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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개발자 몸값 안 올리기에 대한 내 생각 | edited by Youngrok Pak at 10 years, 3 months ago.

몸값 안 올리기를 처음 읽고 딱 든 생각은, 어, 이거 내 얘기네였다. 작년에 난 이콜레모를 그만두고 카카오에 입사했다가 다시 그만두고 이콜레모로 복귀했다가 또 요기요에서 제의를 받아 요기요에 입사했다. 카카오에 입사한 것은 물론 돈 보다도 기회라는 관점이 더 컸지만, 어쨋든 돈도 중요한 이유였고, 요기요에 입사한 이유는 80%쯤이 돈이다. 그래서 어쨋든 몸값을 좀 올린 셈인데, 그로 인해서 난 일에서의 행복을 상당부분 잃었다. 이콜레모를 할 때도 물론 스트레스 받는 일이 많았고, 업무 강도도 높은 경우가 많았지만 일 자체는 몹시 재미있었고, 대부분의 시간을 행복감을 느끼면서 일했다. 하지만, 카카오에서 일했던 4개월, 그리고 지금 요기요에서의 2개월은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를 집에까지 가져오고 있다. 카카오를 그만두었던 가장 큰 이유도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를 계속 집에 가져오다보니 만삭의 아내와 아기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것 같아서였을 정도니까.

사실 내가 그냥 직원으로 일하는 것 자체에서 즐거움을 못 느끼느냐 하면 그런 건 아니었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일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NHN에서 창희형, 정환이형과 함께 일했던 시기, 그리고 오픈마루에서 권남님과 일했던 시기를 꼽곤 한다. 이콜레모에서 일할 때만큼은 아니지만, 매일매일 재미있는 일이 가득했다. 물론 그 땐 연봉이 낮았지. 그래서, 몸값 안 올리기의 내용이 내가 겪는 현상에 대한 적절한 분석인 것처럼 보인다.

하 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부분이 몇 가지가 있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숫자. 현장에는 안 갔기 때문에 모르고, 기사로 먼저 떴던 것에는 4500만원, 그리고 블로그에는 5만~7만5천불로 기술되어 있는데, 이것 때문에 상당한 비판이 나왔다. 그런데, 사실 이건 김창준씨가 제시한 숫자가 아니라 다른 연구 결과를 인용한 것이기 때문에 이걸 가지고 글에 대한 비난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다만, 내가 아쉽게 느끼는 것은, 그 숫자가 한계효용이 체감하기 시작하는 지점인지, 한계효용이 0에 가까워져 총효용의 증가가 없는 지점인지가 명확하게 명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음 부분을 보면 총효용 자체의 증가가 멈추는 지점인 것처럼 보인다.

그 뿐만 아니라 몸 값이 일정 숫자 이상 오르면 더 이상 행복이 유의미하게 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3]도 있습니다. 연구에 따라 다르기는 한데, 5만불에서 7.5만불 사이로 볼 수 있습니다.

하 지만 5~7.5만이란 숫자는 한계효용이 0이 되는 지점으로 보이진 않는다. 저 정도면 기본적인 욕구들이 어느 정도 충족되는 시점이니 한계효용이 체감하기 시작하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 물론 연구의 기준에 따라 다르고 저는 그 연구를 모르지만, 보통 사람들이 느끼기에 충분한 금액은 결코 아니니 비난에 휩싸일 수 밖에. 만약 그 연구가 한계효용이 체감하는 지점을 말한 거였다면 단순히 그걸 명확히 하는 것만으로도 비난이 많이 줄지 않았을까 싶다. 아, 물론 그 연구가 실제로 한계효용이 0인 지점이라는 얘기였으면 더 심한 비난을 받았을 수도...

 

여튼, 이게 첫번째 아쉬움이었고, 두번째 아쉬운 점은, 실제로 연봉을 잘 주는 회사가 더 좋은 회사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아, 물론 여기에 대한 데이터는 갖고 있지 않지만, 대체로 다들 비슷하게 느끼는 것 같다. 연봉이라는 게 회사가 직원을 생각하는 마음이기도 하니, 연봉을 많이 주는 회사는 다른 점에서도 직원에 대한 배려가 더 많은 게 보통이다. 내가 카카오와 요기요 모두 행복하지 않게 일했다고는 하나, 객관적으로 따져서 여기보다 좋은 회사는 한국에 별로 없을 거다. 당연히 그 이하의 보수를 제시했던 곳에 안 간 아쉬움 같은 건 손톱 만큼도 느끼지 않는다. 어차피 오너십을 공유하지 않고 직원으로 일하는 이상 근원적인 차이는 없다고 보면 연봉이 좋은 곳이 대체로 다른 것들도 좋다. 그래서 여전히 연봉 많이 주는 곳으로 이직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다.

 

세번째 아쉬움도 비슷한 맥락인데, 나도 기본적으로 성공해야 행복한 게 아니라 행복해야 성공한다는 관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게 월급쟁이일 때는 아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도 기본적 귀인오류일 수 있다고 본다. 성공이라는 건 개인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좋은 기회라는 게 필요하다. 그런데 그냥 월급쟁이로 변변치 않은 회사에 다니면 그 안에서 행복하게 일한다 해도 성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보다 잘 나가는 회사에 들어갔을 때 성공에 올라타는 것이 훨씬 확률이 높을 것이다. 자신이 스스로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일, 그러니까 창업을 한다거나, 스타트업에 합류한다거나, 주식 투자를 열심히 한다거나 하는 일이라면 개인의 역량이 조금 더 중요하겠지만, 월급쟁이는 어떤 기회를 맞느냐가 더 결정적이고, 기회를 잘 찾아서 올라타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적절한 이직 역시 중요하다.

물론 폭넓은 모집단으로 통계를 내면 경향성이 발견될 것이다. 이를테면 1만명 쯤 조사를 하면 그 중에 행복하게 일하는 사람이 아닌 사람보다 평균적으로 더 높은 성공을 거뒀을 것이다. 그런데, 내 옆에 성공한 월급쟁이 친구는 행복하게 일한 친구이기보다는 운 좋게 기회를 잡은 친구일 것이다. 이른바, 빌 게이츠가 선술집에 들어가면 선술집에 있는 사람들의 평균 연봉이 대폭 오르는 효과다.

그래서 행복이 일반적으로 성공에 선행한다고 말하는 것이 옳은 이야기이긴 하지만, 월급쟁이인 나한테 딱히 도움이 되는 이야기는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네번째로, 인생의 행복은 일 바깥에도 있다. 수입이 늘어서 설령 회사에서 좀 행복이 줄었다고 해도 가족과의 삶에서 행복이 는다면 그 총합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언젠가 트위터에서 누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연봉이 두 배 오르면 두 배 행복해질 것 같죠? 그렇지 않습니다. 열 배쯤 행복해집니다.

빌어먹을 트위터는 검색이 잘 안되서 못 찾겠지만, 여튼 대충 저런 글이었고, 난 꽤 공감했다. 물론 이건 아마도 돈이 없을 때도 행복한 사람들 이야기일 거다. 난 선화랑 연애하기 시작하면서 정말 전에 느끼지 못했던 행복감들을 느끼면서 행복의 절정이라고 생각했는데, 결혼하면서 좀더 행복해졌고, 아파트를 지르면서 좀더 행복해졌고, 차를 몰고 다니면서 더 행복해졌고, 또 아기가 태어나면서 더 행복해졌다. 이 과정에 돈이 기여한 바는 결코 작지 않다.


마지막으로, 연봉을 올리기 위해 이직하는 행위는 사회적으로 유익하다. 나는 아직도 우리나라의 노사 관계가 사측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다고 보며, 노동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해야 개선될 거라고 생각한다. 권리를 위한 투쟁은 민주시민의 권리이자 의무이고, 내가 더 많은 연봉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나 뿐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다. 특히 경력 많고 실력 있는 사람들이 낮은 연봉으로 일하는 것은 후배들에게 엄청난 민폐가 된다. 이것이 내가 이콜레모에서 자기 연봉을 자기가 정하되, 스스로 충분히 만족할 만큼의 연봉을 부르도록 유도했던 이유 중 하나다. (첨언으로 살짝 자랑하자면, 이콜레모 멤버들이 다들 그 때는 스스로 만족할 만한 연봉을 불렀다고 했는데, 이콜레모가 해체된 지금 모두 그 때보다 훨씬 많은 연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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