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갈 집 찾기


Youngrok Pak at 1 week, 2 days ago.

애가 둘이 되면서 집이 좁아져서 넓은 집으로 이사가려고 몇 주째 여기저기 다녀보고 있는데, 마음에 쏙 드는 곳이 없다. 우리나라 주거 문화가 정말정말 마음에 안 든다.

내가 원하는 조건은 대충 이렇다.

  1.  집 바로 앞에서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곳
  2. 신생아부터 초등학생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곳
  3. 일조량이 충분할 것
  4. 방 네 개 이상이면서 우리 돈으로 대출 조금 끼고 사거나 전세로 들어갈 수 있는 곳
  5. 평상시 소음 60 dB 이하
  6. 5~10분 정도에 동네 상권에 도달할 수 있는 곳
  7. 하늘이 많이 보일 것(옵션)
  8. 오르막이 너무 심하지 않을 것

방 네 개, 가격#

방 네 개가 필요한 이유는 안방, 장모님방, 하영이방, 내 서재, 이렇게다. 준이가 자기 방이 필요해지는 시점이 되면 아마 장모님 도움이 필요없어질 가능성이 높아서 다섯 개는 아니라도 되지만, 다섯 개면 더 좋긴 하다. 하지만 방 다섯 개짜리 집은 거의 없다. 그래서 방 네 개로 조건을 걸었다. 이렇게 찾아보니 우리 자금 여력이 많다고는 할 수 없는데도 의외로 3번은 상당히 폭이 넓었다. 수지구에만도 셀 수 없이 많은 매물이 있었다. 하지만 정자동이나 판교의 비싼 아파트로는 갈 수 없었다. 광교의 새 아파트들은 전세로만 갈 수 있는 정도.

집 바로 앞에서 아이들이 어울려 놀 수 있는 곳#

하지만 1번에서 대부분의 아파트가 탈락했다. 특히 지은지 오래된 아파트들은 대부분 아파트가 자동차 위주로 설계가 되어 있어서 아이들이 집에서 나오자마자 차가 다니는 길을 마주해야 한다. 난 꼭 차에서 완전히 유리된 환경이 좋다고 보지는 않고, 차와 사람이 적절히 섞여서 천천히 다닐 수 있는 여유 있는 길이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이런 아파트들은 설계 자체가 차를 중심으로 되어 있어서 아파트 내임에도 불구하고 차들이 빨리 달리는 경우가 많고, 통행량도 많다. 그래서 대부분의 오래된 아파트들은 1번 조건에서 탈락해서 지은지 검색 조건에 15년 이내라는 조건을 추가할 수 밖에 없었다.

최근의 새 아파트들은 차가 지하로만 다녀서 지상은 보행자 전용으로 확보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수지구는 그걸 흉내만 내는 수준의 아파트들이 많았다. 그래도 그 흉내만으로도 분명히 옛날 아파트들보다는 확연히 나았다.

나는 어릴 때 집 바로 앞에서 매일 학교 갔다 와서 해가 질 때까지 뛰어놀았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도로가 포장도 되지 않은 흙길이어서 흙바닥에 구멍을 파고 구슬치기도 했었고, 포장이 되고 나서는 피구, 진돌, 오징어달구지, 딱지치기 등등 온갖 놀이를 하면서 놀았다. 가끔 차가 지나가면 투덜거리면서 비켰다가 다시 계속 놀았다. 놀다가 저녁 시간이 되면 엄마가 창문을 열고 밥 먹으러 오라고 불렀고, 그러면 아이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때때로 해가 지고 저녁 먹고 나서 다시 나와서 놀아도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굳이 아는 친구를 불러내서 노는 게 아니라 그냥 집 앞에 나가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었다. 어울려 노는 나이도 유치원생부터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다양했고, 중학생들도 가끔 어울려 놀았다. 나는 그런 경험을 아이들에게 주고 싶었다.

요즘은 길거리에서 그렇게 놀 수 있는 동네는 없다. 그것까진 이제 받아들였다. 대신 그 경험을 줄 수 있는 곳이 이제는 아파트 단지다. 아파트 단지 안에 여유로운 공간이 많으면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어울려서 놀 수 있다. 다행히 지금 살고 있는 새터마을죽전힐스테이트는 동간 거리가 꽤 넓고 그 사이에 공간이 넓어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논다. 이 정도만 되어도 만족할 것 같은데, 정작 40~50평 이상의 대형 평수가 있는 아파트들도 이런 여유 공간이 충분한 곳은 매우 드물었다.

1번을 통과한 아파트도 숫자가 매우 적은데, 여기서 2번까지 적용하면 소규모 단지들은 모두 탈락한다. 소규모 단지라도 주위 다른 단지들과 어우러질 수 있으면 이 조건을 좀더 쉽게 충족할 텐데, 그런 경우는 많지 않았다. 단지 간에 그렇게 어울려 살기 싫은지 벽으로 막아놓고 출입구에 보안장치까지 해놓은 경우가 많았다. 특히 그 아파트 외에 다른 용무로는 도저히 올 일이 없어보이는 아파트인데도 출입구를 닫아놓고 카드키로 출입하게 하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작 악의적인 의도를 가진 사람이라면 손쉽게 출입할 수 있고 평범하게 걸어서 가려는 사람만 막는 보안 시스템이다. 보안이라든가 안심이라든가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지적인 수준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만든 시스템이다. 아파트 주차장도 그닥 통제할 필요가 없어보이는데 외딴 곳에 있는 아파트도 다들 외부 차량 못 오게 막아놨다. 덕분에 소규모 단지들은 커뮤니티를 형성할 기회를 잃고 말았다. 인접한 아파트 단지끼리 길만 터놔도 훨씬 좋을 텐데 뭘 그렇게 금을 긋고 살고 싶은 건지.

너무 시끄럽지 않은 곳#

나는 너무 시끄러워서 창문을 열 수 없는 곳에서 살고 싶지 않다. 버스가 언덕길 올라가는 소음 때문에 새벽잠에서 깨야 하는 곳에서 살 생각도 없다. 하지만 소음 조건은 7번 오르막 조건에 상충한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새터마을에서도 가장 꼭대기에 있어서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조용한 아파트 중 하나일 텐데, 대신 내가 분당, 수지, 광교에서 둘러본 30여개의 모든 아파트 단지 중에서 가장 오르막이 높은 곳이다. 해발고도로는 잘 모르겠지만, 종심이 되는 도로와 상권에서 올라가야 하는 높이는 가장 높다. 스파크로 이 언덕을 올라갈 때는 에어컨을 꺼야 뒷차에 민폐를 끼치지 않고 올라갈 수 있다. 이 높이는 우리 부부 둘만 살 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애를 키우면서 애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다녀야 하는 상황이 되자 상당히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소음 기준은 조용한 곳에서 너무 시끄럽지 않은 곳으로 조정했다. 우리 집 주변은 평소에 40 ~ 50 dB 사이인데 이 정도는 이제 바라지 않는다. 원하는 수준은 주위 가장 가까운 도로에 차가 많이 지나가거나 버스가 지나갈 때 기준으로 60 dB 이하다. 여유 있게 잡은 기준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이 조건은 만족하기 매우 어려웠다. 일단 유력한 후보로 생각했던 정자동 두산위브는 항시 70 dB 이상이 나와서 바로 탈락. 여기는 위치를 생각하면 그럴 법한데, 정작 우리가 조용하다고 생각했던 신봉동 센트레빌 1단지도 길가에 인접한 동에서 70 dB을 넘기는 수치가 나왔다. 뒷 동은 50~60 dB 수준이 나왔음을 생각하면 격차가 상당히 크다. 여기는 집 구조도 상당히 좋고 동네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맘에 들었는데 사실 1,2번 조건을 좀 부실하게 충족해서 망설이던 찰나에 매물이 나온 앞동 소음 수준을 보고나니 후보에서 탈락시킬 수 밖에 없었다. 뒷동 매물이 나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는 있겠다.

동네 상권에 가까운 곳#

이것도 우리 부부만 산다면 별로 중요한 조건이 아니지만, 아이들과, 낮에 아이들을 키우는 장모님을 생각하면 필수 요소에 가깝다. 지금 아파트는 너무 오르막이 심해서 불편함이 컸던 게 사실이다. 차를 타지 않고 아이들을 데리고 근처 어딘가를 가기는 대단히 힘들다. 근데 또 이 조건을 들이대니까 앞의 조건들을 충족한 단지들이 대거 탈락했다. 성복 자이 2차는 오르막도 그리 심하지 않고 단지 안도 괜찮고 조용했지만 길을 건너지 않는 곳에 상가가 없었고, 길을 건너서 가는 상가 단지도 작은 건물 두 개 밖에 없어서 많이 부족했다. 심곡마을 힐스테이트도 이게 좀 부족했다. 수지 래미안이스트파크도 약간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다른 모든 조건이 좋았고, 나름 수지 교통의 중심부에 가까워서 상권 접근성이 좋으리라 생각했는데, 막상 걸어서 편하게 갈 수 있는 거리에 상가가 없었다. 전반적으로 신봉동과 성복동에는 1~5 조건을 충족하는 아파트가 많았지만, 오르막이 심하거나 상가 접근성이 매우 나쁜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너무 아파트 밖에 없어서 갑갑한 느낌도 많이 들었다.

일조량이 충분할 것#

수지에서 만족스러운 집을 못 찾아서 광교상현지구까지 훝어내려갔다. 근데, 일단 여기는 다른 조건을 만족하는 경우는 너무 비싸서 전세로 밖에 갈 수 없었는데, 전세는 아무래도 2옵션이라 피하고 싶었다. 거기다 가장 큰 문제는 아파트들의 높이가 워낙 높아서 햇빛이 잘 안 드는 곳이 많아보인다는 것이다. 특히 저층부는 아예 햇빛이 들지 않는 단지도 있는 것 같다. 10억도 넘는 돈을 주고 햇빛이 들지 않는 집을 사는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또 이런 집을 설계하는 건축가들은, 이런 집을 허가하는 정부는 뭔가? 그저 땅에서 최대한 돈을 뽑아내는 것만이 목표인가? 호수 전망 차지하겠다고 다른 아파트 전망을 가려버리고 호수에서 보는 하늘도 조각내버리는 이 건물들은 어찌할 것인가? 몇년 전까지만 해도 광교는 자연과 어우러진 주거 환경이라는 느낌을 줬는데, 지금은 그냥 성냥갑이다. 그나마 외곽으로 조금 나가면 집값도 싸지고 일조량도 좋아지지만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에 인접하거나, 그런 도로를 지나야 상권에 도달할 수 있거나, 상권이 없거나, 오르막이 심하거나 해서 살만한 환경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수지 동천동 래미안도 상당히 고가에 대형평수인데 동간 간격이 너무 좁아서 옆동이 그대로 일조권을 침해하는 어이 없는 현실이다.

근데, 몇 년 전에 광교 호수 공원 바로 앞에 짓는 거 보면서 전망을 사유화한다고 욕을 퍼부었던 힐스테이트 광교가 완공되고 입주를 했는데, 막상 가보니까 거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 비열한 인간의 심리란... 제주도 섭지코지의 올레길을 걸을 때는 휘닉스파크가 싫지만 휘닉스파크에 숙박할 때는 좋았던 것처럼... 하지만 전세가도 우리의 상한선을 넘나드는데다가 매매가는 10억을 넘어가버렸다. 여기는 집값이 오를 가능성이 많아서 매매가에 비하면 전세가 아직은 싼 편이지만, 전세가는 오를 가능성이 매우 높아보였다. 차라리 매매를 한다면 집값 오르는 기대라도 하면서 무리를 하겠지만 전세를 위해 무리를 했다가 2년 후에 오를 경우 감당하기 어려워보였다.

일조량에서 또 하나 고려하는 것은 집 내부의 일조량 뿐 아니라 단지 공간들의 일조량이다. 예전에 광교 래미안에 집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단지 내 놀이터가 아파트들에 둘러 싸여서 햇빛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그 때는 겨울이라 추워서 그런지 더욱 거부감이 크게 들었다. 

일조량 문제는 결국 7번 하늘이 얼마나 보이느냐와도 연결되는 문제다. 광교처럼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곳에는 설령 아파트 방향과 간격을 절묘하게 배치해서 일조량을 얻어낸다 하더라도 단지 내부를 거닐으면서 하늘보다 콘크리트가 더 많이 보이는 현실을 만나야 한다. 그런 곳에서 살고 싶진 않다.

타협할 것인가, 더 찾을 것인가.#

처음에는 내가 원하는 조건이 그렇게 까다롭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당연히 필요한 것들 아닌가? 하지만, 내가 알아본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의 현실은 많이 달랐다. 내가 내 집에서 편안하게 사는 것보다 내 집 값이 오르는 게 더 중요하다는 관점에서 지어진 아파트들, 그리고 그런 곳에 입주해서 사는 사람들, 이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내가 원하는 집을 찾기는 너무 어려웠다. 마당 딸린 주택의 꿈은 포기한 지 오래다.

집을 알아보러 다니면 다닐수록 생각보다 지금 새터마을의 조건이 너무 좋았다. 오르막과 방 세 개라는 조건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조건이 괜찮다. 그래서 돈 더 많이 쓰고 대형평수로 가면 당연히 지금보다 모든 면에서 더 좋은 집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게 좀 안이했던 것 같다. 그래서, 타협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받아들인다. 하지만, 아직 뭘 어떻게 타협할지는 잘 모르겠다.

타협안이 하나 있긴 있다. 바로 옆 동네 내대지마을 건영 캐스빌. 이미 작년에 찾아둔 후보지인데, 뭔가 더 좋은 곳으로 가고 싶어서 여기저기 돌아다녀 본 것이다. 하지만 비교할 때마다 여기보다 확실히 낫다고 하기가 어려웠다. 자금 범위에도 들어오면서 소음을 제외한 모든 조건을 만족한다. 여기가 새터마을 못지 않게 조용할 줄 알았는데, 막상 소음을 재보니 70 dB을 넘어가는 수준이었다는 게 좀 놀라웠다. 하지만, 도로와는 거리가 제법 있어서 도로 소음만으로 이런 게 아니라 아이들 노는 소리 등 생활소음이 어우러진 거라는 점을 감안하면 도로 소음만으로 70 dB가 나오는 신봉동 동부센트레빌 1단지보다도 좋은 것이다. 아마도 밤에는 훨씬 조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우리 집이 팔리기 전까지 더 좋은 대안을 찾지 못하면 건영 캐스빌로 이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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