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2007-01-15


Youngrok Pak at 5 years, 8 months ago.

프로젝트에서 일정이란 게 어느 정도로 중요한 것일까? 사실 일정은 언제나 조정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하긴 하지만 일정을 지킨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가치도 무시할 수 없다. TimeToMarket이나 LeadTime이 중요한 것도 확실하다. 때때로 다른 것들을 희생해서라도, 심지어 품질을 희생해서라도 TimeToMarket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게 일정이랑 같은 말일까? 이건 아직 의심해볼 여지가 있는 것 같다.

질문을 바꿔보자. 일정이 정말 중요하다면 일정을 계속 강조하고 일정에 대한 압박을 가하는 것이 일정을 지키는데 도움이 될까? 나와 규영이는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지만 놀랍게도 문제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일정에 대한 압박이라는 것에는 동의했다. 또, 이 문제에 관해서 내가 접했던 자료들에서도 이론과 실제 사례를 통해서 일정에 대한 압박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답이 아니다.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면서 달성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너게임의 원리대로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성과 자체가 아니라 성과를 내는데 결정적인 핵심 변수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면 성과는 자연스럽게 달성된다는 주장. 내 과거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어느 정도는 타당성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뭔가 약간 부족한 듯한 느낌. 어쨋든 이너게임을 인정한다면 우리 프로젝트에서의 핵심 변수는 뭘까? TheGoal에서 배운 사고 프로세스가 이런 핵심 변수를 찾는데 도움이 될까? 핵심 문제를 찾는 것과는 다를까?

선화네 팀에서 워크샵을 가서 팀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대한 투표를 했었는데 10여명 중 6명이 즐거움이라는 가치에 표를 주었다고 한다. 우리 팀도 초기에는 즐거움을 중요하게 생각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일정에 대한 압박에 시달리면서 좀 즐겁지 않아도 참고 가자라는 모드가 되었다. 굳이 조금 변호해본다면 '피할 수 없으니 즐겁게 가보자' 정도? 내가 선화네 팀을 부러워할 일이 생기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오늘 일정과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해볼 기회를 맞바꾸었다. 아니, 사실 일정과 무언가를 맞바꾸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고 해야겠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반박할 논리가 아직은 없다. 그래, 그게 XP에서 권고(?)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근데 뭔가 숨이 막힐 것 같다. 5년 전, 모아(SI)에 있을 때도 일정에 대한 제약 조건은 지금 못지 않았다. 프로젝트 대금이 대폭 깎일 뻔한 위기도 있었고 수주한 프로젝트가 하나 밖에 없던 당시의 우리 회사에게 납기는 그야말로 목숨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지금 같은 압박감을 느끼진 않았다. SI에서 스코프와 일정에 대해 고객과 협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니까? 그럼 지금은 스코프와 일정을 누구와 협상해야 하는 걸까? 타협, 절충. 흐음...

내가 지금껏 겪었던 어떠한 프로젝트보다 좋은 조건에 있는데도 이렇게 힘들다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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