기동전. 앞선 전투에 시선을 붙잡아두고 바로 옆을 다시 돌파하러 간다. 근데 이미 이윤열은 멀티의 힘이 나오기 시작했고 3,4경기의 교훈인지 한동욱의 스타일을 간파, 예측하고 막아낸다. 이후 드랍쉽 공방전이 이어지지만 멀티에서 앞서는 이윤열이 계속 이득을 쌓아 나간다. 그러다가 또 한 번 드랍쉽으로 이윤열의 추가 멀티를 끊어내면서 같은 자원 싸움으로 만들어 또 역전하나 했으나 이미 쌓아놓은 이득이 많은 이윤열이 다시 한동욱의 공격 병력을 정리하고 바로 카운터 들어가서 승리. 이걸로 이윤열은 임요환 이후 두번째로 온게임넷 4회 결승 진출, 우승 다음 대회 결승 진출을 이뤘고 마재윤과의 본좌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기회를 잡았다. (변형태가 마재윤을 이길 리는 없으니까-_-) 데쓰노트와 딱 들어 맞는 지난 대회 결승 매치업도 정말 재밌었지만 이번에 마재윤이 올라오면 예전 최연성 대 박성준과 비슷한 느낌의, 진짜 본좌를 가리는 대결이 될 것 같다.

아훔, 블로그는 원래 이런 글 끄적거려야 되는데 요즘 방문객이 약간 많아지면서 좀 부담스러워서 이런 글을 많이 쓰질 못했었다. 오늘은 그냥 신경 안 쓰고 썼는데 쓰고 나니까 기분 좋다. 이제 그냥 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