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마루를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이제 별로 숨길 것도 없으니 아직 퇴사는 좀 남았지만 블로깅 정도는 상관 없겠지. 퇴사 이유는 간단하다. 추구하는 이상이 달랐다. 내가 원하는 건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조직. 단지 그것 뿐이다. 하지만 아직은 우리나라에는 민주적인 방식은 비효율적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것 같다. 오픈마루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에시당초 오픈마루에 올 때 여기서 내가 원하는 조직을 만들지 못한다면 다른 회사에 가도 마찬가지일 꺼라고 생각했다. 내가 우리나라에서 입사라는 걸 하는 건 여기가 마지막일 꺼라고. 그리고 그 마지막 기대 역시 내 이상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된 지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내 이상을 직접 구현하는 것 뿐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내 주변에는 이런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이 꽤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 차이를 확인한 것은 이미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오픈마루의 첫 서비스가 결정되던 순간이다. 그럼 그 동안 뭐했냐고? 조직이 변해갈 꺼라는 막연한 기대라든지, 나름대로의 노력이라든지 많은 변명을 할 수 있겠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홀로서기를 할 마음의 준비가 안된 것이었다. 두려웠다. 내가 잘 해나갈 수 있을까.
얼마전 Changing_for_Good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에 의하면 변화에 성공하는 사람들은 변화의 단계를 차분하게 밟는다고 한다. 금연이라든지 다이어트라든지 뭔가 변화에 성공하는 사람들은 의지가 특별히 강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본인이 자각하든 아니든 그들은 변화를 바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 아니라 차분하게 단계를 밟는다고 한다. 무관심 단계에서 시작해서 심사숙고 단계, 준비 단계를 거쳐서 실행 단계로 간다. 그리고 유지 단계를 거쳐 종료 단계에 이른다. 그런데 보통은 변화를 실행 단계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바로 실행 단계로 갔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런 논리를 들어 보면 난 심사숙고 단계를 거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과정 동안 성공에 대한 공부를 꽤 많이 했다. 자료도 많이 찾아보고 책도 많이 읽었다. BUILT_to_LAST에서 지적한 [:빌딩을_발견하는_오류]를 피하기 위해 [:탁월한 조직이 빠지기 쉬운 5가지 함정]처럼 그럴 듯해 보이는 작가의 직관에 의존한 것보다는 BUILT_to_LAST, Good_to_Great, 백만장자_마인드처럼 통계적 분석 결과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책을 중심으로 읽으면서 그 맥락 하에서 빌게이츠와_마이크로소프트의_얼굴_없는_신화나 IBM에 대한 책, 구글 스토리 등 개별 사례를 깊이 연구한 책과 자료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사실 처음에는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이런 책들만 읽고 있었고 어느 순간 그것을 깨닫고 그 경향을 더 강화한 것이다. 성공에 대한 내 마음 속의 무언가가 투영된 것이 아닐까.
사람도 많이 만났다. 몇 년째 성공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 이제 출발하는 사람, 현실에 불만을 가진 사람, 다른 꿈을 가진 사람 등등. 앞으로는 더 많이 만나볼 것이다. 때로는 BUILT_to_LAST와 Good_to_Great를 던져 주며 이런 생각에 공감한다면 나랑 같이 해보자고 해보기도 했다. 수년 간의 깊이 있는 연구가 담긴 책이 주는 것과 다른 것을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얻을 수 있었다.
어쨋든 이런 심사숙고 과정을 통해 무언가 감이 잡히는 느낌이 왔다. 아마도 준비 단계로 돌입할 준비가 된 것이리라. 준비 단계에서는 좀더 집중적으로 긴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있었다. 사업을 혼자 할 수는 없으니 함께 할 사람을 어떻게 얻을 것이며 생존을 위한 첫번째 아이템은 무엇으로 할 것인가, 어떤 시도들을 해볼 것이며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를 할 것인가 등등 좀더 깊이 있는 준비가 필요했다. 하지만 선화를 만나는 시간이나 내가 노는 시간을 줄일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답은 일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 뿐. 그래서 좀더 준비 시간을 갖기 위해 협상을 시도했다. 사실 이건 준비 단계로 가는 협상이면서 한 편으로는 오픈마루에 또 하나의 기회를 주는 것이기도 했다. 첫번째 내가 내건 조건은 근무시간 단축. 원래는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려고 했으나 임금 문제까지는 가지도 못하고 No. 두번째는 재택 근무. 금요일 하루 정도 나오는 걸로 한다면 상황은 훨씬 좋아질 수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No. 그리고 마지막으로 80/20에서 20에 진짜 자유를 달라는 제안을 했으나 이것도 제도의 취지와 맞지 않아서 No. 이렇게 본의 아니게 준비 단계를 오픈마루에 머물면서 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되버렸다. 어쩌면 오픈마루라는 버스에 안 어울리는 내가 빨리 내려주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 해서 그냥 퇴사하기로 결정했다.
아마도 인수 인계가 마무리되고 퇴사하고 나면 좀더 본격적인 준비 단계가 될 것 같다. 당장 사업을 시작하기보다 한두 달 정도 여유를 가지고 사람들도 만나 보고 구체적인 구상을 해 나가려고 한다. 마음의 준비는 어느 정도 되었지만 반대로 실질적인 준비가 좀 덜된 감이 있다. IT 분야를 할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다른 분야로 가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쨋든 뭔가 사람들의 진짜 삶 속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만 있다면 즐거울 것 같다.
p.s. 이건 FAQ이기도 하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