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비겼다. 1:1. 토고전에 비해 월등히 나아진 기량을 보여주면서 무승부를 이뤄 냈다는 점은 박수 받을 만하다. 경기를 지배 당한 것에 대해 불만을 품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전력 차이를 감안하면 정말 선전한 것이고 수비 위주의 전략을 펼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대등한 승부였다. man of the match는 박지성이 선정되었는데 이건 동점골이라는 점과 네임 밸류가 작용한 것 같다. 당연히 이운재가 man of the match가 되었어야 했다. 공격수 중에 꼽으라면 조재진이 최고였다. 다른 공격수가 받쳐주지 않는 가운데 엉성한 로빙 패스를 머리에 맞추고 둘러 싸인 상황에서 좋은 볼 컨트롤로 소유권을 유지한 플레이는 정말 훌륭했다. 거기에 동점골 어시스트까지. 이 정도면 이동국의 아쉬움을 어느 정도 풀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드보카트의 후반 승부 전략은 결과적으로는 성공이었지만 의문은 남는다. 2002년처럼 미드필드부터 맞장 떴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듯 처참하게 깨졌을까? 아니면 펀치를 주고 받으면서 이길 수도 있었을까? 어쨋든 아드보카트의 축구는 토탈 사커가 아니기에 쓸데 없는 가정에 불과하지만 2002년에 비해 선수들의 기량은 좋아졌기 때문에 프랑스랑 정면 대결을 펼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프랑스의 경기력도 정말 인상적이었다. 매끄러운 패스 연결을 보면서 역시 아트 사커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왼쪽으로 공격하다가 막히면 자연스럽게 오른쪽으로 이동해서 공격하는데 그 흐름이 정말 매끄러웠고 한 번 공격권을 잡으면 슈팅이든 크로스든 뭔가 하기 전까진 공격권을 뺏기지 않았다. 거기에 압박 능력도 우리를 압도했고 문제가 되었던 체력도 생각보다 좋았다. 우리보다 강도 높은 압박을 하면서 토탈 사커를 구사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수비 위주로 가면서 공수를 분리한 우리보다 훨씬 체력 소모가 심했을 텐데 후반까지 잘 버텨냈다. 다만 수비력은 최강의 모습을 보이던 예전만 못한 것 같다.
토고도 2차전에서는 한층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지만 스위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네 팀 모두 2경기에선 1경기보다 월등히 나아진 기량을 선보였다. 결국 수준 차는 유지, 스위스의 공격을 토고가 감당하지 못했다. 후반에는 토고가 경기를 지배하기도 했지만 결정력에서 차이가 났다. 중거리슛이라도 좀 때렸어야 하지 않나 싶다. 스위스의 전력은 예상보다 훨씬 막강하다. 다른 것보다 체력이 이번 대회 참가국 중 최강급이다. 수비할 때 보면 항상 수비 숫자가 많아서 처음엔 수비 축구 하나보다 했었는데 공격할 때도 공격 숫자가 많다. 공수 간격도 좁고 엄청나게 많이 뛴다. 압박 능력은 프랑스만 못하지만 엄청난 활동량으로 다 커버한다. 공격도 프랑스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쉽지 않은 경기가 될 것이다.
스위스가 득실차 2점을 쌓았고 우리는 1점, 프랑스가 토고전에 2점 이상 낼 확률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스위스전에 비기면 사실상 16강 탈락이다. 이기는 수 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죽음의 조보다 약체 하나 낀 조가 16강 진출하기 더 힘든 것 같다. 하지만 가능성은 꽤 높다. 스위스의 전력이 강한 건 사실이지만 경기 장악력은 프랑스만 못하다. 토고가 후반에 스위스 상대로 미드필드를 장악한 점을 보면 압박 능력은 높은 수준이 아니다. 토고가 골 결정력만 좀더 높았다면 이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골 결정력에서 토고보다 앞서는 우리 대표팀이 좀더 선전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불안한 것은 체력에서 오히려 스위스가 우위에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이전 두 경기처럼 후반에 따라 잡는 것은 힘들 것이다. 초반부터 미드필드에서 맞장 떠서 기를 꺾어 놓는 수 밖에.
어쨋거나 이번 대회, 준비 과정을 보면서 별로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또 정작 경기가 닥쳐오면 기대를 하게 된다. 이번에 또 16강, 8강 가면서 축구 강국들 콧대를 꺾어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