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2009-04-15


Youngrok Pak at 5 years, 10 months ago.

나날이 인내심이 줄어들어간다. 구역질나는 관료주의. 정말 실명 일일이 거론하면서 까대고 싶을 정도다. 정말 내가 경험한 모든 프로젝트 중에서 최악의 관료주의다. 모든 사람들의 초점은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내 책임이 아닌 다른 사람 책임으로 돌릴 수 있을까에 맞춰져 있다. 뭐, 이런 상황 NHN에서도 접한 적이 있긴 하다. 장애만 발생하면 어떻게든 자기 책임이 아닌 것을 증명하려 하고 증명하고 나면 쑤욱 빠져버리는 사람들. 하지만 여기는 그 정도 차원을 넘어서서 아예 다른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뒤집어 씌우려고 안간힘을 쓴다. 처음에는 "그래, SI 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지" 하면서 넘어갔는데 점점 짜증이 나서 이제는 살짝만 내 기분을 상하게 해도 거칠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게 꼭 그 사람들의 잘못은 아니다. 원죄는 물론 쪼아댈 줄 밖에 모르는 PM에 있다. 똑같은 문제가 발생해도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하는 관점으로 나선다면 사람들도 이렇게까지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가 누구 잘못이야로 나온다면 인간이란 존재는 반사적으로 내 잘못이 아니야라고 나올 수 밖에 없다. 계속 일정에 쪼임을 당하면 본능적으로 일거리가 늘어날 일은 해야될 일이라도 기를 쓰고 거부하게 된다. 그런 반사적인 행태가 나오는 것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다. 인간은 동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 없이 반사적인 행동 밖에 못한다면 그게 무슨 사람인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면 그게 무슨 사람인가.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문제가 업체 사이의 관계에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을로 들어간 대형 SI 업체들은 프로젝트가 좀 안된다 싶으면 병한테 책임 씌우기 바쁘다. 오늘 들은 얘기로는 병한테 법적 책임 운운까지 했다고 한다. 이런 식이면 병 입장에서도 책임을 면할 궁리만 하게 마련이다. 문제가 발생해도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고 떠넘기기 바쁘다.

우리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무슨 교훈을 얻어야 적절할까? 일단은 이 프로젝트 초반부터 드러운 냄새를 맡았는데 어째어째 흘러가다보니 No라고 말하지를 못했다. 물론 회사에 자금이 궁한 문제도 있었고, 다른 사람의 인간 관계가 얽혀 있는 문제도 있었다. 그리고 최종 고객은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어서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좀 들었었고.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맡았던 드러운 냄새만으로도 지금의 상황이 충분히 예측 가능했었다. 아마도 내가 프로젝트 욕심이 많아서 열악한 조건에도 일단 해보자는 생각으로 덤빌 때가 많은데 그런 욕심이 내 눈을 흐렸던 것 같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객관적으로 일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 그런 게 전문가의 능력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닥터 하우스에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하우스가 뭔가의 일로 환자를 못 보게 되고 그래서 원장 커디가 하우스를 대신한다. 그런데 커디는 환자와 환자의 태아를 다 살리려는 욕심에 무리를 하게 된다. 그런데 잘 안 풀리자 하우스의 제자들에게 묻는다. 하우스라면 어떻게 했겠느냐고. 그러자 다들 "하우스라면 낙태를 시켰겟죠."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또 커디가 "아니, 하우스가 나 같은 입장이라면 어떻게 할 것 같냐고"라고 묻는다. 하우스가 자신과 동일한 목표를 갖고 있다면 어떻게 하겠냐는 물음이다. 여기에 제자는 이렇게 답한다. "하우스라면 객관적이었겠죠." 난 이 말이 참 감동적이었다. 저런 말을 자신의 제자(이자 동료)들에게 들을 수 있다니.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 나도 꽤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한참 멀었다.

또 새로운 계약 건이 다가오고 있다. 이 건에서도 나의 그 프로젝트 욕심이 좀 많이 발동했었는데 이제라도 좀더 냉정하게 판단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창업하고 프로젝트 5건 했는데 두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회사가 벌써 둘이다. 40%. 표본은 적지만 이게 IT 업계의 현실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괜찮아, 내가 바꿔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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