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2009-05-11

이콜레모 창립 이후 가장 큰 전략적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제까지 이콜레모의 전략은 소프트웨어 용역 사업을 해서 적당히 벌면서 남는 시간에 자체 아이템을 개발해서 성공시키자였다. 하지만, 이 전략은 생각처럼 순조롭지 않았다. 프로젝트 단위의 계약에 대한 경험이 너무 부족했다. 일의 양을 추정하는데도 항상 실패해서 일은 일대로 하면서 돈도 제대로 못 버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당연히 남는 시간은 없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믿을 수 없는 클라이언트를 가려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경험한 특이한 현상이 하나 있다. 우리랑 협상하는 담당자가 우리에게 하는 말과 자기 회사 의사 결정자에게 하는 말이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계약 조건에서 거짓말을 하는 정황을 많이 포착했다. 5건의 프로젝트 중에서 4건이 그랬다.

  1. 일주일에 하루 투입, 3개월간 웹 사이트 컨설팅 및 개발 도와주기를 조건으로 1천만원으로 계약했다. 하지만 사장은 그냥 매일 일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2. 첫 미팅 때 1MM 투입으로 1천만원을 제시했다가 프로젝트 상세 내역을 보고 2MM 투입, 2천만원을 제시했다. 담당자는 OK라고 하고 계약서를 썼지만 선금 1천만원 중 5백만원만 지급이 되었다. 처음엔 멋 모르고 그냥 하다가 돈을 너무 안줘서 한달쯤 되었을 때 재촉했더니 사장님 핑계를 대면서 안 준다. 그래서 직접 사장한테 걸었더니 마침 부재중. 근데 바로 직후에 담당자한테 전화가 오더니 사장한테 직접 이야기하려 한 것에 대해 무척 당황한 듯 횡설수설한다. 아마도 사장한테는 1천만원이라고 한 게 아닌가 싶은. 결국 계약 파기했다. 처음에는 법적으로 소송을 걸겠다느니 협박했으나 나도 법적 대응을 준비해서 오히려 그들이 우리에게 보상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주지시켰더니 바로 입 다물었다. 참고로 이 회사는 직원 스무 명도 안되는 회사인데 소송 중인 건이 네 건이 있다는. 내부의 다른 직원 말로는 늘 그런 식으로 일한다는.
  3. 프로젝트가 완료되었는데 돈을 안 줘서 따지러 갔더니 사장님이 결재를 안해줘서 돈을 못 준댄다. 그래서, 그러면 소스코드 못 주고 유지보수도 못해주겠다고 했더니 잠시 생각하다가 자기 돈으로 지급해준댄다. 나중에 회계 처리 하면 된다면서. 결국 돈을 받긴 받았지만 이거 뭥미.
  4. 처음에 4천으로 계약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것만 해도 MM 단가로 치면 적자다. 하지만 배고픈 상황이라 양보, 받아들이기로 했는데, 계약 과정에서 자기들 갑이 금액 깎았다고 우리 금액도 3천 5백으로 깎자고 나온다. 한 번 더 양보했다. 그러다가 기능 하나가 협의 중에 빠졌다. 그랬더니 숫제 2천으로 깍자고 나왔다. 아무리 봐도 심한 적자를 보는 상황이다. 돈이 없는 우리로서는 받아들일 수 밖에. 그런데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계약서를 쓰러 갔더니 이사가 우리보고 왜 자꾸 말을 바꾸냐고 하는 것이다. 황당하기 그지 없다. 자기들이 말을 계속 말을 바꿔서 안 그래도 화가 나 있는데. 눈치를 보아하니 담당자가 거짓말을 한 듯하다. 나중에 따져물으니 미안하다는 말 밖에.

아무래도 사장들은 돈 가지고 담당자들을 많이 압박하는 것 같다. 그러니 담당자들은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우리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하면서 정작 사장한테는 다른 식으로 거짓말을 해두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돈을 줘야 할 때, 혹은 계약서를 써야할 때 들통이 나게 된다.

이젠, 이런 상황들이 지겨워졌다. 처음에는 그래, 아무리 이 바닥이 개판이라도 우리는 잘할 수 있을 꺼라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들여야 하는 시간과 노력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레드오션에서 노는 꼴 밖에 안된다. 사실 그 동안 우리는 기업 전략이라는 관점에서는 어떤 의도적인 생각을 한 적이 별로 없다. 그저 버텨내면서 좋은 회사를 만들어가면 되겠지 하는 막연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사실은 용역 사업으로 버티면서 아이템 발굴하자는 전략이 있긴 있었던 것이다. 그걸 이제야 깨달았고, 그 전략을 바꿔야할 시점이 온 것 같다.

어쨋든 소프트웨어 용역 사업이라는 거, 우리가 잘할 수 있는지 아닌지를 떠나서 이걸로 우리 아이템을 발굴할 시간을 벌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해진 것 같다. 1년이 지났고 멤버들 개개인은 정말 많은 경험을 하고 정신적 성장을 이뤘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뭔가 성장했다고 말하기 힘들다. 그래서,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어쨋든 당장 돈을 벌지 않아도 우리 멤버들이 모두 몇 달간 생존하는데는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굳이 돈 벌자고 나설 게 아니라 단기간에 조금이나마 수익을 낼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드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사실 이 전략은 처음부터 생각했던 전략이지만 당장 돈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올해 목표를 새롭게 새웠다. 올해 목표는 우리의 자체 아이템을 5개 출시하는 것. 단, 여기에 조건이 하나가 더 붙는다. 사무실 유지하기. 딱 사무실을 유지할 만큼만 프로젝트를 뛰고 나머지는 전부 우리 아이템에 올인하는 것이다. 물론 5개 모두 우리들 자신은 납득할만한 퀄리티여야 한다. 이미 하나는 시작했다. 이제 진짜 우리의 역량이 시험대에 오른 느낌이다.

사실 이 목표를 달성한다고 해도 돈을 번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하지만 이 목표를 달성할 수만 있어도 상당히 큰 자신감을 갖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