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2007-03-10

NHN에서 한 번 정기 점검 때 회사의 수면실에서 잠을 잔 이후로 12시를 넘겨 일한 건 처음인 것 같다. 서비스 오픈 예정 시각은 토요일 새벽 5시. 우리 팀에서는 그닥 새로울 것도 없는 시간이다. 하지만 난 그 시간까지 버틸 수 없다. 지금 이 시간에도 열심히 일하고 있는 동료들을 뒤로 하고 집으로 왔다.

오는 길은 그닥 순탄치 않았다. 뻥뻥 뚫려야 할 고속도로가 갑자기 꽉 막혔다. 앞으로 보니 사고가 난 듯. 20분 가량일까, 정차 상태가 끝나고 통과하면서 보니까 차 두 대가 완전히 박살이 나 있다. 저런 상황에서 운전자가 살아 있을 가능성은 별로 없겠지. 웬지 착잡하다. 무슨 중요한 일이 있었길래 편안하게 잠들어 있어야 할 새벽 2시에 고속도로를 달리다 사고를 당해야 했을까.

요즘 우리_아이들에게_어떤_세상을_물려줄_것인가를 읽고 있다. 교통사고가 나서 사람이 죽으면 GDP가 올라가는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경제학적으로 교통사고는 바람직한 현상으로 취급되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누군가의 희생을 딛고 경제적 성공을 이룩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간주된다. 우리가 도시에서 누리는 풍요는 누군가가 새벽 2시에 고속도로를 달려야 하는 희생 위에 올라선 것이다. 그것이 그 사람의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이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새벽 2시에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이 아니었다 해도 하루 14시간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이거나 밤새 일하고 정오에 잠들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강요된 선택 밖에 할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자유가 있다고 믿고 살아 간다.

엔씨소프트 신년회에 본 우수사원들의 삶에는 강력한 공통점이 있었다. 가정을 외면하고 회사에 헌신하는 삶,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는(?) 가정. 그것을 존경하는 동료들. 그것이 정말로 현대 사회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삶일까? 부자들은 다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런 과정을 거쳐서 부자가 된 다음 편안한 여생을 누리는 것일까? 아니면 그런 삶을 즐거워 할까? 혹은 정말 부자들은 가정도 다 챙기면서 성공하고 있을까?

NHN을 그만두고 복학하면서부터, 그리고 서울 생활에 넌더리가 나면서부터 점점 자연으로 돌아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농사 지어서 팔아 먹고 살기보다 나와 내 가족이 먹을 만큼만 짓는, 자급자족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그놈의 세계화 경제란 것에 의존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그런.... 물론 선화는 이런 말 할 때마다 질색하지만-_- 언젠가는 이루고 싶은 꿈이다. 네이버에서 30대가 많이 검색하는 말 중에 귀농이 있다던데 나도 30대가 가까워 오니까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일까.

프로그래머. 프로그래밍. 평생 해도 즐거울 것 같은 일이다. 하지만 일로서의 프로그래밍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간혹 있는 것 같다. 간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