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출근하기 귀찮아서 그냥 집에서 일했다. 일하면서 어쩌다 유튜브에 걸렸다. 유튜브를 보다가 문득 베토벤 바이러스의 들리나요가 생각났다. 태연으로 검색하니까 많이 나온다. 하나씩 듣는데 정말 노래가 심금을 울린다. 나 정말 요즘 아무 슬픈 일도 없는데 들리나요, 만약에를 이어서 듣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정도로.
얼마 전 불후의 명곡에서 양희은 노래 부르는 거 보면서 역시 연륜이 쌓이니까 노래의 호소력이 다르다는 그런 생각을 했는데 양희은의 노래에서 느꼈던 그런 느낌을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태연에게서 느끼는 것이다. 계속 찾아서 듣다보니 강인이랑 하는 라디오 프로에서 애인 있어요를 부르는데 너무 잘 부르니까 강인이 놀랍다는 말투로, "태연이 이제 스무살이예요"라는 말을 한다. 강인도 아마 비슷한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문득 이창호 생각이 났다. 이창호가 세계 바둑계를 재패하기 시작할 때, 그 때까지만 해도 연륜이 쌓여야 바둑이 깊어진다는 생각이 강했다. 실제로 당시 바둑 최강국인 일본의 주요 강자들은 40대가 넘어서야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었다. 그런데 10대의 이창호가 세계의 강자들을 연파하고 우승을 차지하게 되면서 바둑계는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바둑의 깊이가 과연 어린 아이가 다다를 수 있는 것인가 하는 회의를 느꼈던 것이다. http://baduk.ohmynews.com/Column/CBoard/view.asp?seq=448&pagec=&gubun=C004 이 글을 보면 어떤 느낌인지 와 닿으려나.
그런 느낌을 태연을 보면서 일부 받았다. "스무 살이 이렇게 노래를 잘해도 되는 거야?" 하는 느낌. 하지만, 바둑인들이 착각했던 것처럼 나이 어린 이창호가 경지에 올랐다고 바둑의 깊이가 얕은 것도 아니고 스무 살 짜리가 심금을 울리는 노래를 부른다고 노래란 것이 가벼운 것도 아니다. 그저 그들은 어릴 때부터 아웃라이어가 되기에 필요한 deliberate practice 1만 시간을 쌓았던 것 뿐. 태연이 노래를 부르는 표정을 보면 정말 노래를 좋아하는구나 하는 느낌이 전해져 온다. 그런 열정이 1만 시간이 쌓이면 저렇게 잘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내가 프로그래밍을 접한 것은 10살 때, 스무 살까지 10년의 시간이 있었지만 내 스무 살 때의 프로그래밍 실력은 형편 없었다. 그로부터 10년이 더 지난 지금에야 겨우 expert에 접근해 가고 있다. 생각해보면 나도 프로그래밍을 참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태연이 노래를 좋아하는 것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뭔가 억울한 느낌도 좀 든다. 더 파이팅의 일보가 첫번째 타이틀 매치에서 지고 나서 받은 그런 느낌이랄까. 일보는 자기가 권투를 좋아하는 마음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타이틀 매치 비디오를 찬찬히 보면서 자기가 챔피언에게 기술이나 파워에서 진 것이 아니라 권투를 좋아하는 마음에서 졌다는 것을 깨닫고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한다. 뭐 난 그 정도는 아니지만 뭔가 살짝 분한 느낌이다.
참 노래 하나 가지고 별 생각을 다한다. 어쨋든 좋은 노래를 들려준 태연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