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unicationIsNotAboutSpeech

 

의사소통을 잘한다는 건 뭘까? 단순히 말을 잘하고 잘 듣는 건 아닐 것이다. [미국 최고의 교수들은 어떻게 가르치는가]를 읽으면서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학습자 중심의 사고다. 잘 가르치는 것보다 학습자가 잘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며 그것이 좋은 교수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기준이라는 이야기였다. 의사소통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의사소통을 잘하는 것은 단지 청산유수처럼 설득력 있게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하는 내용이 상대방에게 잘 전달되는 것이다. 핵심 키워드 다 빼먹고 대명사만으로도 내용을 다 전달할 수도 있고 흠 잡을 때 없는 완벽한 연설로도 의사소통에 실패할 수 있다. 그렇다면 좋은 의사소통의 조건은 무엇일까?

이런 말이 있다. 재능 있는 자는 열심히 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열심히 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학습에 관해서도 비슷하다. 좋은 학습이 이루어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학습에 대한 흥미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효과적이다. 그런 면에서는 의사소통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좋은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려면 화자와 청자 모두 대화에 흥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길고 지루한 연설을 하면서 청자에게 단지 열심히 집중해서 듣기를 요구하는 것은 좋은 의사소통이 될 가능성이 낮다. 물론 공부를 좋아하지 않지만 단지 열심히 하기만 하는 사람도 좋은 대학 가는 걸로 봐서 지루함을 극복하는 능력이 좋은 사람들은 일장연설에서도 충분히 내용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지 열심히만 하는 사람이 공부에 흥미를 느껴서 즐겁게 하는 사람을 이길 수는 없다. 그리고 세상에는 지루함을 견디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아주아주 많이 존재한다.

그래서 길고 장황한 연설은 그 자체로 나쁠 수 있다. LongSpeeches 에서도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아무리 조리 있는 연설이라도 길어지면 청자를 지루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무언가 자신의 주장을 펼칠 때는 주장만 내세우는 것보다는 부연 설명을 꼼꼼하게 하는 것이 더 설득력 있을 꺼라는 기대를 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모든 반론의 가능성을 미리 생각해서 조심스럽게 주장을 펼치고 논리적 허점이 없는 완벽한 연설을 하려 애쓴다. 하지만 부연 설명 한 마디 할 때마다 조금씩 청자는 지루함의 부담을 느끼기 시작한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조직이라면 상대방의 말을 쉽게 끊을 수 없기 때문에 이 부담은 더 커진다.

이런 현상은 의사소통을 보다 길게 보면 극복할 수 있다. 한 번의 발언으로 내 모든 뜻이 전달되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의사소통도 incremental하게 할 수 있고 또 그것이 효과적인 경우가 많다. 양쪽 모두 화제에 대해 이해가 깊고 생각이 비슷하다면 긴 의사소통은 필요 없다. 염화미소만으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물론 화제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다르거나 생각이 다르다면 한 번의 발언으로는 의사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짧고 부족한 발언은 청자의 발언을 유도한다.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에 대한 질문, 동의하지 않는 내용에 대한 반론. 그래서 청자에게 추가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다시 화자가 줄 수 있게 유도한다. 화자가 모든 반론의 경우를 다 예상해서 부연 설명으로 가득 채우면 청자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정보까지 들어야 하지만 짧은 주장만 나온다면 청자는 자신이 원하는 부연 설명을 요청할 수 있다. 말하자면 CommunicationOnDemand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의사소통에서 생기기 쉬운 지루함을 쉽게 줄일 수 있다. 필요한 말만 하면 되기 때문에 의사소통 비용도 줄어든다. 또한 완벽한 연설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떨치면 화자도 좀더 편안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다.

이 방식의 또다른 장점은 서로의 코드를 맞춰나가기 쉽다는 것이다. 일방적인 연설이 아니라 짧은 대화가 오가다 보면 서로의 생각의 차이가 금방 드러난다. 긴 연설 중에는 서로의 생각의 차이가 청자에게만 노출되고 또 그 차이가 여러 개일 경우 다 기억하기도 어렵지만 짧은 대화가 오가면 생각이 비슷한 화제는 금방 종결될 것이고 생각이 다른 부분이 금방 드러나고 거기에 집중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충돌의 해소에 빨리 접근할 수 있다.

Communication은 의사전달이 아니라 의사소통이다. 대화가 일방으로 흐른다면 그건 의사소통이 아니라 그냥 의사전달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회의에 발언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팀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회의는 철저하게 그 회의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으로만 구성되어야 한다. 회의에서 한 사람이 오랫동안 발언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것 뿐 아니라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말하는 것도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돌아가면서 말을 하게 되면 흥미가 생기는 주제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할 말을 생각해서 하게 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게 된다. 말하면서 다들 뿌듯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과연 끝나고 나서 무엇이 남는가는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나는 이제 이런 문제를 많이 극복한 것 같다. 예전에는 완벽하게 머리 속에서 논리가 완성되지 않으면 발언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팀웍이 잘 맞는 사람들과 한동안 일을 하게 되면서 speech의 필요성이 극도로 줄어들었고 그러다보니 필요한 말만 하는 습관이 생겼다. 처음에는 그런 습관이 코드가 안 맞는 사람들에게도 유효할지 의문이었는데 이제는 유효하다는 결론을 내려도 될 것 같다.

그리고 창희형에게 배운 아주 훌륭한 표현, '멍'. 이것도 정말 훌륭한 CommunicationTrigger인 것 같다.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