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텐인리스팬 여정의 시작
스테인리스 프라이팬(이후 스텐팬) 이야기 좀 해볼까 한다. 7~8년 전인가, 요리 유튜브들을 보다가 요리는 스텐팬으로 해야 고온조리가 쉬워서 맛있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아마도 아미요의 영상이었던 듯)를 봤었다. 근데 그걸 보고도 굳이 스텐팬 사야지 하는 생각은 안했는데, 어느 날 문득 마트에 갔다가 2만원 짜리 스텐팬을 보고 이거면 싸니까 실패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충동구매를 했고, 그 뒤부터는 요리에 주로 스텐팬을 쓰고 있다. 생각보다 예열은 어렵지 않았고, 내가 하는 요리 중에 잘 달라 붙는 요리는 그리 많지 않았다.
광고에 넘어가서 산 스테니 팬
근데, 그게 싸구려다보니 금방 바닥에 변형이 생겼다. 반으로 약간 접히듯이 되어서 그냥 놓으면 손잡이 쪽으로 기울어진다. 기울기가 심하진 않아서 인덕션은 충분히 동작하는데 기름이 아래 쪽으로 모인다. 하지만, 이게 생각보다 불편하진 않고, 가끔 스테이크할 때는 베이스팅하기도 좋고 해서 그냥 써왔다. 그러다가 최근에 좀더 좋은 팬을 하나 사서 써보고 싶은 생각에 이리저리 좀 탐색을 하던 차에, 또 다른 요리 유튜버인 쿠자 영상에서 스테니라는 브랜드의 팬을 프로모션하는 걸 봤다. 쿠자도 자기가 스텐팬을 만들고 공구를 진행한 적이 있어서, 나는 그게 그거인 줄 알았고, 브랜드가 바뀌었나보다 하면서 별로 따져보지 않고 스테니 팬을 샀다.
한창 광고비를 엄청 쏟아부었는지 스텐팬을 검색해본 이력이 있는 나에게 스테니 팬 광고가 엄청 떴고, 연마제가 없다는 점 등 장점을 어필하는 게 꽤 매력적으로 보였다. 가격은 7만원 대. 쿠자도 추천한다고 하니 믿을 만하다 싶어서 샀다. 근데, 이게 왠걸, 직접 써보니 뭔가 이상했다. 이전에 쓰던 팬과 달리 음식이 엄청 눌어 붙었다. 계란후라이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쉽지 않을 만큼 예열이 잘 되지 않았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다시 쿠자의 영상을 찾아보니 그런 게 없다. 다시 찾아보니 쿠자는 자기가 만든 팬 멀쩡히 잘 팔고 있는데, 스테니 팬을 밀어 줄 이유가 없어보였다. 유튜브 프리미엄이라 영상에 광고가 붙어서 나오는 것도 아닌데 내가 뭘 착각한 것일까?
그래서 좀더 알아보니 스테니 팬이 그다지 좋은 게 아니었다. 일단 스펙상으로는 4만원대면 충분할 정도의 스펙이라고 한다. 무연마제라는 것도 별반 장점이 아닌 게, 연마를 안했다는 거라서 표면도 덜 매끄러운 거고, 연마제도 한국은 기준이 매우 까다롭기 때문에 인체에 유해한 물질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수입산도 유해물질이 나오면 통관이 안 된다고. 나쁘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가성비가 안 좋은 팬이라는 평가가 가장 맞는 평가인 것 같다.
스텐팬의 과학
그래도 어쨋든 공들여 만든 제품이라는데 어째서 2만원대 싸구려보다도 논스틱이 잘 안되는 것일까? 그래서, 좀더 공부해보기 시작했다. 스텐팬에는 음식이 왜 붙는 것일까? AI에 물어보니 이 말 저 말 삽질하다가 논문 등의 근거가 있는 답변을 달라고 집요하게 추궁하니까 결과적으로 단백질과 금속 사이에 배위결합이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게 물리적인 결합이 아니라 화학적인 결합이었다는 것부터가 좀 신기했다. 내 화학 지식은 고등학교 수준에 멈춰 있는데, 배위결합은 그다지 깊이 배우지 않았던 것 같다. 여튼 이 결합은 꽤 강력하다고 하는데, 또 한 편으로는 화학적으로 결합된 게 긁는다든지 해서 물리적으로 뗄 수 있다는 게 오히려 신기했다. 아마도 스테인리스의 금속결합이 금속과 단백질 사이의 배위결합보다 강력하기 때문에 물리적 힘이 가해지면 더 강력한 금속결합이 유지되고 배위결합이 끊어지는 거 같다. 금속결합이 만약 더 약했다면 팬의 일부가 뜯어졌겠지. 그리고, 단백질의 결합은 배위결합과 비슷한 강도라서 달라붙은 부분과 분리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는 게 아닐까. 생선비늘처럼 단백질 본체(?)와 결합이 약한 경우는 배위결합이 더 강하니까 떨어지는 것일 테고.
그럼 이제 붙는 원리는 알았는데, 예열하고 기름을 두르면 논스틱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도 AI가 물을 때마다 답변이 달랐고, 처음에는 화학적인 중합체 피막이 형성된다는 식의 답변이 많았는데, 계속 집요하게 추궁하니까 물리적으로 스텐팬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크기의 요철이 있는데 그 요철이 팽창하면서 메워지고, 기름이 또 그 사이사이에 파고들어서 물리적으로 차단하는 막을 형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 그냥 기름만 둘러도 되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그게 눈에 보이지 않는 세밀한 틈새까지 다 기름이 붙어야 되는데, 눈으로는 기름이 다 덮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금속 표면 하나하나에 다 기름이 붙은 상태는 아니라서 안된다고 한다. 반대로, 예열만 잘하면 기름을 안 둘러도 논스틱이 어느 정도 된다고 하니 아마도 스텐팬의 요철이 메워지는 게 중요한 거 같다.
그럼 왜 어떤 팬은 논스틱이 잘되고 어떤 팬은 잘 안될까? 그것도 더 비싼 팬이 왜 더 잘 안될까? 이건 아직 과학적인 결론을 얻지는 못했으나, 대체로 열이 고르게 안 퍼져서 그렇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래서, 싸구려 팬과 스테니 팬으로 몇 가지 실험을 해봤다. 우선, 스테니 팬을 사고 내가 좀 신기했던 건 인덕션에 올렸을 때 어떤 부분이 가열되는지 뚜렷하게 알 수 있을 정도로 물이 끓는 지점이나 기름이 가열되는지점이 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처음에 이게 좋은 팬이라서 가열이 빨리 되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이제 이게 좀 의심스러워졌다. 그래서, 두 팬을 같이 놓고 물 끓이는 시간을 재봤는데, 거의 같은 시간이 나왔다. 근데, 끓이는 과정을 보니 스테니 팬은 딱 인덕션 코일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을 중심으로 끓어오르는데, 싸구려 팬은 좀더 넓게 끓어오른다. 그렇다면 가열 속도는 같은데, 그 열기가 퍼지는 전도가 느리다는 이야기 아닌가. 결과적으로 싸구려 팬이 열 전도율이 더 좋은데 가열 속도는 똑같다는 얘기다.
그래서, 일단은 스테니 팬은 별로 좋은 팬이 아니라는 1차 결론을 내렸다. 아직 확정 결론을 내리지 못한 이유는 설명하지 못한 현상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예열이 다 된 상태에서 불을 끄고 스테니 팬에 음식을 올리면 안 붙고 잘 미끄러지는데, 싸구려 팬은 그 상태에서도 좀 달라붙었기 때문이다. 근데, 싸구려 팬은 표면이 다 익고 나면 자연스럽게 떨어졌는데, 스테니 팬은 반대로 더 달라붙는 현상이 나왔다. 이건 아직 명확한 설명을 얻지 못했다. 다만, 원래 스텐팬에서 표면이 익기를 기다렸다가 떼는 게 정석처럼 이야기하는 걸로 봐서 스테니 팬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더 부자연스러운 현상이긴 한 것 같고, 그 이유도 아마 인덕션 코일이 있는 부분만 급하게 과열이 되고 나머지 부분으로 열이 잘 안 퍼져서 그런 거 아닐까 싶다. 아마도 스테니 팬은 코어에 사용한 알루미늄이 너무 얇은 게 아닐까 싶다.
구리코어 스텐팬을 찾아서
여튼, 이렇게 스테니 팬을 불합격시키고 다시 싸구려 팬으로 돌아왔는데, 영 기분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무래도 찌그러진 팬을 계속 쓰고 싶지는 않고, 좀더 좋은 스텐팬은 어떨지 궁금했다. 그래서 좀더 검색을 하다보니 스텐팬 코어로 알루미늄이 아니라 구리를 쓰면 열 전도율도 좋고, 열 보존율도 좋다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앞서 이야기한 쿠자도 구리코어 팬을 팔고 있었고, 국산 브랜드 중에 구리코어 팬이 여러 종류가 있었는데 다 평이 좋은 것 같다. 가장 혹했던 건 롤스보일 코퍼에디션인데, 이건 코어에 들어 있는 구리가 테두리까지 그대로 노출이 되어 보였다. 이거 말고 다른 것들은 다 테두리에서 스텐으로 다시 마감을 하는 형태였고. 이게 평가는 제일 좋은 거 같은데, 또 하나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게 표면에 요철이 있다는 거였다. 표면에 요철이 있으면 기름 코팅도 잘되고 덜 달라붙는다는 주장이 있지만, 신뢰할 만한 근거를 확보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롤스보일 코퍼에디션은 구리 관리용으로 구리 크림을 제공하는데, 나는 구리 크림을 준다는 게 장점으로 보이지 않고, 오히려 구리를 그럼 이걸로 관리해줘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단점으로 보였다. 디자인상으로도 매끈한 다른 팬들보다 구리 색이 중간에 있는 게 그리 예쁘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롤스보일은 제외하고 다른 것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근데 내가 구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아미요가 구리팬을 출시하겠다고 2개월 전인가 발표한 것 때문이었다. 그동안 모비엘이라는 브랜드에서 구리팬을 써왔는데, 쓰던 모델이 단종되서 아쉬운 마음에 직접 제작을 해본다고 했다. 그래서, 그거 나오면 기다렸다가 사려는 게 내 계획이었다. 근데, 구리팬에 대해 검색하던 와중에 아미요가 준비하고 있는 비아페라타라는 브랜드의 쇼핑몰에서 숨겨진 상품 페이지를 발견했는데, 가격이 40만원대로 적혀 있었다. 프라이팬이 40만원이라고? 예전에 샐러드마스터의 가격을 들었을 때만큼 놀랐다. 근데, 아미요가 분명히 가격 거품을 뺀다고 했는데? 그래서, 아미요가 전에 썼다는 모비엘의 구리팬을 찾아보니 90만원을 넘어간다. 100만원 이상 가는 것도 많고. 정말 여기서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장인이 아무리 명품을 쓰고 싶어한다지만, 이 정도의 가격 차이를 합리화할 만큼의 성능 차이가 있을까?
성능 차이가 크다고 해도 일개 주부인 나에게 그 정도 성능 차이가 필요하진 않았다. 그래서, 아미요의 팬을 기다리는 것은 포기하고 구리가 코어로 들어 있는 다른 스텐팬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쿠자팬도 다시 찾아봤더니 쿠자도 구리코어를 이미 출시해서 팔고 있었고, 쿠자팬과 같은 제조사에서 만든 쉐프윈이라는 브랜드에서도 나오고 있었다. 이외에는 생각보다 구리코어가 흔하지 않았다. 결국 최종적으로 롤스보일까지 다시 후보에 포함시켜서 고민을 하다가 쿠자팬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어쨋든 자기 유튜버 계정을 걸고 만드는 건데 좀 낫지 않겠나 싶은 것도 있고, 롤스보일은 구리 노출 문제와 요철 문제가 걸렸고, 쉐프윈에는 28cm 팬이 없었다.
쿠자 커퍼코어 28cm 프라이팬 구입
그래서 최종적으로 선택한 게 쿠자의 커퍼코어 28cm 프라이팬이었다. 가격은 9만원대. 여전히 스텐패을 이 정도 가격을 주고 살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부담스러운 가격도 아니라서 샀다. 배송은 하루 만에 왔고, 며칠 써봤다. 일단 가장 큰 소감은 엄청나게 무겁다는 것이었다. 내가 나름 데드리프트 140kg를 드는 힘캐인데, 이걸로 만테까레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겁다는 건 결국 두껍다는 이야기라, 가열 속도도 그리 빠르지 않았다. 근데, 스테니 팬처럼 여기 인덕션 코일이 있네? 하는 걸 알 수 있게 해주진 않았다. 아마도 열 전도율은 구리의 명성에 걸맞게 좋은 것 같다. 열 보존율도 엄청 좋다는 게 체감된다. 물 끓이다가 불을 끄면 다른 팬들은 다 1~2초 이내에 끓는 게 사그러드는데, 쿠자팬은 한동안 계속 끓는다. 집 인덕션이 안전 온도가 좀 낮아서 고기 구울 때 인덕션이 자주 꺼지는데, 이 팬은 꺼져도 한동안 잘 구워진다. 스테니 팬은 싸구려 팬보다 좋은 게 맞나 아닌가 판단이 안되었는데, 쿠자팬은 확실히 장점이 체감된다.
다만, 그렇다고 전반적으로 사용 경험이 더 좋냐고 하면 그건 애매하다. 생각보다 그 2만원 짜리 싸구려 팬이 괜찮았다. 찌그러지지만 않았어도 별 불만 없이 쓰지 않았을까 싶은 느낌? 근데 안 찌그러지려면 바닥이 두꺼워야 한다고 하니 결국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하면 쿠자팬이 적절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은 든다.
One more thing, 코팅팬
나는 저녁과 주말을 맡아서 주로 스텐팬을 쓰지만, 아침을 맡은 아내는 주로 간편식을 해주기 때문에 코팅팬을 선호한다. 근데, 전에 쓰던 쿡셀팬은 원래부터 잘 달라붙는 편이기도 했는데 코팅이 점점 벗겨지는지 요즘은 더 달라붙어서 교체가 필요해졌다. 쿡셀팬은 스텐팬 위에 코팅을 한 거라서 코팅 벗겨져도 비교적 안전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약간 못 미덥기도 하고, 달라붙으면 코팅팬으로서의 가치가 없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서, 새로 사기로 했다. 그동안 코팅팬도 여러 개 샀지만 뾰족하게 만족스러운 건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좀 열심히 찾아보고 사려고 했다. 근데, 코팅팬은 스텐팬과 달리 아주 많은 유튜버들이 공통적으로 한 제품을 지목했다. 알텐바흐 디펜더스s다. 일단 이 제품에 대해 나쁜 편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고, 리뷰도 매우 평점이 높고, 긍정적인 후기가 매우 일관되게 나온다. 유튜브에서 이 정도로 한 제품에 대한 평가가 일관되는 경우는 보기 힘들다. 그래서, 이걸로 결정하고 샀다. 가격은 11만원대.
근데, 이 제품 역시 쿠자팬과 첫 느낌이 같았다. 진짜 무겁다. 거의 같은 무게인 것 같다. 아내가 써야 해서 무게가 좀 걱정되긴 하는데, 어차피 간편한 요리들만 하는 용도라서 들어올려야 할 일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다른 제품에 비해 수명이 세 배 이상은 된다고 하니 돈값은 충분히 하는 것 같다. 스텐팬 계열에 모비엘의 미친 가격 제품이 있었던 것처럼, 코팅팬에도 수십 만원 짜리 제품이 있고, 그 중에는 알텐바흐보다 더 좋은 제품들도 있는 것 같지만, 굳이 거기까지 갈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이 제품의 장점은 코팅력이 오래 간다는 거여서 얼마 안 써본 지금 시점에서 평가를 이야기하는 건 별 의미 없겠지만, 아직까지는 상당히 좋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