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S의 혁신

테슬라 한국 진출 소식에 맞춰 테슬라 S에 대한 글 하나 써본다.

테슬라 S를 IT 기기로 보는 관점

 

국내에서 테슬라 S는 자동차 매니아들보다 IT인들 사이에서 더 잘 알려져 있다. 보배드림에서도 테슬라 S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국내에서 보는 테슬라 S에 대한 시선은 다소 편향되어 있다. 이를테면 블로터에서는 '테슬라S' 보니…전기차는 '플랫폼'이었어 같은 글을 통해 IT 플랫폼으로서의 자동차를 이야기하고 있다. 센터페시아에 달린 거대한 터치스크린을 테슬라 S의 핵심으로 보고 있을 정도니 말 다했지. 테슬라 ‘모델S’ 뜯어보니…“자동차보다 스마트폰 닮았네” 하는 기사도 있다. SNS에서도 이 터치스크린이나 시스템의 무선 업데이트 같은 소프트웨어적인 가치에 초점을 맞추는 글이 많이 보인다.

하지만, 이건 오히려 테슬라 S의 가치를 놓치고 있는 분석이다. 실리콘밸리의 개발자들이 많이 탄다고 해서 이들이 터치패널 조금 더 좋다고 1억을 넘나드는 가격의 테슬라 S를 구매하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아이폰이 전화 시장을 변혁시켜서 전화기를 IT 기기로 바꾼 것과는 다른 차원의 혁신이다. 아이폰은 기본적으로 전화 본연의 기능에서 기존의 휴대폰보다 좋지 않았다. 아니, 더 나빴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T 기기로서의 높은 가능성을 제시했고, 전화도 그럭저럭 되었기 때문에 휴대폰이라는 카테고리의 성격 자체를 바꿔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자동차 본질에 충실한 테슬라 S

하지만 테슬라 S의 경우는 다르다. 테슬라 S의 센터패널이 좋다고 아이패드 놔두고 시동걸어놓고 센터패널로 놀고 있을까? 테슬라 S의 혁신은 오히려 자동차의 본질에서 찾아야 한다. 테슬라 S는 IT 기기가 아니라 자동차로서 경쟁 차종을 여러 측면에서 압도하기 때문에 혁신인 것이다. 근데, 단순히 경쟁자를 앞지른다고 혁신이라고 하지는 않잖아? 벤츠의 신형 S 클래스는 거의 모든 면에서 경쟁차종인 A8과 7 시리즈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그럼 S 클래스도 테슬라 S만큼 혁신적인가?

테슬라 S가 S 클래스의 성과보다도 더 혁신적인 이유는 스파크 EV를 생각해보면 된다. 4천만원짜리 경차. 당신 같으면 사겠는가? 보조금 없이면 말도 안되는 가격이고, 보조금이 최대로 붙어도 별로 사고 싶지 않은 차다. 1천만원이면 그냥 스파크 살 수 있는데 뭐하러? 반면, 테슬라 S는 기꺼이 S 클래스나 7 시리즈, A8를 비교 선상에 올려놓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실제로 세 차종보다 많이 판 시기도 있었다. 왜 스파크 EV는 맞출 수 없었던 가성비를 테슬라 S는 맞출 수 있었는가? 이게 포인트다.

전기차의 장단점

테슬라 S가 이걸 해낼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전기차를 연료비의 경제성 관점에서 봐오던 것에서 탈피해서, 전기차의 다른 장점을 활용하고 발상의 전환을 통해 단점을 극복하거나 오히려 장점으로 바꿔냈기 때문이다.

테슬라 이전까지 전기차의 장단점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테슬라 S 이전에는 전기차의 가치는 저렴한 연료비에 있다고 보고 차를 싸게 만드는데 주력했다. 그래서 테슬라 S처럼 플래그십을 노리는 경우는 없었고, 스파크 EV나 레이 전기차처럼 작고 저렴한 차를 노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배터리가 워낙 비싸서 전기차의 가격을 해당 세그먼트에서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일단 기본으로 4천만원은 깔고 가야 하는 것이다. 아니면 중국처럼 기존 자동차 산업의 규제를 벗어나서 카트에 가까운 자동차를 만들거나. 게다가 차 자체를 전기차용으로 설계한 것이 아니라 기존 플랫폼을 변경한 것이라서 배터리 때문에 공간 잠식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SM3 전기차의 경우는 트렁크가 경차 수준이 되어버렸을 정도.

가성비 관점의 포지셔닝

그런데 사실 중요한 건 경제성이 아니라 가성비였다. 비싸도 그만큼의 만족감을 준다면 납득할 수 있는 소비자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니까 전기차가 비싼 만큼 그에 걸맞는 만족감을 줄 수 있다면 충분히 시장 진입이 가능한 것이다. 그럼 전기차의 장점 중에서 경제성을 빼버린다면 어떨까. 전기차에는 또다른 장점이 있다. 초기 가속력이 내연기관 자동차에 비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전기차 중 가장 낮은 급이라고 할 수 있는 스파크 EV도 출발 직후 잠깐 동안은 포르쉐를 앞선다. 잠깐 앞서는 게 뭐 대수냐고 하겠지만, 국산차 중 내연기관 자동차는 단 한 차종도 저 포르쉐를 잠깐 동안도 이기지 못한다. 그 정도로 전기차의 초기 가속력은 좋다.

그럼, 초기 가속력이 좋고, 경제성을 추구하는 대신 가성비만 맞춰주자고 생각한다면 전기차로 어떤 차를 만들면 좋을까? 당연히 스포츠카 아니겠는가. 그래서 사실 테슬라 혁신의 시작은 로드스터였다. 제로백 4초대의 로드스터에 9천만원이면 나쁘지 않은 가격이다. 비교를 하자면 벤츠 SLK 55 AMG는 1억 2천만원에 달하는데 더 느리다. 그래서 테슬라 로드스터는 실제로 스포츠카 구매자들의 후보선상에 올라갈 수 있었다.

테슬라 S 역시 경제성이 아니라 가성비에 초점을 맞추는 관점을 이어갔다. 배터리 때문에 비쌀 수 밖에 없는데, 가성비를 맞춰서 세단을 만든다면 SM3 전기차나 쉐보레 볼트 같은 포지션을 노려서는 안될 것이다. S 클래스 같은 플래그십 세단을 노려야 한다. 사실 테슬라 S가 개발되던 시기와는 시장이 많이 변해서 지금 비교를 하자면 S 클래스보다는 6시리즈 그란쿠페나 A7, 혹은 여타 고성능 스포츠 세단과 경쟁할 법한 상황이지만, 아무튼 비싼 만큼 좋은 차를 만드는 관점은 여전히 혁신적이었다. 지금은 신형 S 클래스가 워낙 잘 나와서 S 클래스가 앞선다고 할 수 있지만, 2년 전만 해도 테슬라 S가 나은가 S 클래스가 나은가 물어보면 쉽게 대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플래그십들은 동력 성능도 매우 좋지만 테슬라 S는 그 모든 플래그십 세단보다 더 빨랐고, 핸들링은 BMW와 비교되었고(사실 7시리즈보다는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브레이크는 최상급이다. 흔히 자동차의 본질이라고 하면 잘 달리고, 잘 돌고, 잘 서는 것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테슬라 S는 전통의 독일 명차들을 이겼던 것이다. 물론 실내의 호화스러움에서는 독일 3사의 플래그십에 미치지 못했지만, 편의성만큼은 뒤지지 않았다. 그래서 비슷한 가격대에서 경쟁할 수 있었고, 심지어 판매량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기도 했던 것이다.

배터리의 혁신

그런데, 가성비라는 게 맞추고 싶다고 맞춰지는 게 아닐 텐데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키는 배터리에 있었다. 전기차의 모든 단점은 배터리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터리가 비싸니까 가격이 올라가고, 무거우니까 더 높은 동력 성능이 필요해지고, 가솔린 차만큼 주행거리가 나오려면 배터리 용량이 커야하니 공간도 많이 차지한다. 그런데 배터리 가격 부분은 플래그십과 경쟁하면서 걱정이 덜어진다. 플래그십 세단들은 동력 계통도 고성능이 들어가면서 방음처리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전기차 배터리 못지 않게 들어간다. 이 부분은 앞의 포지셔닝으로 해결된 것.

그 다음이 배터리의 무게와 공간인데, 테슬라 S는 배터리를 차체 바닥에 깔아버림으로써 배터리의 무게라는 단점을 오히려 장점으로 전환시켜버렸다. 무게중심이 대폭 낮아져서 코너링 성능이 좋아진 것이다. 애물단지 배터리가 오히려 도움이 된 것이다. 기존의 전기차들은 내연기관 자동차의 구조를 크게 바꾸지 않고 전기차를 만들려고 했기 때문에 트렁크나 엔진룸에 배터리를 배치했는데 그러다보니 공간도 많이 먹고 무게는 무거워졌지만 오히려 무게중심은 올라가기도 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는데, 테슬라 S는 아예 차체를 재설계하면서 무게를 장점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고 공간도 오히려 더 넓게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테슬라 S는 엔진룸이 비어서 트렁크로 활용 가능하고, 뒷 트렁크도 아이 둘을 앉힐 수 있을 만큼 넓고 센터터널도 없어서 공간 활용이 매우 효율적이다.

물론 늘어난 무게 자체는 어쩔 수 없는데, 이건 차체 경량화로 해결해서 실제로 타사 플래그십 세단과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물론 배터리를 바닥에 깔았기 때문에 배터리 용량을 크게 늘릴 수 있었던 점도 전기차의 주요한 단점인 주행거리가 짧다는 점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었다. 간단한 아이디어 같지만 이거 하나가 전기차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장점으로 바꿔낸 것이다.

인프라

주행거리가 짧다는 단점을 대용량 배터리로 어느 정도는 극복했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제아무리 한 번 충전으로 400km를 가더라도 다시 충전할 곳이 없다면 시티카 신세를 벗어날 수 없다. 플래그십으로 포지셔닝해놓고 출퇴근이나 하라고 한다면 팔릴 리가 없다. 그래서 테슬라가 시도한 것은 전국적인 인프라 구축이다. 테슬라의 충전소인 수퍼차저는 테슬라 S를 무료로 충전할 수 있으니 사실상 테슬라 S 오너들은 유류비가 거의 안 드는 셈. 가솔린 대형차의 연비를 생각한다면 국내 기준으로 연간 500만원~1000만원은 절약하는 셈. 플래그십의 가성비를 더욱더 압도적으로 만들어버린 것. 만일 테슬라가 지속적인 원가 절감에 성공해서 소형차 급으로 내려와서 이 서비스를 하는 날이 온다면...

사실 전기차 충전소를 늘리면 된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정도의 투자를 과감하게 실행하는 추진력이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따지고보면 그렇게 엄청난 비용이 든 것도 아니다. 태양광 충전소의 경우 충전소 1개 설치 비용이 30만 달러라고 하는데, 100개 설치해도 3천만 달러. 근데 테슬라가 상장하면서 확보한 현금만 2억 달러니 못할 것도 없는 돈이다. 참고로 현대차가 삼성동 부지 매입한 돈이면 무려 태양광 충전소 3만개를 설치할 수 있고, 국내에 주유소는 1만 2천 정도 된다. 문제는 돈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돈을 어디에 쓸까의 판단인 것이다. 

모델 E 출시, 그리고 경쟁자들

테슬라가 모델 S가 잘 나가면서 그 동안 꾸준히 기술 개발을 한 건지 이번엔 모델 E를 내놓았다. 조금 더 저렴한 시장을 노리긴 하지만 여전히 스파크 EV의 시장은 아니다. 여전히 포지셔닝의 이점은 가지고 가고, 플래그십보다 오히려 스포츠 세단으로서의 특성이 더 중요한 시장이니까 또다른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기술이 더 발전할수록 더 아래로 내려올 텐데, 그 시점에 또 뭔가 혁신이 하나 더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그게 뭐가 될지 궁금했는데, 닛산 리프를 보면 그냥 보조금이 그걸 해낸 것 같다. 어쨋든 닛산은 테슬라가 닦아놓은 길 위에서 전기차 시장 1위를 차지했는데, 테슬라가 이걸 그냥 두고볼지, 계속 프리미엄 전략을 밀고 나갈지 궁금하다. 

BMW i8, i3는 사실 잘 모르겠다. 자세히는 안봤지만 대충 봐서는 모든 면에서 테슬라에 밀리는 것 같다. i3는 그 돈 주고 시티카를 사라는 건지?

근데 사실 내가 생각하는 더 중요한 경쟁자는 S 클래스다. 여전히 전기차는 전기차끼리의 경쟁보다 내연기관과의 경쟁이 더 중요하다. 갖가지 호화 장비와 신기술들로 앞서가는 벤츠를 테슬라가 따라갈 수 있을까? 테슬라 S가 NHTSA 충돌 테스트에서는 만점을 받았지만 IIHS 테스트를 받는다면 전방 충돌 방지 장치가 없어서 제네시스보다도 아래로 평가 받게 된다. 완전한 자율 주행 자동차를 준비하고 있다지만 수년 전부터 부분적으로 실용화해오던 벤츠보다 앞설 수 있을까? 벤츠의 디스트로닉 플러스 정도를 안정적으로 해내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구글의 무인자동차도 실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는 하지만, 계속 조금씩 실용화를 해올 수 있었던 기존의 자동차 업계와 실험 수준에서 하다가 한 방에 실용화해야 하는 구글의 경쟁에서 구글이 과연 승산이 있을까? 단순히 소프트웨어를 잘한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드림카

요약하면 테슬라 S가 혁신인 이유는 센터페시아의 대형 터치패널과는 거의 상관 없고, 그동안 내연기관 자동차에 상품성에서 크게 뒤져왔던 전기차로 오히려 앞서는 상품성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첫번째 이유는 전기차의 높은 가격에 걸맞게 플래그십으로 포지셔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배터리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 기술 혁신을 통해 자동차로서의 상품성을 극적으로 높일 수 있었고, 그 외에 자잘한 여러 가지 혁신이 뒤따랐다.

폭스바겐 cc 시승기를 통해서 내가 알페온의 장점과 cc의 장점을 합친 차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었는데, 말하자면 테슬라 S가 바로 그런 차다. 승차감이 다소 딱딱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대형차로서 크게 부족함이 없는 승차감이고, 실내공간도 알페온과 비슷, 트렁크는 더 크고 프렁크도 있고 편의장비는 더 좋다. 패밀리카로서는 최고의 세단. cc의 장점은 오히려 테슬라 S가 훨씬 더 강하게 갖고 있다. 어지간한 스포츠카를 뛰어 넘는, 아니 수퍼카에 근접하는 성능이다. 남자들의 로망인 혼자 탈 땐 스포츠카, 가족과 함께 탈 때는 안락한 패밀리 세단을 차 한대로 실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앞서 A7과 비슷한 포지션이라고 했지만 사실 거의 모든 면에서 테슬라 S가 한 수 위다. 테슬라 모델 S vs 포르쉐 파나메라 디젤 vs 애스턴 마틴 라피드 S에서는 테슬라 S를 파나메라보다도 높이 평가하고 있는데, 파나메라가 많은 사람들에게 드림카로 손꼽힌다는 것을 생각하면 테슬라 S도 드림카로 손색이 없다. 

그래서 나도 다시 테슬라 S를 드림카로 정했다. 원래 테슬라 S를 드림카로 하고 싶었는데 한국에 출시 예정이 없다고 해서 재규어 XJ로 바꿨는데, 이제 한국에 출시된다고 하니 원래대로 돌아와야지. 언제 쯤 저런 멋진 차를 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