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Agile OST를 갔다. 참석 인원 80여명? 주제 Agile. 장소 KBS 신관 5층. 소감은... 좀 실망이었다. 이제 애자일이 확산된지도 좀 오래 되었고 작년 대안언어축제 이후 분위기가 많이 변해가고 있어서 이번엔 애자일을 많이 해본 사람들이 많이 와서 좀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기를 기대했었다. 근데 의외로 대부분이 애자일을 잘 모르거나, 혹은 알아도 실제로 팀에서 하고 있지는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다보니 논의도 어떻게 더 잘할 수 있을까보다는 어떻게 팀에 애자일을 적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나 혹은 개별 practice에 대한 Q&A?가 주를 이루었다. OST 자체에 대한 실망보다 어째서 애자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조차도 애자일 방법론을 쓰고 있지 않다는 것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
나도 '애자일 방법론과 소프트웨어 도구'라는 주제를 하나 열었다. 애자일 방법론에서 소프트웨어 도구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이용하고 어떤 도구를 만들어내야 할까하는 것이었다. 근데 사람들의 이야기는 애자일은 제쳐두고 그냥 소프트웨어 도구 이야기로 흘러갔다. 그래도 여러 사람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이 좀 정리되긴 한 것 같다. 내 주요 고민은 크기가 다른 ToDo를 어떻게 잘 관리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런 고민이 촉발된 것은 이슈 트래커를 개발하면서였다. 이슈 트래커에 올라오는 것들은 일의 크기가 대부분 아주 작다. 그런 반면 UserStory를 사용할 경우 개별 스토리는 feature 수준으로 기술하게 되므로 이슈들에 비해서는 상당히 크다. 그런데 스토리건 이슈건 모두 ToDo이기 때문에 이것들을 한 곳에서 모아서 볼 필요성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 이슈 트래커에서 스토리 관리도 할 것인가? 혹은 이슈를 스토리로 전환시킨 다음에 개발할 것인가? 사용자 스토리에서는 작은 이슈들을 모아서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고 진행하기를 권고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슈들은 대개 노력에 비해 사용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가치가 크기 때문에 금방 할 수 있는 일들은 모아서 하기보다 바로바로 처리하는 것이 더 낫다. 어찌되었건 어느 한 쪽으로 통합하긴 힘들다는 얘기. 그렇다면 그냥 한 곳으로 모아주는 툴만 만들고 스토리는 스토리로, 이슈는 이슈로 처리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대신 이 경우는 스케쥴링에서 스토리 외의 할 일이 별도로 있는 셈이므로 스토리 포인트만으로 추정하는 것은 정확도가 떨어지게 되서 뭔가 보완책이 필요하다. 이 부분은 좀더 생각해봐야 할 듯.
테스트 관련 이야기도 좀 들었는데 TDD를 실제로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다른 토론에 참여한 것인지, 아니면 TDD를 실제로 하는 사람이 이렇게 없는 것인지. QA의 주도 하에 애자일 방법론과 무관한 테스트 이야기들로 가득찼다. 난 그놈의 직종 분화가 맘에 안 든다. 테일러주의의 산물이 첨단 산업이라는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이렇게 횡행하고 있는 것이 잘 이해가 안 간다. 직종비대증(from 말단비대증)이라는 말을 붙여주고 싶다. IT 관련 직종들이 필요 이상으로 비대하게 분화 발전하고 있다. NHN은 웹 프로젝트 하나에 관여하는 직종이 무려 8종이다. 기획자, 디자이너, JavaScript UI 개발, 서버단 UI 개발(JSP, Controller 일부), 로직 개발, DBA, SE, QA. 프로젝트 하나 하려면 최소 인원이 8명이 필요한 셈이다. 이 무슨 낭비인가! ECUS 프로젝트에 직종은 단 두 가지다. 디자이너와 개발자. 인력 부족으로 이렇게 된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 난 웹 프로젝트에 이 이상의 직종 분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직종을 세밀하게 나눌 때 생기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각 직종에서 자신의 분야의 기능적 발전을 과도하게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직종 안에서 또 수많은 분류와 분화를 추구한다. QA들은 테스트의 종류를 10여 가지로 나누고 점검 항목도 계속 세분화해 간다. DBA는 오라클의 구석구석까지 파헤친다. 서버 사이드 개발자는 프레임웍을 파고들면서 점점 더 복잡하고 무거운 프레임웍을 만들어 내고 UI 개발자는 각종 Hack을 찾아내기에 여념이 없다. 이런 활동들이 자신들의 전문성을 높여준다고 생각한다. 더 복잡하게 해야 진입 장벽이 생기기 때문일까? 간단한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데는 직종 분화가 최고다. 그러다보니 프로젝트의 성공은 뒷전이 된다.
이보다 더 실감나게 와닿는 문제는 아마 문서일 것이다. 기획자는 PPT로 개발자에게 기획안을 넘기고 개발자들끼리는 API를 정의하고 문서화한다. 테스터에게 넘겨 줄 때는 또 스펙을 문서로 만든다. 이런 문서화 과정을 게을리하면 업무를 넘겨 받는 직종에서는 넘겨 주는 직종을 비난한다. 문서를 제대로 만들어줘야 내가 일을 할 수 있을 꺼 아냐!하고 말이다. 그러다보니 뭔가 잘못되면 앞 단계로 책임을 떠넘기기 일쑤다. 한 사람이 맡으면 10분 안에 끝날 일을 대여섯 단계를 거치면서 며칠이 걸린다.
또 하나 거슬리는 현상은 애자일을 잘 모르면서 자기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그리고 그렇게 주장하기까지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가 진화론에 있어서 기이한 현상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진화론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사실 이런 현상은 오픈마루 안에도 있었다. 지금은 아예 애자일이 수면 아래로 내려가 버렸고 애자일 방법론을 사용하려는 팀도 거의 없어졌지만 초기에는 애자일하다 아니다에 대한 이야기가 참 많았다. 그 때마다 의아했던 것은 애자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하면서 왜 애자일을 알려고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는데 이번에도 좀 그랬다. 심지어 자기는 애자일이 뭔지 알고 싶어서 왔다면서 자기가 마치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닥치고 버로우!를 외치고 싶었던-_-
그래서 OST로 유익한 것을 얻어간 사람도 많았겠지만 애자일에 대한 오해만 커진 채로 돌아간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참여자들 중에 주제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사람이 대부분인 경우는 차라리 패널 토론이 OST보다 더 유익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계속 보다가 별로 재미 있는 이야기도 안 나오고 K1할 시간도 되었고 해서 중간에 빠져나왔다. 탁월한 선택이었던 듯. 이번 K1은 명경기가 많이 나왔다. 레미와 스테판 레코의 대결은 정말 대단했다. 점점 킥 대결이 격렬해지다가 어느 순간 터져나온 레미의 니킥. 올해 K1 최고의 장면으로 꼽기에 손색이 없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레코가 일어났고 경기를 속행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도 심판이 경기를 중지시켜버렸다는 것이다. 나중에 후지모토가 다 죽어가는데도 속행을 외친 것과 비교해보면 정말 이해가 안 간다.
대체로 이름값 하는 애들이 이겼다. 사실 K1에는 실력차가 나는데 이변이 일어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밥샵이 미스터 퍼펙트를 두 번 이긴 게 최대의 이변이지만 밥샵도 그 파워 하나는 알아줬었고 최근에 사와야시키 준이치가 밴너를 이긴 것도 이변이긴 하지만 오늘 경기를 보면 이변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사실 오늘 최고의 경기는 사와야시키 준이치와 후지모토 유스케의 경기였다. 준이치가 기술을 살려 아웃 복싱을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초반부터 압박을 해 들어갔다. 근데 그러면서 딱히 어떤 공격을 내진 않았고 반대로 후지모토는 조금씩 물러나면서도 계속 연타를 퍼부었고 꽤 많이 적중시켰다. 그래서 준이치는 초반부터 코피가 줄줄 흘러내려서 멈추질 않았다. 후지모토와의 체중차를 고려하면 이해가 안되는 작전이었고 이대로 가면 준이치의 완패로 마무리될 것 같았다. 2라운드 들어서도 준이치의 이해할 수 없는 전진은 계속되었고 후지모토의 연타도 계속되었다. 뭔가 이상했다. 준이치는 밴너를 기술로 이겨낸 선수인데 이런 무식한 작전을? 뭔가 근접 격투 능력에 대단한 자신감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2라운드 들어서부터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니킥으로 바디를 공격하고 카운터를 몇 번 적중시키면서 점점 후지모토가 지쳐가기 시작했다. 역시 조루 붕붕 후지모토-_- 뭔가 펀치를 주고 받는데 준이치의 펀치가 훨씬 날카롭게 들어갔다. 그러다가 다운. 점점 전세가 역전되서 3라운드 들어서는 후지모토 완전 기어다니다가 KO패하고 말았다. K1에서 이런 역전은 거의 보기 힘들다. 럭키 펀치 한 방이나 하이킥 등으로 역전되는 게 대부분이다. 근데 준이치는 파워의 차이도 나고 처음부터 많이 맞고 시작했는데도 계속 근접 펀치 대결을 펼쳐서 후지모토를 쓰러뜨렸다. 붕붕 펀치를 맞아내면서 버티는 멧집, 코피를 줄줄 흘려서 호흡도 힘들 텐데 계속 들어가는 근성, 펀치를 읽고 카운터를 날리는 날카로운 눈과 용기. 후지모토의 부실 체력을 노린 작전. 대단한 선수다. 팬 투표에서 올라왔다는데 그럴 만하다. 감동을 주는 경기.
이에 반해 최홍만의 경기는 보다가 티비 꺼버리고 싶었다. 메인 이벤트에서 이런 3류 저질 경기라니. 심판은 선수가 로블로라고 외치는데 쉴 시간도 안 주고 다운을 선언하는 무식을 보였고 판정도 정타가 훨씬 많았던 마이티 모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최홍만은 자기 승리 뿐만이 아니라 경기를 보러온 관중도 생각을 해야 한다. 언젠가 스타 뒷담화에서 이윤열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중요한 경기에서 관중도 많이 왔는데 초반에 전략을 당해서 승패가 바로 기울었는데 여기서 그냥 GG치고 나가면 팬들을 볼 낯이 없다. 그래서 할 수 있는데까지 최선을 다한다. 김정민도 그런 생각에 동의를 표한다. 경기는 선수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졌다고 그냥 GG 치고 나가는 선수들을 좋게 봐줄 수 없다는 것이다. 최홍만도 마찬가지다. 최홍만을 보러 모인 관중들이 그냥 이기기만 하는 모습을 보려고 왔을까. 최홍만이 완성된 파이터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발전해가는 모습을 보이길 기대해서 온 것이다. 근데 로블로를 해놓고 실실 쪼개기나 하고 그 압도적인 덩치로 견제나 계속 해대는 조잡한 경기를 하고는 이겼다고 좋아하는 모습이라니. 이제 더 이상 최홍만은 응원하지 않기로 했다. 차라리 김영헌에나 기대를 걸어볼 일이다.
박용수도 파이터로서의 기본은 갖추고 나와야 한다. 태권도니까 킥 좋은 거야 알겠지만 안면 가드는 해야 할 것 아닌가. 밴너가 상대인데 말이다. 그 멧집 좋은 레미 본야스키도 안면 가드는 확실하게 하게 싸우는데 뭐 잘났다고 가드 내리고 쑈하다가 한 방에 가냔 말이다. 무사시한테 졌을 때 깨달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러니까 태권도 약하다는 소릴 듣지. 일단 멧집 키우고 방어부터 제대로 하고 나와야 태권도 발차기의 위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피터 아츠와 레이 세포의 경기는 좀 이상했다. 아무리 기량 차가 난다고 해도 이 정도는 아닌데 레이 세포 울기까지 할 정도로 얻어 맞았다. 뭔가 컨디션 조절에 실패한 게 아닌가 싶다. 한국 음식이 몸에 안 맞았나? 아츠가 이긴 건 좋지만 세미 슐츠를 상대로 그 정도로 잘 싸웠던 레이 세포가 이렇게 당하는 모습이 좀 안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