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그만두고 긴 시간 고민했는데, 결국 구직은 포기하고 이콜레모를 부활시키기로 했다. 내 나이와 평판을 고려하면 그나마 지금 제의해주는 사람이 있을 때가 마지막 취직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서 포기하기 쉽지 않았는데, 반대로 내 회사를 하는 것도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둘다 정말로 마지막은 아니겠지만, 그런 느낌이라는 거다.
이콜레모를 부활시키긴 해도 예전처럼 멤버를 모으지는 않을 것이다. 예전엔 동료 욕심이 많아서 구인을 많이 하고 다녔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제대로 사람을 책임질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혼자 해볼 예정이다. 1인 기업의 한계를 시험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다.
이콜레모 5년 중에 본격적으로 스타트업을 한 건 8개월 남짓이고 대부분이 외주였는데, 이번에는 스타트업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난 지금 돈이 없으므로 돈을 벌어야 한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외주해서 시간 벌고 짬짬이 스타트업하면 또 죽도 밥도 안될 것이다. 그렇다고 돈 안 벌고 스타트업에 올인할 수도 없다. 진퇴양난으로 보이는 이 상황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쉬웠으면 아마 진작에 결정했을 것이다. 외주로 시간 벌기 전략도 틀렸고, 외주로 회사 키울 것도 아니고, 당장 투자 받을 확률도 높지 않다면 스타트업은 못하는 거 아닌가?
솔직히 위의 질문에 대한 합리적인 답은 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비합리적인 자신감을 믿고 전략을 세웠다. 파트타임으로 돈을 벌면서 단기적으로 승부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을 실행하는 것이다. 사실 뉴스쿠 같은 건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한 아이템이라서 투자 없이 하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좀더 단기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아이템을 하게 될 것이고, 좀더 trial & error를 빠른 사이클로 해야 한다.
그런데, 이 전략은 사실 이콜레모가 이제까지 해왔던 외주해서 시간 벌고 남는 시간에 우리 아이템 하기와 근본적으로 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 문제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 문제를 극복하려면 왜 외주해서 시간 버는 전략이 나쁜지를 분석해야 한다. 단순히 심리적으로 집중이 안되니까, 헝그리정신이 부족해서 등등의 이유를 분석이라고 할 순 없겠지.
내가 분석한 이유는 이렇다. 우선, 이콜레모는 주력 아이템을 갖고 있지 않았다. 주력 아이템이 없으니까 어차피 외주해서 시간을 벌었을 때 새로 아이템을 구상해야 한다. 그러다가 돈 떨어지면 다시 외주를 하는데 그러면 그 사이 하던 아이템에 대한 컨텍스트가 끊기고 열정도 식는다. 그러면 두번째 외주가 끝났을 때 그 아이템을 다시 이어서 하게 될 가능성이 낮다. 외주하는 동안 그 아이템에 대해 고민해보게 될 가능성도 낮다. 말하자면, 우리는 A를 하는 중에 틈틈이 돈을 벌기 위해 외주를 한다가 되어야 하는데, 그 A가 없었다는 것. 만약에 외주를 중간중간에 하더라도 오랜 기간 계속하고 있는 아이템이 있었다면 축적된 무언가가 뒤늦게라도 힘을 발휘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외주를 거의 풀타임으로만 하다보니 설령 A가 있어도 컨텍스트의 끊김이 심해서 극복하기 어려웠다. 만약 파트타임으로만 했다면 다른 시간에는 아이템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가치를 축적해갈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외주해서 시간 벌고 틈틈이 우리 아이템 하기가 사실 우리가 의식적으로 한 전략이 아니었다. 그냥 돈 떨어지면, 아 외주해야겠구나 하면서 하고, 돈 있으면 이제 우리 꺼 해볼 수 있겠네 했던 것이다. 설령 외주해서 시간 벌기가 나쁜 전략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의식적으로 선택한 전략이었다면 좀더 체계적으로 실행했을 것이고 더 나은 결과를 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점들에 유의해서 이 전략을 실행한다면 괜찮다는 판단이 섰다. 높은 수익보다 적정 수익을 얻을 수 있고 파트타임으로 할 수 있는 일거리들을 하면 컨텍스트 끊김을 최소화할 수 있다. 컨텍스트 끊김이 적으면 하던 아이템이 흐지부지 되는 일도 적을 것이고, 일단 시장에 내놓기 전에는 중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나가면 A의 부재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단,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하나는, 파트타임으로 수지가 맞는 일거리를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사실 이콜레모가 풀타임 외주 중심으로 했던 이유는 일거리가 대부분 풀타임 요구로 들어왔다는 것과, 그런 일이 더 수지가 맞았다는 것인데, 파트타임만 해서는 충분한 유지비를 벌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몇 가지 전략을 생각해봤다. 그 중 하나가 요즘 추진하고 있는 스타트업 개발 강의다. 개발자가 아닌 사람들이 IT 스타트업을 하고 싶을 때 스스로 실행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일단은 교육비를 받고, 또 그런 스타트업들이 연결되면 관련된 컨설팅 일도 생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 하나는 예전처럼 트러블 슈터로 좀더 포지셔닝하는 것. 전에도 쓴 바 있지만, 난 다른 사람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도와주는 코칭보다는, 직접 가서 문제를 해결해주는 트러블 슈팅을 더 잘하고 좋아한다. 이런 트러블 슈팅 일들은 단기적인 경우가 많고, 급할수록 보수도 좋기 때문에 파트타임 일로 괜찮은 것 같다. 이런 식이면 어찌되었든 밥벌이는 하겠지.
예전과 달리 정부의 창업 자금도 고려해볼 것이다. 전에는 그거 따러 다닐 시간에 개발이나 더 하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래저래 좀 생각이 바뀌었다. hwp 문서 작성은 여전히 고통스럽겠지만, 세금이 엄한 데 가는 것보다는 내가 잘 써주는 게 낫겠지. 세금도 많이 냈는데 말이야.
그리고 두번째 전제는, 스타트업 아이템을 실행하기에 필요한 역량을 내가 다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 일단 아이디어로 사업화 전략을 세우는 건 아직 나 혼자서 잘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중이다. 기술력은 문제 없을 것이다. 솔직히 나 혼자서도 국내 스타트업의 50%는 기술력으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스타트업도 다른 전략이 좋으면 성공할 수 있으니 기술력이 부족해서 뭔가 못해낼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제품 개발은 가능하다. 근데 과연 그걸로만 스타트업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 내가 창업하면서 수도 없이 들었던 이야기는 기술력만으로 창업하면 망한다는 거였다. 물론 난 그 말에 동의하진 않지만, 일리 있는 포인트는 있다. 일단은 부족한 부분은 외부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다. 이번에 두 달 놀면서 내가 알게된 사실은, 예상대로 내 평판이 나쁘긴 한데, 그래도 여전히 날 믿어주고 도와주려는 사람이 많다는 거였다. 그래서 동료를 구하진 않겠지만, 내가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한 조언은 많이 들으러 다닐 생각이다. 사실 나도 생각보다 귀가 얇아서 흔들흔들하곤 하는데, 이번엔 흔들리지 않고 중심 잡으면서 조언을 구할 것이다.
어쨋든 매우 도전적인 상황임은 틀림 없다. 인맥도 좁고 돈도 없고 동료도 없는 엔지니어 한 명이 기술력 하나 믿고 창업하는 상황이니까. 그래도 이번엔 왠지 해낼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