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OOPSLA에서 아침을 준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아침은 가서 먹기로 했다. 주스 한 잔 마시고 다시 Palais des Congres de Montreal로 향했다. 숙소가 가까워서 다행이다. 오늘은 위키 심포지엄에 올인해보기로 했다. 나도 위키홀릭이니만큼 놓칠 수 없는 기회일테지. 근데 트랙이 네 개나 있다. 그냥 무작정 A로 들어갔다. 어라, 위키 포맷에 대한 발표를 하네? 위키 포맷을 통일하려는 움직임이 진행 중이다. 난 그래서 WikiInterchangeFormat을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WYSIWYG vs Wiki Syntax를 Wiki Syntax의 판정승으로 보는 듯 했다. fast, reliable, more programmable. reliable은 찔리는 부분이지만 다른 부분은 동의할 수 없다. 단순히 쓰는 것만 따지만 스프링노트는 가장 fast한 위키다. moinmoin이나 mediawiki보다 훨씬 더. 그리고 xhtml이 Wiki Syntax보다 더 programmable하다. html 파서는 엄청 많지만 Wiki Syntax는 파싱하고 transform을 해야 한다. 실제로 스프링노트 개발 과정에서도 Wiki Syntax 지원을 할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구현이 간단치 않아서 하지 않았다. 거기다 긴 문서를 편집할 때의 고통을 생각하면 WYSIWYG의 장점은 버리기 너무 아깝다.
물론 문제는 reliablility다. 규영이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Xquard도 다른 것보다는 낫지만 여전히 버그가 많다. 아무래도 HTML WYSIWYG 에디터를 안정적으로 만들기가 어렵다. 이 점만 어떻게든 해결이 된다면 위키의 기본 포맷을 XHTML로 해도 될 텐데.
근데 위키 심포지엄은 진행이 숨쉴 틈이 없다. 질문 두세 개 받고 바로 다음 발표로 넘어간다. 보니까 2개 트랙은 이렇게 발표만 쉴새 없이 하고 한 트랙에서는 내내 OST만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오후에는 OST에 가보기로 했다.
점심 먹으려고 나갔더니 먹을 곳이 차이나타운 밖에 없다. 다른 곳에 가려면 꽤 걸어야 하는데 점심 시간이 그렇게 여유 있진 않았다. 여기 와서까지 중국 음식을 먹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다른 사람들도 다 차이나타운으로 가는 것 같길래 우리도 그냥 그 중에 한 곳으로 들어갔다. 점심 메뉴는 꽤 싼 편이다. 팁, 택스 포함하면 그렇게 싼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합쳐서 15달러 안팎에서 해결이 되었다. 근데 의외로 음식들이 맛있다. [:여행의 기술]에서 말하길 해외에 가서 동양 식당에 갈 때 일본 식당은 피해야 하지만 중국 식당은 괜찮다고 하던데 유럽 여행 갔을 때도 그렇고 중국 음식점 가서는 맛에 실망한 적이 별로 없다.
오후에는 위키 심포지엄 OST를 갔다. 갔더니 두 그룹이 있어서 그냥 아무데나 끼었는데 Edit 버튼 이야기를 한다. 위키 페이지에 Edit 버튼을 하나로 통일하면 편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쉽게 사용자에게 알려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참가자들이 소개를 하는데 DokuWiki 개발자도 있고 MediaWiki 개발자도 있고 다들 뭔가 한가닥 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근데 내용은 좀 찌질했다. Edit 버튼 이미지의 색깔을 초록색으로 할 것이냐, 색깔을 정해서 권고하면 웹 사이트 디자인 따라 달라지는 문제가 있으니 모양만 정하자, 분필 모양은 그닥 알아보기 쉽지 않으니 연필 모양으로 하자 등등. 어떻게 보면 찌질한 토론이긴 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이런 사소한 문제까지 세심하게 고민하는구나 싶기도 했다. 난 딱히 흥미 있는 건 아니라서 좀 듣다가 나왔다.
위키 심포지엄 여기 저기를 기웃거리다가 또 OST를 들어갔는데 이번에도 그룹이 둘 있다. 이번에도 한쪽에 앉았는데 의외로 이야기의 주제가 Agile이다. 할아버지 한 분이 내내 Agile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얼굴을 어디서 본 것 같아서 이름표를 봤더니 이게 웬걸, Ward Cunningham이었다. 근데 안타깝게도 Ward의 발음을 처음엔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아직 다양한 외국인의 억양과 톤에 익숙해지지 않아서 잘 알아듣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는데 Ward는 목소리도 좀 작아서 알아듣기 어려웠다. 계속 듣다보니 조금씩 단어 단위로 들리다가 또 문장 단위로 들리다가 끝무렵 쯤에서야 대략적으로 이해가 되었다. 한 명이 위키를 project management에 적용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까 Ward는 별로 좋은 생각 같지 않다면서 그런 것보다 벽에 붙이고 종이에 쓰고 그리고 하는 것들이 더 유용하댄다. 위키는 뭔가를 적어 놓고 싶을 때 활용하고 관리용으로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나도 어느 정도 비슷한 생각이다. 뭔가 지식 공유, 정보 저장 차원에서는 위키가 좋지만 프로젝트 관리에는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다. 암튼 그러다보니 대화에 끼기는 너무 힘들었다. 중간에 몇 마디 끼긴 했는데 뭔가 핀트가 어긋났는지 살짝 무시당하는 분위기였고-_- 첨엔 Ward 만나면 꼭 같이 사진 찍어야지 했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사진 찍자고 말하기가 싫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뭔가를 개발한 사람이거나, 뭔가 한 건 한 사람들인데 난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데다 영어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 자존심이 좀 많이 상했다. 그래서 뭔가 아는 척 하는 말을 하기가 싫었다. 젠장, 다음 번엔 나도 뭔가 한 건 해서 오리라. 영어 실력도 좀더 빠방하게 갖추고 ㅠ.ㅠ 그러다가 뭔가 또 다른 행사가 시작되길래 그냥 나와버렸다. 아, 기분 드러워.
생각해보면 내가 프로그래머로서 뭔가 이뤄낸 게 없는 것 같다. 나름 실력에 있어서는 한국에서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래도 뭔가 내세울 게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든 생각이, 돌아가면 4시간 근무로 재계약하자고 해봐야겠다 하는 것. 예전부터 줄곧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우리 회사 문화와 안 맞는데다 연봉 깎이면 맘 상할 것 같고 해서 못하고 있었는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한다는 사실에 비하면 그런 것들은 너무 사소한 것 같다. 어쨋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재미도 있고 뭔가 이루어낼 수 있을 것 같다. 꼭 4시간 근무가 아니라도 하여튼 뭔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가야 할 것 같다.
저녁엔 환영 리셉션이 있었다. 포스터 세션과 같이 열려서 술과 먹을 것을 들고 돌아다니면서 포스터들을 구경했다. 포스터들은 대부분 학생들이 연구하고 개발한 것들을 소개하는 것이었는데 재미 있는 것들이 많았다. 근데 Java 쪽에 static analysis 쪽이 제일 많았다. 뭔가 코드를 분석해서 버그가 생길 만한 것을 찾는다거나, 최적화를 한다거나, 타입 체킹을 한다거나 하는 등이었다. static analysis가 흥미로운 분야긴 하지만 실제 good software를 만드는데 기여하는 정도는 낮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흥미 있진 않았다. 어쨋든 공짜로 또 저녁을 먹는다는 게 젤 중요하지.
그리고 이어서 열린 newcomer orientation에 갔다. 엄청 많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7,8명 밖에 없었다. 근데 다 나이가 많았다. 사실 OOPSLA 전체가 APL만큼은 아니지만 평균 연령이 엄청 높아보인다. 학생들도 Ph.D를 하는 애들이 많아서 30대 이상도 널린 것 같고. 배가 산만한 아저씨 둘이서 뭐라뭐라 늘어놓는데 다는 못 알아듣겠고 대충 나중에 podcast나 자료로 제공되는 것보다 live로 즐길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라는 것이 귀에 들어왔다. 그리고 마침 kathy sierra가 옆에 왔는데 대단히 훌륭한 사람인 것처럼 소개했다. 나중에 선화가 알려줬는데 이 사람이 바로 Head First 시리즈를 만든 사람이고 Head First Java를 쓴 사람이랜다. 그러면서 이런 저런 사람들 많이 소개해주는데 이름은 잘 기억 안나는데 거의 현대적 OS의 모든 개념을 발명한 사람이 있다면서 그 사람이 자기가 아는 가장 smart한 사람이랜다. 그리고 뒤이어 ward를 소개하는데 ward는 두번째로 smart한 사람이랜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여기 오는 사람들이 그 자체가 컴퓨터의 역사인 것 같이 느껴졌다.
거듭 느껴지는 건 영어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것이다. 거의 반도 못 알아듣고 있다. ㅠ.ㅠ 사실 캐나다 여행 와서 그냥 다니면서는 영어에 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에 크게 걱정은 안했는데 여기 와서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현장에 있다보니 영어 실력이 정말 한스럽게 느껴진다. 선화나 나나 그렇게 말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듣고만 있는 것도 참 괴로운 일이다.
숙소로 돌아오니 의외의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히터가 고장났다는 것. 그래서 봐달라고 했더니 와서 들어와보곤 자기는 안 춥댄다. 순간 짜증이 확 났다. 그래서 너는 옷도 입고 돌아다니다가 들어와서 안 추운 거지 잘려면 춥다고 했더니 시큰둥하게 알았다고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내려갔다. 그러더니 좀 있다가 전화로 고치는 사람이 내일 아침에나 온다길래 그럼 방을 바꿔달라고 했더니 방이 없댄다. 대신 내일 아침 꼭 제일 먼저 고쳐주겠다나 뭐라나. 그래서 내가 그럼 어떻게 보상해줄꺼냐고 했더니 어떻게 해줄 방법이 없다길래 내가 환불해 달라고 할까 말까 망설이는데 얘가 먼저 끊어버린다-_- 또 확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다시 전화를 걸어서 그러면 환불해 달라, 우리 다른 호텔로 옮기겠다 그랬더니 태도가 좀 바뀐다. 그래서 아예 내려가서 본격적으로 항의를 하려고 했더니 내려가니까 다른 아저씨가 와 있고 방을 바꿔주겠댄다. 그래서 결국 좀 있다가 다른 방으로 바꿔줬는데 여긴 스위트룸이다. 일반실은 방이 없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나보군. 예전 같았으면 전화위복이네 했을 법도 한데 이번엔 화가 좀 나서 별로 좋은 기분이 들진 않았다. 어쨋든 그나마 따뜻하게 잘 수 있어서 다행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