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2012-07-21

정말 간만에 블로깅 하나 해본다. 오늘의 주제는 망 중립성 논쟁.

망 중립성이 실로 해괴한 결말이 났다. 자세한 내용은  방통위 트래픽 관리안, 통신감청 허용 논란을 보면 되겠고, 아뭏든 망 중립성 논쟁이 촉발된 것이 무색하리만큼, 이전보다 더 나쁜 상황이 되고 말았다. 여튼 트래픽 제한 권한은 이통사에게 있다는 것이 핵심.

결과적으로는 이통사를 열심히 깠지만 이통사에 휘둘려 그들 뜻대로 되고만 격이다. 왜 휘둘렸다고 하냐면, 네티즌들이 이통사의 논리에 반박하는데만 초점을 맞추느라 핵심을 짚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통사들이 내세운 핑계들은 모두 진짜 이유가 아니다. 무임승차니, 트래픽 과다니, 일부 이용자가 트래픽을 과점해서 대다수의 사용자는 손해를 본다느니, 모두 가짜 이유에 불과하다. 어차피 대다수의 네티즌들은 트래픽 제한 조치 자체에 반대하는 포지션에 있기 때문에 일부만 저 핑계에 설득당해도 유리해지는 것이다. 이통사 직원들도 아마 대부분 그 주장들이 말이 안된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임원 중 몇 명만 저 핑계를 진심으로 믿고 있는 정도겠지.

그런데 네티즌들은 저 주장들이 터무니 없다보니 거기에 화를 내고 반박하는데 주력한다. 그러느라 이통사들이 트래픽 제한을 할 수 있는 진짜 이유는 건드리지도 못한다. 그러니 방통위에서 저런 결론이 나는 걸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 진짜 이유는 뭔데? 간단하다. 이통사가 구축한 망은 이통사의 소유물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자신들이 구축한 망을 자기 맘대로 이용하는 걸 막을 수 있는 논리는 결코 간단치 않다. 트래픽 문제는 돌려 말하면 이통사의 이익을 최대화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인 거고, 이걸 막을 명분은 자본주의의 틀 안에는 없다. 

심지어, 네티즌들이 이통사들을 공격하는데 가장 많이 활용한 논리는, 내가 돈 낸 데이터 요금 내 맘대로 쓰는 게 뭐가 문제냐는 것이다. 이건 정확히 이통사들의 논리를 지지하는 것이다. 이통사가 투자해서 구축한 망을 이통사 맘대로 쓴다는데 니들이 뭐라고 할 건데? 이건 자폭이나 다름 없다.

물론, 이통사들이 이 논리를 대놓고 주장하진 못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런 주장을 했다간 앞서 가짜이유를 댄 것과는 비교도 안되는 욕을 들어먹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진짜 이유를 말하지 못하고 가짜 이유만 늘어놓고 있고, 네티즌들은 거기에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그럼 또 이런 반박이 나올 수 있다. KT나 SKT나 국가에서 주파수를 분배해주었고, 초기에 유형무형의 도움을 많이 준 것이 사실인데, 결국 국민의 세금이 들어간 거 아니냐, 그럼 국민에게도 재산권이 있으니 지들 맘대로만 해선 안된다고. 맞는 말이다. 근데, 여기서 그치면 그것도 곤란하다. 정부로부터 받은 게 그닥 많지 않은 LGT는 그럼 맘대로 해도 되는가? 주파수 허가가 필요치 않은 유선망을 구축한 지역 케이블 업체는 유튜브 트래픽 제한해도 되는가? 

그래서, 이 문제는 간단히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생각보다 거대 담론이 개입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문제의 이름도 망 중립성이고 난 참 괜찮은 명칭을 붙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좀더 문제를 제대로 드러낸다면 망 공공성 문제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까, 인터넷 망도 도로나 마찬가지로 공공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도로도 공공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도로는 국가가 건설하게 되고, 설령 민자 유치로 하더라도 그 요금을 민간 업체가 마음대로 해서는 안되며 정부 및 지역사회와의 협의가 중요하다. 그래서 설령 민간 업체가 적자를 내면 세금으로 보전해주는 삽질을 하더라도 도로의 공공성은 충분히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다. 맥쿼리가 나쁜 것도 이런 도로의 공공성을 해치면서까지 이득을 챙기려 하기 때문이고.

그런데, 인터넷망은 이 도로에 비해서 공공성이 덜 중요한가? 돈 있는 사람은 맘대로 망을 써도 되고, 없는 사람은 못 써도 되는 걸까? 아닐 것이다. 10년 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인터넷망도 도로 못지 않게 공공재로서의 성격이 강해졌다.

현대 사회는 자본주의 세상이지만, 그렇다고 사회가 자본주의로만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존재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한계를 인정하고 공공성이 필요한 것들을 충족시키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래서, 망 중립성 논쟁도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싸울 게 아니라 공공성의 논리를 가져와야 한다. 그러니까, 공공재에 해당하는 사업을 하는 업체라면 그 업체의 권리를 제한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

물론, 이쯤되면 대한민국에서 빨갱이 소리를 들을 법한 주장을 하는 셈이고, 규제 때문에 기업이 발전 못하느니 어쩌느니 소리가 나올 것이다. KT나 SKT나 민영화되고 나서 경쟁하면서 발전한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뭐 이미 지나온 역사니까 민영화 안했으면 어땠을지 잘 모르긴 하지만, 각종 민자도로나 KTX, 도시가스 등의 사례를 볼 때 민영화가 국익에 별로 기여하는 것 같아보이진 않는다. 여튼, 이 논쟁까지 가야 진짜 논쟁이다. 이 논쟁에서 누가 옳을지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지만, 어쨋든 이게 진짜 필요한 논쟁인 거다.

요컨대, 지금 겪고 있는 망 중립성 문제는 인터넷 산업의 문제라기보다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흐름 안에 있는 문제라는 것이고, 이걸 인터넷 산업 안에서 풀려고 해봤자 잘 안될 거라는 것이다. 카톡이 보이스톡 기상도 같은 거 들이밀고 이통사 까봐야 별반 도움 안된다. MB 정부 와서 신자유주의가 극도로 가속화되긴 했지만, 이건 꼭 MB 정부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그보다 훨씬 큰,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경제의 흐름에 휩쓸린 것이지.

그래서, 사실 나도 이렇게 답답한 소리를 늘어놓긴 하지만, 망 중립성에 대해 단기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뾰족한 대안은 없다. 단지 말하고 싶은 건, 이 문제가 니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통사의 헛소리만 까대면 해결될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 거대 담론과 줄기차게 싸워야 하는 그런 문제라는 것이다. 인천공항 민영화를 막을 수 없다면 망 중립성도 못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