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을 위한 제언

새누리당은 흔들림이 없는 가운데, 민주당이 연이은 삽질로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있는 지금, 희망을 걸 수 있는 정당이라고는 정의당 밖에 없다. 사실 나는 시장주의자인지라 정의당과 정치 성향이 맞지는 않지만, 현재 한국 정치에 필요한 선택 기준은 좌우가 아니라 옳은 일을 할 의지가 있느냐, 아니면 자기 이익만 추구하느냐라고 보기에, 현 상황에서 내가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을 선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실 새누리당은 시장주의라고 볼 수조차 없다. 오히려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 시장경제를 해치는 입장이므로 내가 보기엔 새누리당이야말로 좌빨이다. 그리고 정의당보다 작은 정당들은 아직 정치세력화까지 갈 길이 너무 멀다. 그렇다면 현재 내가 기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우선 정의당이 빨리 커서 민주당의 자리를 대체하고 한동안 집권하여 일단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는 세상이 되면 새누리당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므로, 정의당과 경쟁하기 위해 올바른 보수 정당이 출현할 것이다. 그러면 그 보수 정당을 지지하면 된다.

하지만, 지금 정의당이 하는 모습을 보면, 민주당보다는 올바른 일들을 하고 있으나, 계속 흥행 참패다. 어쨋든 정치를 하려는 이상 인기를 얻어야 할 텐데, 정의당 사람들은 인기에 무심한 건지, 아니면 정말 인기를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도 저런 상황인 건지, 민주당이 민심을 잃고 있음에도 정의당이 뭔가 얻고 있진 못하다. 그래서, 현 상황에서 정의당이 집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해 좀 머리를 굴려봤다. 

목표설정

정의당이 지금 하는 모습을 보면 하루하루의 의제에는 열심히 대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목표지향적으로 움직인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다음 총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정의당 의석이 늘 것이라고 기대가 되는가? 대선 때는 과거 권영길만큼의 모습이라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두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모두 No일 것이다.

목표를 세워야 한다. 그것도 BHAG를 세워야 한다. 크고, 위험하고, 대담한 목표. BHAG가 어떤 것이며, 왜 BHAG를 세우고, BHAG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지는 Built to Last를 참고하라.

현재 정의당의 BHAG로 세울 만한 것은 딱 두 가지 밖에 없다.

이 정도는 되야 크고 아름다운 위험하고 대담한 목표 아니겠는가. 내부적으로 몰래 세워놓는 것만으로는 의미 없다. 세상에 공표하라. 물론 비웃음도 많이 받겠지만, 뭐 어때, 비웃을 테면 비웃으라지.

실행계획

목표에는 당연히 구체적인 전략이 뒤따라야 한다. 내가 제시하고 싶은 전략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growth hacking이다.

온라인에 집중하라

정의당의 절반 정도는 노동 운동에서 나온 사람들이고, 또 기본적으로 정치인은 세력 기반이 중요하다보니 오프라인을 중시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노무현이 왜 이겼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김대중의 승리에는 이인제의 공이 꽤 있었으나, 노무현은 사실상 수구 세력과 1:1로 정면대결해서 이긴 유일한 대통령이다. 하지만 선거 시작 전의 노무현은 훌륭한 정치인이긴 했으나, 민주당 내에서도 그다지 높은 위치라고 하기 어려웠고, 인지도도 그다지 높지 않았다. 그런데 인터넷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고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의 인터넷 언론이 성장하면서 노무현의 좋은 모습들이 많이 알려졌고, 덕분에 소위 바람이라고 불릴 만큼 급격하게 지지도를 올릴 수 있었다. 여전히 어르신(?)들은 노무현에 대해 잘 몰랐지만 젊은 층의 여론은 노무현 쪽으로 크게 쏠렸고, 경선, 단일화 등은 인터넷에서 일종의 이벤트 역할을 하면서 여론을  더 뜨겁게 달구었다. 결국 인터넷 여론에서는 노무현에 대해 압도적인 여론이 형성되었고, 대선 승리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이 때의 패배를 그냥 넘기지 않았다. 이후 노무현 집권 내내 언론으로 노무현을 괴롭혔고, 인터넷에서 점점 영향력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이명박 때는 굳이 인터넷이 아니라도 어차피 새누리당이 이길 수 밖에 없는 구도였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지난 대선은 이명박의 실정, 대선 후보의 압도적인 차이를 생각하면 민주당이 질래야 질 수 없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은 이미 노무현 때의 인터넷이 아니었다. 인터넷 진보 언론들은 그동안 급격히 힘을 잃은 반면, 조중동은 그 사이 세를 크게 확장했고, 댓글부대가 SNS에 침투하면서 SNS 여론조차 압도적이지 못했다. 게다가 네이버는 완전히 수구 세력에 점령당해서 결국 인터넷 전체로 보면 오히려 밀리는 상황이라고 볼 수도 있을 정도. 사실 나 역시 개표 부정을 강하게 의심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은 개표 부정이 나올 수 없을 만큼 차이가 벌어져서 이겼어야 하는 싸움인데 팽팽한 승부로 간 것 자체가 인터넷에서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거를 지역 구도로 본다면 경상도와 전라도의 차이를 수도권에서 뒤집느냐 아니냐가 승부를 가른다고 볼 수 있고, 세대 구도로 본다면 50대 이상의 압도적인 지지를 20대가 얼마나 참여해서 뒤집느냐에 딸려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세그먼테이션이 전략적으로 유용하지는 않다고 본다. 세대 구분을 이야기하면서 20대의 참여를 독려했지만 정작 20대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압도적이라고 할 수 없었고, 실제로 30대 못지 않게 참여한 선거에서도 이기지 못했다. 지역 구도로 봐도 경상도 전라도는 어차피 그대로인 거고, 수도권에서 이겨야한다는 건 알겠는데, 그럼 수도권에서 이기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 이 질문에 답하기란 몹시 어렵다. 파고들지 못한다면 의미 없는 세그먼테이션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선거를 오프라인에서 밀린 것을 온라인에서 얼마나 극복하느냐가 승부라는 관점으로 보기를 제안한다. 인터넷에 친숙하지 못한 계층에선 어차피 이길 수 없다. 자기들 발등 찍는 제도를 내놓는 정당을 계속 찍어주는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불가능하다. 오바마처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 마라. 오프라인에서의 여론 형성은 사적 네트워크가 중요하고, 사적 네트워크는 자원빨의 새누리당을 대적할 수 없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은 내버려두고 온라인에 집중해야 한다. 이미 인터넷을 활발히 사용하는 인구만 공략해도 과반을 충분히 넘긴다. 노무현 때처럼 온라인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다면 선거도 이길 수 있다.

그런데 아쉽지만 온라인도 온라인 전체를 이길 수는 없다. 일단 네이버 댓글에서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국정원까지 동원해서 댓글 부대를 운영하는 새누리당을 어찌 이기겠는가? 어뷰징이 가능한 채널은 이길 수 없다고 봐야 한다. 이길 수 없는 전장에서 이길 묘수를 찾아내는 건 다음 세대로 넘기고 이번 세대에서는 이길 수 있는 전장에서 확실히 이기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럼 이길 수 있는 전장은 어디냐. 트위터와 페이스북, 둘 뿐이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공유하는 특징은 사적인 네트워크이면서 개방된 공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카카오 스토리나 밴드처럼 사적인 성격이 너무 강하면 침투하기 어렵고, 네이버처럼 완전히 개방된 공간은 어뷰징을 막을 수 없다. 반면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나와 성향이 비슷한 친구들이 모이면서도 간간이 반대쪽 목소리가 들려오는 공간이다. 그래서 침투할 가능성도 있으면서 물량공세의 어뷰징에 쉽게 흔들리지는 않는다. 좋게 보면 옳은 목소리가 이길 수 있는 전장이라는 뜻이다.

아마도 이런 SNS는 이미 이기고 있지 않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대부분 지인 네트워크라는 특성에서 오는 착각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SNS는 진보세력에 약간 우세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수구 세력이 지키고 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건 SNS에 정의당의 컨텐츠는 거의 유통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진보세력에 호의적인 사람들 사이에서도 정의당의 SNS 존재감은 없다.

그런데 만약 정의당이 다른 걸 다 포기하는 대신 페이스북과 트위터 사용자의 80% 이상으로부터 지지를 받는다고 생각해보자. 이것만으로도 1천만에 달하는 지지층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80%를 장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30%만 잡아도 대단한 거겠지. 어쨋든 중요한 건 페이스북, 트위터에서 의미 있는 지지율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지지율이 허황된 숫자로 보인다면 이렇게 상상해보자. 페이스북에 매일 접속하는 사람들이 정의당의 컨텐츠를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정도는 접하는 상황이 된다면? 이것만으로도 많은 변화를 만들 수 있다.

어쨋든 중요한 건 이길 수 있는 전장에서 싸우는 것이고, 그건 페이스북과 트위터니까 이곳에만 에너지를 집중하고 나머지는 버리자는 것이다.

스타를 키워라

그럼 온라인에서는 어떻게 이길 것인가? 일단 선거에 나설 인물들의 인지도를 키워야 한다. 이번에 김무성이 뜨는 과정을 보면 새누리당이 이걸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수구언론들은 끊임 없이 김무성에 대한 기사를 쏟아낸다. 마약 사위 사건이 김무성에게 실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오히려 이걸로 김무성을 모르던 사람들이 김무성을 알게된 효과가 더 클 것이다. 지지층은 어차피 그 정도 사건으로 입장을 바꾸지 않는다. 자기 사위가 걸렸어도 힘 있으면 빼주고 싶은 게 사람이니까. 사실 지난 선거 때까지만 해도 김무성은 아무 존재감이 없는 듣보잡이었다. 새누리당 골수 지지층도 김무성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을 거다. 근데 이제 다들 김무성이 누군지 알고, 다음 대선의 유력한 후보라고 생각한다. 최근 10년 간 한 번도 대선 지지도 순위 안에도 못 들었던 사람인데 말이다. 이런 게 인지도의 위력이다.

정의당도 인물들의 인지도를 키워야 한다. 심상정은 이번에 포풍사자후 사건 이후 인지도가 좀더 올라간 것이 다행이지만, 다른 인물들의 인지도는 거의 없는 수준이다. 그나마 인지도가 있었던 유시민은 선거에 나가지 않으니 소용 없고, 반짝 인기를 끌었던 서기호도 잊혀져가고 있다. 알려진 인물이 적으면 당도 힘을 받기 힘들다. 그런데 만약에 정의당에 박원순이나 이재명 정도의 인지도가 있는 정치인이 10여명 된다고 생각해보자.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우리나라 선거가 당이 워낙 중요하니 당의 인지도를 올리는 게 중요할 것 같지만, 그건 새누리당-민주당 양강의 관점이고, 군소정당 입장에서는 당이 인물을 키우는 게 아니라 인물이 당을 키운다. 선거에 나와서는 안될 허경영 같은 사람도 인지도 하나로 지지를 얻는다. 당이 아니라 인물이 먼저다.

정의당이 어떤 올바른 주장을 하고, 좋은 법안을 발의하고 있는지, 혹은 새누리당이 만든 법안이 얼마나 사람들의 삶을 옥죄는지 분석하고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의당의 인물들을 알리는 노력이 그보다 10배는 더 중요한 일이다.

사회적 약자 관점의 컨텐츠 유통

그럼 스타는 어떻게 키울 것인가. 가장 효과가 큰 것은 노무현이 청문회에서 한 것 같은 사건을 만드는 것이고, 이번에 심상정이 비슷한 성과를 냈지만, 이건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고 운도 따라야 한다. 지금은 더 바람직한 growth hacking 사례가 있다. 앞서 이미 SNS에서만 싸워야 한다고 이야기했으니, 당연히 그 사례도 SNS겠지? 박원순과 이재명이다. 박원순은 동성애 인권 문제 이후로 다소 주춤했지만, 어쨋든 이 두 사람은 올바른 시정을 펼치고 있다는 것을 SNS로 꾸준히 소통하여 인기를 얻었다. 정의당도 이런 방식을 따라가야 한다.

하지만, 정의당은 박원순과 이재명을 그대로 따라할 수는 없다. 시장은 행정으로 즉각적인 실행을 할 수 있는 힘을 이미 가졌다. 좋은 정치를 이미 하고 있다면 그걸 알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정의당은 실제로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그렇다고 봉사활동 같은 걸 한다거나, 파업 현장에 간다거나 하는 건 올려봐야 소용 없다. 그래서 SNS로 지속적으로 소통하는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틀은 유지해야 하지만, 소통하는 컨텐츠는 달라야 한다. 정의당은 이재명이나 박원순보다 약자다. 단순히 SNS에서 열심히 소통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박원순, 이재명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컨텐츠를 내놔야 한다.

그럼 정의당이 내세울 수 있는 컨텐츠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진정으로 약자의 편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일 것이다. 당장 해법을 실행할 수 있는 힘은 없다 하더라도, 약자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대기업은 전기 팍팍 쓰면서 대폭 할인 받는데 가정은 늘 전기 아껴 쓰라면서 비싼 요금 내고 적게 쓰고 있다는 내용이라든가, 최근 만연한 여성 혐오 현상과 관련해서 연령별 임금 곡선을 통해 분석한 것, 노인 자살율이 증가하고 있는 문제 등, 소셜 네트워크에서 흥했던 컨텐츠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은 정의당이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컨텐츠일 것이다. 이런 컨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산하면서 소셜 네트워크를 타야 한다.

물론, 이런 컨텐츠를 유통시키는 주체는 정의당이 아니라, 정의당에서 키워야 할 인물들이어야 하고, 그 인물들이 컨텐츠를 기획하고 만드는 중심에 서야 한다. 유시민이 나름의 브랜드화에 성공했던 이유도 다름 아닌 유시민의 머리 속에서 나온 컨텐츠들이 유통되었기 때문이다.

피키캐스트식 컨텐츠 포장

그런데, 정의당이 지금까지 이런 컨텐츠를 안 만들었던 게 아니다. 사실 앞선 이슈들도 정의당이 관련된 자료를 계속 내왔고, 소셜 네트워크에서 흥했던 컨텐츠 중에 정의당의 자료에 기초한 것도 많다. 소셜 네트워크에서 소통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정작 정의당은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 이유는 컨텐츠 포장 방식에 있다.

과거 이명박 정권을 끝장내겠다는 목표로 나는 꼼수다가 대박 히트를 쳤었다. 무려 1천만명이 들었다는데, 정말 놀랍고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일을 해내고도 선거를 졌다. 그럼 나꼼수보다 더 대단한 일을 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가능한가? 사실 난 나꼼수가 그렇게 활약했음에도 선거에 진 것에 상당히 깊은 좌절감을 느꼈다. 더 이상을 해내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좀 생각이 바뀌었다.

나꼼수의 컨텐츠는 양적으로도 상당히 풍부했고, 깊이 있게 분석되어 있었으며, 뛰어난 말재간으로 잘 펼쳐졌다. 하지만 나꼼수의 목적은 나쁜 대통령을 몰아내는 것이었던 만큼, 대통령의 나쁜 짓에 컨텐츠가 집중되어 있었다. 물론 나쁜 짓을 몰아내는 것이 더 중요한 일임은 틀림 없지만, MB가 얼마의 재산을 축적하든 말든 그게 나랑 상관 있다고 느끼긴 쉽지 않다. 반면, 더운 여름에 에어컨 틀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입장에서 가정용 전기 문제는 내 문제로 느껴질 수 있다. 맥쿼리가 한국에 피 빨고 있다는 분석을 내면 공감을 얻기 어렵지만, 맥쿼리가 건설한 도로를 지나가려면 다른 도로의 3~4배 요금을 내야 한다고 하면 좀더 와닿는다. 그래서, 정의당이 제시할 수 있는 컨텐츠는 어쩌면 나꼼수의 컨텐츠보다 더 폭넓은 공감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정의당의 지금 목표해야 하는 것은 나쁜 새누리당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정의당의 성장으로 정권을 잡는 것이므로, 그 목표에도 부합한다. 그러니까, 정의당의 컨텐츠는 오히려 나꼼수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

그럼 다시 포장 문제로 돌아오는데, 나꼼수가 말재간으로 잘 포장하고 팟캐스트라는 미디어로 잘 뿌려졌지만, 팟캐스트는 사용자의 적극성을 많이 요구하는 미디어다. 소셜 네트워크를 보다가 그냥 클릭해서 가볍게 스크롤해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어쩌면 이런 불편한 미디어로 그만큼의 호응을 이끌어낸 게 더 대단한 일이기도 하고, 반대로 더 좋은 미디어를 통하면 나꼼수보다 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재 가장 파괴력 있는 컨텐츠 포장을 보여주는 것은 피키캐스트의 방식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나도 피키캐스트를 좋아하진 않지만, 컨텐츠를 아주 잘 포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피키캐스트의 핵심은 대량의 사진과 짤막한 해설이다. 연속된 사진을 이어서 보기만 해도 문맥이 전달된다. 버즈피드의 카피캣이지만 오히려 피키캐스트가 컨텐츠 편집은 더 잘하는 것 같다. 다들 아는 것처럼 한국인의 독해 능력은 그다지 좋지 않기 때문에 긴 텍스트로 내용을 전달하기는 쉽지 않다. 사실 전기세 같은 문제도 이전에 여러 가지 분석글들이 있었고, TV에도 방송이 되었지만 정작 소셜 네트워크에서 흥했던 것은 방송 내용을 캡처해서 편집한 글이었다. 방송을 보는 것에 비해 압도적으로 짧은 시간에 비슷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고, 부담도 없고, 소셜 네트워크에서 링크로 유통하기도 쉽다.

하지 말아야 할 것

중요한 것은 해야할 것 뿐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내가 정의당의 활동을 보면서 줄곧 안타까웠던 것은 효과가 없는 일에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프라인에서의 활동은 노동자들과의 필수적인 연대를 위한 활동 정도로 축소해야 하고, 온라인에서도 트위터, 페이스북 이외에서 열심히 싸울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소셜 네트워크 활동을 하라고 해서 댓글로 시비거는 사람들과 싸우는데 에너지를 쓸 필요도 없고, 논쟁을 열심히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컨텐츠를 계속 생산하고 소셜 네트워크로 퍼블리시하는 것에만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피키캐스트식 컨텐츠 생산을 가볍게 보면 안된다. 매일 하나씩만 괜찮은 컨텐츠 내려고 해도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고, 지금의 정의당의 역량으로는 에너지를 다 집중해도 어렵다. 나도 이런 글을 이미지 섞어가면서 재미있게 쓰고 싶지만 그 정도 에너지가 없기 때문에 구구절절 글로 쓸 수 밖에 없는 거다. 

그러니까 철저하게 효과가 있는 일에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버리겠다는 판단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새누리당처럼 여론조작질이나 거짓말까지 동원할 필요는 없다. 아마도 정의당의 장점을 살려서 growth hacking만 제대로 해도 충분히 양당에 맞설 만큼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소셜 네트워크를 자주 접할 수 없는 계층이 곧 정의당이 지키려고 하는 계층이고 이들이 새누리당을 지지한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정의당 지지층으로 돌려놓을 방법은 없다. 그건 정의당이 민주당을 제치고 나서 생각할 일이다. 지금은 붙잡을 수 있는 사람을 확실하게 붙잡는 게 중요하다.

요약

글은 길었지만 사실 내용은 단순하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사회적 약자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컨텐츠를
  2. 피키캐스트처럼 포장해서
  3. 정의당이 아니라 정의당에서 키울 인물의 이름으로
  4. 소셜 네트워크에서 유통하라.
  5. 그 외의 일은 하지 말라.

물론 growth hacking에는 분석과 그에 따른 대응도 뒤따라야 하지만, 사실 시스템이 아니라 컨텐츠는 다양한 변수를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반적인 로그 분석과 대응으로 개선해나가기는 쉽지 않다. 지지층의 성장 여부만 트래킹하는 정도가 적당할 것이다.

정의당 웹사이트도 많이 개선되어야 한다. 정의당의 인물들을 잘 드러내주고, 컨텐츠와 인물들을 연계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지속적으로 한 분야의 컨텐츠를 생산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좀더 심플하게 인물과 컨텐츠, 소통만 강조하는 형태로 변신해야 할 것이다.

어쨋든, 만년 군소정당은 좀 그렇잖아. 온라인에서만이라도 제대로 이겨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