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2010-02-10

이제 맥을 쓴지 2개월이 넘은 것 같다. 맥 써보니까 아이폰처럼 이쁜 거 하나만큼은 정말 확실하다. 맥미니는 기계부터가 이쁘고, UI도 구석구석 다 이쁘다. 윈도우 7도 많이 이뻐졌지만 아직 스노우 레오파드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우분투는 더 이상 이뻐질 생각이 없어보이는데 ㅠ.ㅠ

쓰다보니 확실히 Mac OS X가 장점이 많은 OS다. 우선, 안 죽는 건 정말 짱이다. 뭐, 맥이라고 전혀 안 죽었던 것은 아니지만, 우분투나 윈도우에 비하면 정말 안정적이다. 그리고 동급 사양으로 비교하면 정말 빠르다. 맥이 CPU나 메모리 사양은 가격 대비 아주 높은 편이지만 같은 사양의 윈도우보다 훨씬 빠르다. 전체적인 속도도 빠를 뿐더러 무엇보다 UI 반응성이 정말 탁월하다. OS 기술은 확실히 애플이 앞서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사용 편의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장단점이 교차한다. 가장 큰 장점은 일관성이 높다는 것. 모든 맥 애플리케이션은 메뉴가 상단 메뉴바에 나온다. 그리고 주요 단축키들이 아주 일관성이 높다. 메뉴 구성 자체도 일관성이 있다. 제일 좌측은 늘 OS의 매뉴가 나오고 그 다음으로 애플리케이션 통합 메뉴가 나온다. 그래서 종료, 설정 등 애플리케이션에 관련된 메뉴는 모두 이곳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설정 메뉴가 항상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은 정말 좋다. 윈도우 애플리케이션은 설정 메뉴가 창에 있기도 하고 도구, 파일, 편집 등에 있기도 해서 한 방에 찾기 어려운데 맥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창의 버튼도 다 똑같고 윈도우처럼 창틀을 튜닝하는 프로그램은 찾아보기 힘들다.

디테일한 장점도 상당히 많다. 그 중 하나는 피드백이 좋다는 것.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하면 독에서 아이콘이 통통 튄다. 실행 중이라는 걸 알려주는 것이다. 윈도우에서는 클릭했는데 실행되는지 아닌지 몰라서 여러 번 실행시키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맥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뭔가 일을 시키면 대부분 애니메이션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내가 시킨 일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커맨드 키도 IDE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괜찮은 컨셉이다. 맥에서는 대부분의 단축키가 커맨드 키 + 일반 키의 구조로 되어 있다. Ctrl, Shift, Alt(Option)은 복잡한 프로그램이 아니면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용자는 뭔가 명령을 내리고 싶으면 일단 커맨드 키부터 누르고 보면 된다. 반면, 복잡한 프로그램에서는 이게 단점으로 둔갑한다. 조합해야 하는 키가 하나 더 늘기 때문이다. 실제로 Xcode에서도 동시에 네 개의 키를 눌러야 하는 단축키가 몇 있다. 특수키별 일관성도 거의 없다. 윈도우에서는 Ctrl은 프로그램 내 제어, Alt는 창 관련, Shift난 Ctrl이나 Alt의 동작 변경, 윈도우키는 시스템 전체의 글로벌 단축키로 어느 정도 역할 구분이 되는데, 맥에서는 커맨드 키가 메인으로 쓰이는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키들은 별다른 일관성 없이 조합되어 쓰인다. 그래서 2단계 이상의 단축키는 외우기가 꽤 어렵다.

또 하나 힘든 것은 단축키가 있는데도 표시가 안되는 기능들이 많다는 것이다. 윈도우에서는 단축키가 있는 기능은 대부분 메뉴나 컨텍스트 메뉴에서 선택할 때 단축키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맥은 단축키는 있는데 표시가 안되는 것들이 있어서 단축키가 없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이를테면, 대부분의 맥 프로그램에서 커맨드 + i를 누르면 정보를 볼 수 있는데 컨텍스트 메뉴에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축키가 표시 안된다. 프로그램 내 창 전환 키인 커맨드 + ~도 검색해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었다.

메뉴가 상단에 있는 것은 장점도 있지만 큰 모니터에 여러 개의 프로그램을 띄워놓고 쓰는 개발자들에게는 아주 불편한 점이다. 현재 포커스가 가 있는 프로그램의 메뉴만 표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메뉴에서 뭘 고르고 싶으면 꼭 그 프로그램으로 포커스를 이동시켜야 한다. 아이폰 개발할 때는 그 불편이 상당히 크다. 강 모군이 Fitt's law를 들먹이며 맥의 장점으로 꼽았지만 아마 직접 써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독은 딱히 편한 건 모르겠다. 사실 난 우분투처럼 상단에 메뉴와 단축 아이콘이 있고, 하단에 창 목록이 나오는 구조가 제일 편했다. 스노우 레오파드부터는 응용프로그램 메뉴가 독에서 바로 펼쳐지는데, 최근 설치한 응용프로그램은 표시가 안되서 결국 열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문서 폴더를 바로 펼쳐주는 것도 우분투의 위치 메뉴만 못한 듯.

익스포제나 스페이스는 이미 우분투에서 더 편리한 컴피즈의 기능들을 써오던 터라, 오히려 사소한 부분의 불편함들이 더 부각되었다. 창과 데스크탑 관리 기능은 역시 컴피즈가 최강.

대시보드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갖다 버렸으면 싶다. 위젯이라는 건 항상 보여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위젯 모아서 따로 띄워야 볼 수 있다면 바보 위젯이라 불린 옴니아1이나 마찬가지. 아이폰도 그렇고 애플은 왜 이렇게 위젯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는지 의문이다.

스포트라이트는 처음에는 와 정말 좋다...라고 생각했는데, 쓸 일이 없었다. 이젠 스포트라이트 단축키마저 잘 안 쓰는 F19로 옮겨버린 상태.

펑션키들이 소리 조절 등의 기본 기능들을 수행하는 것은 편리한 느낌이 들었는데, 이클립스를 쓸 때 단축키가 충돌해서 결국 fn이랑 조합하게 바꾸고 말았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장단점들을 꼽을 수 있겠지만, 전반적인 느낌을 정리해본다면 대략 이런 정도.

사실 우분투를 메인으로 많이 써왔던 나한테는 맥도, 윈도우도 불편하다. 근데, 윈도우가 이만큼 불편하다면 계속 불평 늘어놓으면서 쓸 것 같은데, 맥은 뭔가 미워할 수가 없다. 미워하기엔 너무 이쁘다. 아이폰도 딱 그렇다. PIMS로는 5년 전에 나온 알육이만도 못한데, 그냥 아이폰을 바라볼 때마다 애정이 간다. 화면도 화면이지만 뒷면 곡선이 예술이다.

하지만 이것은 함정이다. 많은 맥 유저들이 맥이 윈도우보다 편하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편한 점 못지 않게 불편한 점도 많다. 실제로 맥 유저가 쓰는 모습을 뒤에서 보면 참 느리고 불편하게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정작 자기는 편하다고 이야기한다. 표상적 축소 오류다. 맥은 이쁘다 -> 맥은 좋다로 이어지는 사고가 맥의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심미성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동시에, 심미성에 빠져서 UX의 불편을 보지 못하는 인지적 오류를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