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2009-09-05


Youngrok Pak at 12 years, 4 months ago.

트위터를 쓰면서부터 블로그가 뜸해졌다. 나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런 듯. 간만에 이것저것 끄적여본다.


켄트 벡이 왔다. 예전 같으면 꽤 흥분했을 텐데 이젠 별 감흥이 없다. 켄트 벡이 이콜레모가 겪고 있는 문제들에 뭔가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애자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이전처럼 재밌지 않다. 뭐랄까, 성공에 있어 애자일은 거의 필요조건임은 틀림 없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 간격을 메울 수 있는 것들이 요즈음의 관심사다. 그러다보니 xper 모임도, 켄트 벡도, 내 입장에서는 뻔한 이야기 뿐이다.

그래도 켄트 벡 미리보기?는 그런대로 재미있었다. 별로 얻은 것은 없지만 지루한 시간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점수를 줄 만하다. 4인 1조로 나눠서 상황극을 통해서 질문을 한다는 방식은 꽤 괜찮았다. 즉석에서 나온 것이라 집중도가 떨어진다거나, 질문과 답변 모두 깊이가 얕은 문제는 있었지만 아주 재미있는 방법임은 틀림 없다. 하필 우리 조에 맘에 안 드는 인간이 있어서 좀 짜증이 나긴 했지만. 어딜 가나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 하나 씩은 있는 것 같다.


정말 오랜만에 직원이 4명으로 늘었는데 그 네번째 직원이 잠수를 탔다. 벌써 2주 째. 처음에는 혹시 사고라도 난 게 아닐까 걱정을 했는데 며칠 전에 그 사람 블로그에 글이 올라왔다. 그래서, 이제 다시 3명으로 줄었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이콜레모에 들어왔다 나간 사람은 많지만 이렇게 아무 말도 없이 나간 사람은 처음이다. 물론, 이전에 다른 회사에서는 흔하게 경험했던 일이지만, 아무 강제 사항도 없는 이콜레모에서 무슨 사정이 그렇게 복잡하길래 말 한 마디 없이 잠수를 타면서 나갈까 싶다.


NHN에서 웹 표준 코딩 일을 하고 있다. 하다보니 이제 나도 어디 가서 웹 표준 할 줄 안다고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NHN 웹표준화팀이 그래도 이 분야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일 텐데 나와 실력에서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진 않다. Java, Python, JavaScript에 이어 80점 이상 줄 수 있는 스킬이 또 하나 는 듯.

일을 하다보니 기능 분화의 전형적인 문제점들이 많이 보인다. 그 중 하나는 템플릿. 여기 팀에서 일하는 방식을 보면 디자인이 나오면 웹 퍼블리셔가 받아서 그대로 HTML로 코딩을 해서 서버 사이드 개발자에게 넘긴다. 그런데, 웹 애플리케이션에서는 비슷비슷한 페이지들이 많고 전역 네비게이션, 헤더, 푸터, 메뉴 등의 부분이 다 공통인데 이 각각이 다 개별 psd 파일로 따로 넘어오고 그걸 보고 퍼블리셔는 또 각각을 html 파일로 만들어서 준다. 그러다보니 중복된 부분들을 전부 copy & paste로 만들기 때문에 바뀌거나 할 경우 파일을 다 찾아서 바꾸어야 하는 사태가 많이 발생한다. 서버 사이드 스크립트로 바로 작업하면 이런 중복을 쉽게 제거할 수 있을 텐데 팀이 나눠져 있고 팀간 협업을 권장하지 않기 때문에 그게 잘 안된다. 그나마 지금 있는 미투데이팀은 일종의 TF를 구성해서 상황이 훨씬 좋지만 카페 팀과 협업해야 될 때는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다보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체적인 템플릿 시스템까지 만들어서 쓰고 있었다. 공통으로 쓰이는 부분들을 한 파일에 몰아넣고 그걸 가져다 쓰는 방식이다. 나름대로 주어진 한계 안에서 상황을 개선하는 방법이긴 하지만 이 방식 역시 copy & paste이기 때문에 근본 대책은 될 수 없다.

기획, 디자인의 진행에서도 이런 점이 많이 보인다. 먼저 기획서가 다 나오고 나서 디자인이 나오고 그게 HTML 코딩까지 끝나야 개발자에게 전달된다. 그런데, 개발자가 개발하다보면 기획이나 디자인의 허점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다시 이 루프를 돌아야 되는데 보통 직종간 일이 넘어가는데 하루는 걸리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Ajax 팀도 따로 있고 서버 사이드도 비즈니스 로직 담당과 뷰 담당이 따로 있다. 사실 Ajax UI를 개발하다보면 HTML에서부터 서버까지 넘나들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가 부지기수인데 이 때마다 최소 4명이 협업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교차 기능 조직에 대한 시각은 좋지 않은 모양이다. 미투데이팀은 어떻게 교차 기능 조직을 구성했고, 내가 보기에는 꽤 괜찮아 보이는데 거기에도 비판 세력이 있는 듯하다.


제주도에 휴가를 갔다 왔다. 휘닉스 아일랜드의 힐리우스라는 호화 별장에서 지냈다. 건물간 거리가 워낙 멀다보니 전기 카트를 준다. 면허 없는데도 운전해도 되는 모양. 운전하고 다니는 재미가 쏠쏠해서 운전 배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해본 건데 의외로 쉬웠다. 그런데, 마지막 날 공항 가는 길에 택시를 타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아저씨가 상당히 운전을 잘하는 것 같았는데 보니까 주기적으로 좌우와 위에 있는 거울을 보면서 전후좌우를 살피면서 운전을 했다. 저게 운전의 정석 쯤 되는 걸까? 그런데 옆으로 트럭들이 씽씽 지나가니까 무서웠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운전대에 앉아 있다면? 별로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닐 것이다. 전기 카트 타고 다니는 게 재미있었던 것은 사고날 가능성이 거의 없었기 때문일 게다.

섭지 코지와 올레길, 우도를 둘러봤다. 이미 세번째로 온 거라 별로 특별한 건 없었다. 올레길 요새 유명한 모양이지만 별 거 없었다. 그 정도 길은 대한민국 전체에 수도 없이 많다. 역시 과대포장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레길에서 섭지 코지를 차지한 휘닉스 아일랜드를 많이 비판하는 모양이던데, 자연이고 뭐고 다 알겠는데, 이번 휴가에서는 올레길보다 휘닉스 아일랜드가 나에게 준 가치가 훨씬 컸다. 사실 이번 휴가는 여행보다 휴식의 의미가 더 컸다. 난 원래 여행가면 하루에 10시간씩 걸어다니는 타입이지만 이번에는 휴식하러 온 거라 느긋하게 책도 읽고 하기에 힐리우스가 너무 좋았다. 비록 무선인터넷이 안되는 단점이 있었지만 선화가 T로그인을 가져와서 나름 잘 써먹었다. 최근 몇 년간 해외 여행에서는 숙소에 무선인터넷이 안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는데, 국내에서는 되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다 유선으로 라인은 들어와 있고 컴퓨터도 있는 경우가 많은데 무선은 안된다.

우도에 가서 자전거 타면서 살이 좀 탔다. 태국에서 그렇게 태우려고 해도 안 탔는데 흐린 날에 더 잘 탄다는 말이 사실인 듯, 단 두 시간만에 팔이 벌게졌다. 하지만 껍질이 벗겨지거나 하지는 않는 걸로 봐서 심하게 타지는 않은 듯. 휴가 갔다온 티 좀 내려고 했는데 얼굴은 거의 안 탔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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