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블록체인에서의 transaction은 일반적인 transaction에 비해 매우 느리고 비효율적이다. 막대한 컴퓨팅 파워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환경에 미치는 해악도 크다. 한 마디로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전혀 쓸모 없는 기술이다. 블록체인을 암호화폐 이외의 다른 곳에 쓸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q>도대체 왜 이렇게 비효율적인 기술을 만들어냈을까</q> 하는 질문을 던져 봐야 한다.</p> <p>그 답은 <a href="https://encodent.com/wp/wp-content/uploads/2017/09/bitcoin-translated-korean-170927.pdf">비트코인 논문</a>에 이미 담겨 있었다. 관심 있는 사람은 서문만이라도 읽어보길 권한다. 핵심은 신뢰 받는 제3자가 필요 없는 개인 대 개인의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비유를 하자면 지폐로 거래하는 것보다는 금으로 거래하는 것에 가깝다. 지폐는 위폐인지 아닌지 거래 당사자가 감정하기 어렵지만 금은 비교적(?) 쉽게 감정할 수 있기 때문에 1:1 거래만으로도 꽤 높은 신뢰도를 확보할 수 있고, 그래서 금속화폐나 지폐가 등장하고 나서도 꽤 오랫동안 화폐로 쓰였고 지폐 자체도 금본위제를 통해 금과의 교환을 보장 받던 시기가 있었다. 비트코인은 말하자면 전자 세상의 금이다. </p> <p>신뢰받는 제3자가 필요 없다는 것은 곧 기존 금융 권력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화폐를 발행하는 국가는 물론이고 대규모의 화폐를 유통시키는 금융권력의 영향력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이것이 암호화폐의 핵심적인 가치다. 미국 달러가 불환화폐가 되고 나서도 여전히 금이 가장 안전한 화폐로 평가받는 이유도 금은 제3자(달러의 미국) 없이 거래 당사자간에 가치를 합의하기 쉽다는데 있다. 미국이 망하면 달러도 망하지만 금은 전세계의 통화가 다 붕괴되어도 화폐의 역할을 할 수 있다.</p> <p>금이 이런 지위를 얻을 수 있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p> <ol> <li>화폐가 아닌 물질로서의 금 자체에 대한 수요가 존재한다.</li> <li>제3자의 개입 없이 거래를 인증할 수 있다.</li> <li>거래 금액을 쉽게 측정하고 필요한 단위로 나눌 수 있으며 거래를 위해 휴대할 수 있다. (화폐 자체의 성립 조건)</li> <li>공급량이 매우 안정적이다.</li> </ol> <p>여기서 착각하기 쉬운 것은 금이 이런 지위를 얻을 수 있는 이유를 1번만으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2, 3, 4번이 없다면 금은 이런 지위를 얻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우라늄은 매우 높은 가치를 가지지만 3번이 안되므로 금의 역할을 할 수 없다. 땅은 금보다 더 안전한 자산일 수 있지만, 화폐로 기능할 수 없기 때문에 금과 같은 역할이 될 수 없다. 모든 국가 발행 화폐는 2번이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달러처럼 기축통화가 되더라도 금과 같은 안전자산 화폐가 되지는 못한다. 매장량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구리는 누군가 갑자기 대규모로 생산한다든가 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에 4번을 만족하기 어렵다.</p> <p>오히려 세 가지 조건 중에 입증이 안된 것은 1번이다. 과연 안전자산이 되기 위해 1번 조건이 필수적인가? 암호화폐는 그 자체의 가치가 전혀 없지만, 2, 3, 4번을 기존의 어떤 통화보다도 잘 충족시킨다. 실제로 암호화폐의 설계 자체가 2, 3, 4번을 의도한 것이다. 그러면 암호화폐는 금을 대체할 수 있는가?</p> <p>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암호화폐의 비효율성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재미있게도 지폐로 거래하는 것보다 금으로 거래하는 게 불편한 것처럼 암호화폐도 기존 전자 결제에 비해 매우 느리고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금으로 거래하는 것보다는 편하니 금을 화폐로 쓸 수 있다면 당연히 암호화폐도 화폐로 쓸 수 있다. 일상에서 금을 결제수단으로 쓰지 않는 것처럼 암호화폐도 굳이 일상에서 결제수단으로 쓰지 않아도 된다. 법정화폐로 거래하기 곤란한 상황에서 금이 가치를 발하듯, 암호화폐도 마찬가지다.</p> <p>이처럼 금과 암호화폐는 장점 뿐 아니라 단점까지도 매우 비슷하다. 유일한 차이는 1번 하나라고 봐도 될 정도. 그렇다면 과연 암호화폐는 1번을 극복할 수 있는가? 내가 아는 지식 범위에서는 유사한 사례가 없어서 나는 잘 모르겠다. 초기의 화폐에는 조개 껍질 같은 것도 있고 오랜 시간 잘 쓰인 사례도 있기 때문에 화폐는 원래부터 <em>징표</em>에 불과하다고 주장할 수는 있으나, 현대 문명이 발달한 지금도 그게 가능할지는 알 수 없다. 완전히 인류 문명이 붕괴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온다면 일시적으로 뭐든 화폐로 쓰일 수 있겠지만, 암호화폐의 목적이 그런 것은 아니다.</p> <p>그러니까, 현재 비트코인 및 유사 암호화폐가 맞이할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미래는 1번 조건을 극복하고 금을 대체하는 것이다. 비트코인에 장기 투자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1번 조건을 극복할 수 있는데 걸어야 한다. 1번 조건이 불가능하다고 보면서 장기 투자를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p> <p>비트코인이 편리한 결제 수단이 되는 그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p> <p> </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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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31 09:20:10.680313+00:00 | Youngrok Pa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