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War

생각했던 것보다, 그리고 내가 들은 평들보다 완성도가 높았다. 이걸 정말 우리나라에서 만든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CG 수준은 정말 일류 CG 영화에 근접했다. 스토리도 듣던 것처럼 개차반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전설에 기반한 영화인만큼 전설대로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 과정을 얼마나 실감나고 재미있게 그려내느냐가 문제인 것 뿐. 비슷한 장르의 영화랑 비교해서 점수를 매겨 본다면 쥐라기공원 10점, 트랜스포머, 스파이더맨 9점, 고질라 8점, 300 7점 정도로 볼 때 디워는 6점 정도는 충분히 되는 것 같다.

좀더 상세히 뜯어본다면, 일단 이무기 하나는 제대로 그려냈다. 뭔가 정말 무시무시한 느낌이 들고 움직임도 괜찮았다. 빌딩 타고 오르는 부분도 약간은 아쉬움이 느껴지지만 그런대로 괜찮았고. 마지막에 이무기끼리 싸우는 장면도 괜찮은 편. 용도 기반인 이무기를 잘 그려냈기 때문에 상당히 훌륭했다. 이제껏 영화/만화에서 나온 모든 용 중에 최고라고 할 수 있을 듯. 마지막 용과 이무기의 대결에서는 용의 막강함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아서 맘에 들었다. 아리랑도 내가 듣기엔 상당히 훌륭했고.

하지만 추격씬에서는 연출이 너무 미숙했다. 이무기의 크기와 유연성에서 짐작되는 속도라면 자동차로는 절대 도망칠 수 없어야 하는데 거의 따라잡힌 상황에서 자동차로 도망가는 장면이 너무 어색했다. 실질적으로 이무기가 맘만 먹었으면 모든 추격 장면에서 잡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거듭 도망에 성공하는 모습은 도망갈 수 밖에 없는 설정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줬고 추격씬이 전혀 아슬아슬한 느낌을 주지 못했다. 쥐라기공원의 추격씬의 그런 느낌을 줄 수 있었다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부라퀴의 군대가 느닷없이 반지의 제왕 컨셉으로 등장한 것은 좀 설정상의 에러였다. 사실 반지의 제왕 컨셉이 등장하지 말란 법은 없지만 너무 대놓고 베껴서 더 안 좋게 느껴진 것 같기도 하다. 그냥 부라퀴의 군대 자체만 놓고 보면 꽤 잘 묘사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근데 전투에서는 밸런스 문제가 좀 있었다. 조선시대의 병사들을 마치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제압하는 듯한 전투 장면은 부라퀴의 군대가 막강하다는 느낌보다는 뭔가 사실감이 떨어지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철갑을 입고 있으면서도 보천대사와 하람에게는 거의 원샷 원킬 당하는 장면도 어색했다.

무엇보다 아쉬웠던 것은 미국군과의 전투 장면이다. 트랜스포머에서는 로봇과 미국군 양쪽 모두 막강하다는 느낌이 줬기 때문에 전투 장면이 긴박감이 넘쳤는데 디워에서는 뭔가 둘다 약한 느낌이 들었다. 부라퀴의 군대의 무기를 생각해보면 지상전에서는 미국군에 그냥 쳐발려야 되는 건데 총알 수십 방 맞아야 병사 한둘 쓰러지는 것도 좀 에러고 미국군도 그 강한 화력이 제대로 묘사되지 못했다. 탱크도 너무 약한 느낌을 줬고. 그래서 뭔가 격렬하고 아슬아슬한, 누가 이길지 모르는 느낌이 드는 전투가 아니라 누가 이길지 모르긴 모르겠는데 별 상관 없을 것 같은 전투가 되버렸다. 오히려 부라퀴의 군대가 물량으로 밀고 미국군이 화력으로 미는 그런 설정이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그래도 공중전만큼은 훌륭했다. 건물 옥상에서 아파치 헬기의 등장도 뻔히 뭔가 구하러 올 꺼라는 게 예상되긴 했지만 어쨋든 아파치 헬기의 명성을 보여준 장면이었고 때맞춰 와이번(?)들이 날아와서 공중전을 벌인 것도 괜찮았다. 와이번들이 불덩이를 미사일처럼 쏘는 건 좀 에러였지만 육탄전으로 헬기와 붙으면서 일진 일퇴를 거듭하는 모습은 아주 괜찮았다. 워3에서 플라잉 머신에 건물 테러 당하고 있을 때 히포그리프가 날아와서 맞서 싸우는 느낌이랄까-_-

전반적으로 스토리라인 자체는 그닥 문제 삼을 만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사실 트랜스포머나 300, 쥐라기공원에는 무슨 스토리가 있는가. 그냥 스토리라인만 보면 거의 같은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스토리가 아니라 상황 연출과 설정의 세심함 부족이다. 이런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상황에 아슬아슬한 긴박감, 숨막힐 것 같은 긴장감을 불어 넣는 것이다. 근데 중요한 추격씬들에 전혀 잡힐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지 않았고 전투 장면에서도 잘 싸운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관객들에게 어느 한 쪽이 이기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게 만들지 못했다. 쥐라기 공원에서 공룡에 쫓길 때의 그 긴박감, 반지의 제왕 공성전에서의 그 장엄함, 트로이에서 전쟁의 참혹함과 영웅의 화려함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그런 느낌, 트랜스포머에서 로봇에 공격당하다가 A-10 두 기가 날아와서 구해줄 때의 그런 느낌. 이런 느낌을 디워에서 좀 살렸다면 정말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 것 같다.

어쨋거나 3류 평론가 진중권은 좀 씹어야 할 것 같다. 먼저 주인공이 도망만 다니는 걸 가지고 씹었는데 이건 정말 에러다. 주인공이 이무기랑 싸워서 이기기라도 하란 말인가? 그럼 터미네이터는 뭐고 트랜스포머는 뭔가. 대군이 여자 하나 쫒아다닌다고 뭐라 그러는데 이것도 에러다. 여의주를 들고 있기 때문에 쫒는 것 아닌가. 반지의 제왕에서도 그 많은 대군이 반지 하나를 쫒았고 드래곤퀘스트도 여자 하나에 온갖 괴물들이 달려들었다. 극작의 기초 같은 소리도 늘어놓던데 영화는 극작이 아니다. 그야말로 영화의 기초도 모르는 것 같다. 영화는 사실 스토리라인 개판이라도 아무 상관 없다. 관객들에게 재미를 주면 되는 것이다. 까놓고 말해서 영화제에서 상 받고 평론가들이 높이 평가하는 영화들 보면 졸라 재미 없지 않은가. 디워가 CG만 훌륭하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영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디워는 CG만 훌륭한 영화가 아니라 CG가 훌륭한 영화인 것이다. 오페라의 유령 같은 영화도 음악만 훌륭한 영화가 아니라 음악이 훌륭한 영화인 것이고 러시아워는 성룡의 액션만 괜찮은 영화가 아니라 성룡의 액션 때문에 보러 가는 영화인 것이다. 이걸 이해하지 못한다면 평론은 이제 그만하는 게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