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과 일하는 즐거움


Youngrok Pak at 3 years, 10 months ago.

내가 오픈마루를 다니던 시기 즈음, 개발자 커뮤니티의 주요 이슈는 즐겁게 일하는 회사를 만들어가는 것, 생산적으로 일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구글 같은 회사가 이상으로 떠올랐고, 많은 회사가 구글을 닮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최근 몇년 간은 그런 이야기가 쏙 들어가고 스타트업과 성공이 키워드가 되었다. 스타트업으로 성공하려면 죽어라 일하는 것 쯤은 감수해야지. 구글이라고 다 좋은 줄 아냐. 대박 나서 돈 벌면 다 해결돼. 이상과 현실은 달라. 뭐 이런 분위기랄까.

스타트업 성공 사례도 제법 많아졌다. 소위 exit을 경험한 창업자들도 많아졌고, 대기업이 새로운 분야에서 성공을 일궈내기도 했다. 스타트업의 성공이라는 관점에서는 한국도 제법 실리콘 밸리를 따라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에는 구글이나 페이스북처럼 존경 받는 IT 회사가 없다. 대학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인 회사들은 있지만, 소위 말하는 탑 클래스의 개발자들이 선망하는 회사는 보이지 않는다. 개발자들 모임에 나가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성공 가도를 달리는 회사에 다니는 개발자들도 그다지 좋은 이야기를 늘어놓지 않는다. 가장 많이 들리는 이야기는 스톡옵션이나 지분 계약이 만료되는 1~2년 후에 다시 나와서 창업하겠다는 이야기. 왜일까. 일의 재미로 따지면 무에서 성공을 이끌어내는 것 못지 않게, 중견 기업을 성장시켜서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해가는 것도 신나는 일일 텐데.

개발자에서 창업가로 변신한 사람들은 확실히 성공을 더 중시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스타트업에 참여하고 있으면서도 스스로의 정체성을 창업가보다 개발자로 정의하고 있는 사람들은 성공 자체보다 일하는 즐거움을 더 중시하는 것 같다. 뛰어난 개발자들이 스타트업을 선호하는 이유도 대박 성공을 내고 싶어서라기보다 더 자유로운 문화에서 일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인 것 같고.

그게 꼭 개발만 하고 싶다는 것과는 또 다른 이야기인 것 같다. 내가 인정하는 개발자들은 대부분 개발 뿐 아니라 내가 개발한 제품이 소비자에게 어떤 유용을 주는가에도 관심이 많았고, 개발 실력도 뛰어나지만 UX, 데이터분석, 디자인, 수익 모델,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고 있고, 실제 지식도 다른 분야에서 수년간 일한 사람 못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좋은 제품을 만들고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과정, 그걸 즐겁게 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걸 즐겁게 하지 못한다면 설령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기업이라 할지라도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물론 창업자들은 대개 성공 그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즐거움을 느낀다. 성공의 즐거움은 단지 돈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뭔가 해내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창업자들이 그런 성공 가도를 달리더라도 그들이 뒤늦게 채용한 직원들까지 그 즐거움을 공유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회사가 매달 두 배씩 성장하더라도 자신이 매일 만져야 하는 코드가 PHP라면 괴로워하는 개발자들이 많다. 물론 개발자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경험한 회사 중에 스타트업의 역사를 새로 쓴 모 회사는 매주 10명을 뽑으면 1명이 남는 부서도 있었고, 부서장 책상 위에 사표가 수북이 쌓여 있는 부서도 있었다. 그들은 회사가 성장하는지 몰라서 나갔을까?

이것은 성공한 창업가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이다. 자신은 늘 재미있고 열심히 일했으니까, 자기 회사는 즐겁게 일하는 문화를 가진 회사라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뒤늦게 채용한 직원들이 자기처럼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그걸 그 직원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그 직원에게는 자기만큼의 지분도, 권한도 없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들은 원래부터 무슨 일이든 어떤 상황이든 일을 즐기는 타입이며, 오너십이라는 게 사람 개개인의 특성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기본적 귀인 오류다. 아직 내가 아는 범위에서는 이 함정에 빠지지 않은 창업가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성공한 회사는 생겨나도 구글 같은 회사는 나타나지 않는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회사에 뛰어난 개발자들이 몰리는 것은 창업자가 아닌 사람들도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문화에 대해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냥 회사에서 재미있고 신나는 이벤트를 열어준다고 되는 게 아니다. 일 자체가 즐거워야 하는 것이다.

한국에는 그런 회사가 없다고 결론 내리는 개발자들도 주위에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아예 해외로 나가는 사람도 많아졌고, 원격으로 외국 회사와 일하는 개발자들도 많아졌다. 나도 그런 생각을 안해본 건 아니지만 아직은 한국에 더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 한국에도 이런 회사가 있다고 자랑할 만한, 내가 안심하고 사람을 추천해줄 수 있는 그런 회사가 조금씩 생겨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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