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2009-05-03

작년에 테XXX전이랑 일하면서 돈 안 주고 일 시키려는 거 보면서 정말 막장 회사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SK C&C랑 프로젝트를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런 회사도 있구나 싶다. 한국의 SI 판에 대해서 정말 뼈저리게 실감하게 되었다고 할까. 8년 전 처음 SI를 했을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다음은 얼마 전 C&C의 PM이랑 싸우다가 내가 들은 말들이다.

반말 찍찍 해대면서 저런 말들을 내뱉었다. 나도 저런 말 들으면서 일할 생각은 없었다. 이미 오픈도 다 했고 돈 받는 일만 남았지만 이런 말 들으면 나도 참을 이유가 없다. 그래서 나도 그럼 설치한 소스 다 빼고 우리 철수하겠다고, 소송 걸 테면 걸라고 했다. 결국 중재에 나선 건 중간에 낀 인력 업체. 사실 곤란한 건 중간에 낀 업체다. 우리야 SK랑 직접 계약한 게 아니니까 SK가 우리에게 책임을 물을 방법은 없다. 결국 중간 업체에 책임을 묻는 수 밖에 없으니 제일 피해를 보는 것은 중간에 낀 업체다. 결국 중간 업체의 이사까지 나서서 그 사람이랑 협상이 되었는지 그 쪽이 한 발 물러섰다.

그렇지만 기분은 여전히 정말 드럽다. 가서 싸대기라도 날려주고 싶을 정도다. 그나마 우리는 직접 계약자가 아니라서 그런지 마지막에 싸웠을 때 말고는 그냥 정상적인 대화를 했었다. 하지만 직접 계약한 사람들은 대부분 노예 취급을 받았다. 나이 제법 먹은 사람들에게도 반말 찍찍 해대고 사람 이름도 제대로 안 부른다. 성이 장씨인 개발자가 있는데 나이도 30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데 짱이라고 부르고 손가락으로 오라가라 한다. 난 그런 거 보기만 해도 짜증이 많이 났었다. 그저 큰 회사에 다닌다는 것만으로 자기는 아무 능력도 없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막 대하다니. 인간이라는 게 정말 손톱 만한 권력만 쥐어도 저렇게 되는 존재인가 싶다.

그나마 일이라도 잘하면 그딴 것쯤 참아줄 수도 있는데 일은 정말 심하게 못한다. 마치 이 프로젝트 망하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보였다.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날짜 땡기기 신공 뿐. 누가 어떤 일을 15일로 예상했다, 그러면 이 인간은 바로 "그거 그냥 13일로 하시죠" 하는 식이다. 물론 다른 개발자들은 굴복할 수 밖에 없었다. 뭔가 문제가 생기면 해결할 생각은 없고 책임 추궁하기 바쁘다. 보다 못해 우리 업무 범위가 아님에도 몇 번 도와준 적이 있었는데 고맙다는 말은 아예 없고 나중에는 아예 우리한테 책임지라는 식으로 나오기까지 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고객 요구사항을 잘못 이해해서 다른 개발자가 잘못 구현해놓은 게 하나 있었는데 리뷰 때 이야기가 나왔다. 고객 이야기는 간단했다. 잘못된 거니까 고쳐달라고. 누가 봐도 고객의 지적이 맞고 또 기술적으로는 5분이면 고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PM은 계속 니들이 처음에 그렇게 이야기해서 그렇게 구현한 거라는 식의 이야기만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그러다가 개발자를 불러서 이야기를 시키니까 개발자도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이 나온다. 협의에 5분, 고치는데 5분이면 될 내용을 거의 한 시간 동안 고객이랑 싸웠다. 지켜보는 다른 사람들은 답답해서 서로 왜 저러냐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도대체 그 협의에서 책임이 고객에게 있는 걸 증명하면 뭐가 달라지길래?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나은 사람이 2MB말고도 많은 것 같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가 재수없게 SK C&C에서 이상한 인간을 만난 게 아니고 이게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 바닥의 회사들이 다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갑의 입장이 되면 을은 마음대로 부려먹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위 아래 같은 발언이 나오는 것이다. 돈 주고 부리는 건데 시키면 시키는대로 해야지하는 심리가 있는 것 같다. 그러다보면 결과물보다 을이 자기 말을 듣느냐 아니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다. 을이 자기 말을 안 듣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게 결과게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는 생각할 필요도 없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건 중간 업체도 마찬가지였다. 거기 담당자도 자기들이 우리한테는 갑이니까 우리가 자기들 시키는 걸 다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로 한달 전까지만 해도 매일같이 싸웠다. 하지만 걔네들이 하라는대로 하면 프로젝트가 제대로 될 리가 없으니 우리는 대부분 거부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중간 업체도 어차피 우리가 말을 안 듣는 상황에서 싸워봐야 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도 결과는 보여주니 우리 방식을 수용했다. 하지만 SK C&C의 PM은 결과가 나오든 안 나오든 우리가 자기 말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행동한 것일 테고.

그나마도 SK C&C가 SI 대기업 중에 나은 편이라고 하니 SDS나 CNS는 어느 정도일까 싶기도 하다. 태근이가 이야기해준 CNS의 이야기도 정말 어이 없었고, SDS가 중소기업 여럿 망하게 만든 스토리도 이미 유명하다. 도대체 우리 나라의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왜 이 모양일까?

어쨋든 우리 나라에서 SI를 하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비슷한 상황인 것 같다. 내 마음대로 살자고 창업한 건데 이러면 의미가 없다. 그래서 우리 회사도 이제 고객에게 직접 프로젝트를 딸 수 있는 경우가 아니면 SI는 안하기로 했다. 웹 오피스 일을 거절한 것도 그런 맥락이 약간 있다. 물론 우리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금액을 제시해왔기에 그런 거 아니라도 거절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래서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 자체 프로젝트다. 딱 한 달, 한 달만 돈 안 벌고 버티면서 자체 프로젝트를 하기로 했다. 지섭이가 창업한 회사 미스티핸드와 함께. 한 달 동안 어느 정도를 해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