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2010-11-19


Youngrok Pak at 12 years, 4 months ago.

최근 개발자를 채용하기 위해 면접을 많이 봤다. 사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의 면접은 거의 처음이다. 이전까지 다른 회사 다닐 때 면접관으로 들어간 것은 결정권자로서가 아니라 그냥 면접관 중 한 명으로 들어갔던 것이고, 이콜레모에서의 면접은 이콜레모의 이념에 공감하고 사업의 무게를 함께 짊어질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이었다. 프리랜서를 채용할 때는 그냥 즉시전력감이 될 수 있는지만 보면 되는 것이어서 또 쉬웠고. SW 마에스트로에서의 면접은 좀 힘들었지만 학생들 수준 차이가 현격해서 또 쉬운 점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티켓몬스터의 비전에도 공감하면서, 현재의 실력도 어느 정도 있고, 발전 가능성도 높은 사람을 채용해야 하는 상황이라 가장 어렵다.

그래도 지금은 어느 정도 원칙을 정해가는 중이다. 제 1원칙, 프로그래머는 프로그래밍을 잘해야 한다. 이상하게도 면접 보는 사람 중에 프로그래밍 능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자신이 프로그래밍은 잘 못하지만 여러 가지 다른 능력이 좋기 때문에 팀에 도움이 될 꺼라고 하는 사람이 많았다. 특히 나이 많은 사람일수록 그런 빈도가 높았다. 마치 나는 요리사인데 요리는 못하지만 다른 능력이 있어서 보탬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격이다. 뭐, 정말 다른 능력이 좋아서 요리는 못하지만 음식점 장사가 잘 되게 만들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러면 요리사 말고 다른 포지션으로 지원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프로그래밍 실력을 보기 위해 두 가지를 한다. 하나는 코딩 테스트. 아주 간단한 테스트라 변별력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의외로 아주 높은 변별력이 있었다. 또 하나는 경력에 대한 기술적인 질문을 하는 것. 경험한 기술의 특성, 기술들간 비교 등등 최대한 깊이 있고 구체적인 질문들을 던진다.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 자신이 경험한 기술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런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못하는 사람은 기술을 깊이 파보지 않는 사람이다. 특히 다양한 기술을 배우는데 거리낌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이 많다. ASP를 하다가 Java를 하고 PHP를 하면 사실 그다지 깊이 이해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구현해내는 것은 가능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학습했다"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이런 수준에 머무른다면 어찌 생산성 높은 프로그래머가 되겠는가. ASP와 ASP.NET의 어떤 차이가 생산성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도 설명하지 못한다면 뭐하러 ASP.NET으로 옮겨타는가. 다양한 것을 해본다고해서 다 얕게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깊이와 넓이를 다 요구하지만, 넓이만 있는 경우보다는 깊이만 있는 쪽을 훨씬 선호한다. 그냥 할 줄만 안다면 프로페셔널이라고 부를 수 없다. Ajax를 하면 Ajax 전문가가 되고, Django를 하면 Django 전문가가 되고, 아이폰을 하면 아이폰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이게 뭐 천년 만년 배워야 하는 기술도 아니지 않은가.

객체지향의 경우도 대부분의 지원자가 객체지향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객체지향이 왜 좋냐고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틀린 대답을 하는 사람조차 많지 않았고, 대부분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잘 모르는데 왜 좋다고 생각할까?

또 하나 신기한 것은 애자일이다. 이번에 면접본 사람 전원이 애자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는 신기한 사실. 이력서에 간단하게 적혀 있는 경우도 있었고, 면접 때 말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모두 애자일을 이야기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애자일이 buzzword로서는 참 한국에서도 많이 퍼졌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해보면 역시 아직은 실망스럽다. 심지어 워터폴의 특성들을 꼽으면서 이래서 애자일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아뭏든 그래도 쉽사리 땡이라고 말하지는 못하고 있다. 뭔가 요즘 용기가 좀 줄었다. 예전엔 내가 느낀 생각들을 그대로 말하고 결정했는데, 요즘은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게 뭔가 있지 않을까. 저 사람의 숨겨진 능력을 내가 찾아내지 못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자꾸 결정을 방해한다. 채용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았다는 것도 오히려 결정을 망설이게 한다. 전권을 위임받았다는 것은 결국 그 결과에도 책임져야 한다는 뜻일 테니까.

티켓몬스터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든다. 처음에는 그저 좋은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냈지만 기술력이 부족한 회사이기 때문에 내가 기술력을 잘 채워주면 앞으로 쭉쭉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은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뭔가 그 이상의 역량을 발휘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나도 AC2를 한 번 받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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