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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일기장/2012-12-19 | edited by Youngrok Pak at 11 years, 1 month ago.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부산까지 투표하러 갔다온 내가 바보가 된 기분이다. 집권당이 그 많은 악행을 저질러도 끝없이 용서해주는 관대한 국민.

이번에 정말 뼈저리게 느낀 건, 우리나라의 수구층이 정말 굳건하다는 것이다. 난 정말 빨갱이가 아직도 실존한다고 믿는 사람이 내 가까이에 있다는데 큰 충격을 받았다. 도대체 얼마나 정보들이 전달이 안되면 그런 걸 믿을까? 솔직히 정상적인 사고 능력을 갖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이래저래 생각을 해봤다. 과연 앞으로 이 수구층 무너질 날이 올까. 이게 정말 노인과 젊은이의 대결이라면 한 20년 후에 지금 노인들 다 죽으면 수구세력이 무너질까? 이런 관점으로 생각을 해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닐 것이다. 우선, 이 수구세력은 지역에 기반하고 있다. 영남지방에 살면서 지식인들과 교류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자라나는 젊은이들은 부모의 사고방식을 고스란히 물려받을 수 밖에 없다. 나도 고등학교 때 부모님 얘기를 들으면서 김대중이 대통령되면 나라 망하는 줄 알았다. 심지어, 대학 때도 난 정치에 큰 관심이 없었고 이회창이 대통령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건 역사를 공부하면서부터였다. 대학 때 일본 애니메이션 바람의 검심을 접하면서 일본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게 일었다. 어째서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일본에 앞선 문명을 갖고 있었으면서 일본이 저렇게 변혁해나갈 때 조선은 그러지 못했는가. 궁금했다. 그래서 일본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메이지 유신에 초점을 맞췄는데, 하다보니 그 이전 도쿠가와의 시대, 전국시대 등도 공부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가 알게 된 건 우리나라가 역사적으로 일본에 앞섰었다고 하기 어렵다는 거였다. 그동안 국사를 배우면서 중국의 문화가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 전달되는 이미지를 너무 강하게 받아서 그런지 일본이 예전에는 후진국이었다가 근세에 와서 앞지른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한반도가 앞섰던 건 삼국시대, 고려시대 중기 정도지, 항해 기술이 발달하고부터는 오히려 종합적인 면에서 일본이 더 앞섰다. 

하지만, 그래도 충분하지 않았다. 어쨋든 일본과 조선의 격차가 있었다고는 해도 나라를 집어삼킬 정도는 아니었다. 무엇이 차이를 만들었는가. 일단 메이지 유신을 배우면서 그래도 일본의 동력은 어느 정도 이해했는데, 왜 조선은 그러지 못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한국의 근대사부터 공부하기 시작했고, 교양 강좌를 이것저것 들으면서 지식을 쌓았다. 그러다가 권일이를 통해 강준만씨의 저서들을 접하게 되었고, 때마침 한국 현대사 산책이 출간되었다. 정말 궁금했던 한국 현대사에 대한 자료에 목이 말라있던 나에게 이건 단비와 같았다.

그리고, 이걸 읽으면서 난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박정희에 대해서는 그 이전에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박정희 전후의 역사에 대해서 모르는 부분이 많았고, 한국 독립사에 대해 우편향적으로 쓰여진 역사서 밖에 읽지 못했던 터라, 한 줄 한 줄이 충격과 공포였다. 읽다가 눈물을 흘린 것만도 대여섯 번. 그제야 선거 때마다 전라도는 죄다 민주당 찍고 경상도는 죄다 한나라당 찍는 게 단순한 지역 편향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주위에 가족을 잃은 사람이 수두룩한데, 그 학살자의 집단을 투표로 뽑을 수 있겠는가.

3당 합당도 정말 어이 없는 사건이다. 군부 세력과 투쟁하던 김영삼이 자신의 집권을 위해 3당 합당을 하고 나니 그렇게 서로 물고 뜯고 싸우던 김영삼 지지 세력과 군부 지지 세력은 합심해서 민자당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지금에 와서 정말 어이가 없는 것은, 현재의 새누리당은 이 민자당의 후예이지만 군부 세력은 김영삼의 배신(?)으로 많이 축출되었고, 실질적으로 김영삼의 후예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당시 노태우 정권을 지지하면서 김영삼 지지세력을 벌레보듯 하던 사람들이 뻔히 지금 새누리당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대상이 실체가 사라졌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이다.

뭐, 열거하자면 한이 없겠지만, 아뭏든 한국 현대사에 대한 공부가 깊어갈수록 한나라당이 다시는 집권해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집권하면 안되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이 저지른 죄악들을 낱낱이 까발려서 심판해야 한다.

이게, 부산에서 태어나서 평생 한나라당 지지하는 의견만 듣고 자란 사람이 한나라당 비판 세력으로 변하는 과정이다.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나마, 나는 운이 아주 좋은 편이다. 대학에서 역사를 배울 때도 양쪽 입장에 서 있는 교수를 다 만날 수 있었고, 양쪽 의견을 고루 접할 기회가 많았기에 자연스럽게 비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남에서 태어나서 타 지역으로 가지 않고 평생 사는 젊은이들을 생각해보자. 과연 나처럼 다른 생각을 접할 기회가 있을까? 나 역시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한나라당 지지자였을지 모른다. 그나마 서울로 유학갈 기회라도 잡은 애들은 좀 낫겠지만, 계속 태어난 곳에서 사는 아이들은 다른 생각을 접할 기회 자체가 없을 것이다. 인터넷도 별 다를 바 없다. 자기 주변 사람들이 가는 사이트에 가고, SNS도 주변 사람들 중심으로 할 테니 다른 의견은 역시 접할 수 없다. 이미 새누리당 알바들이 장악한 포털에 가면 그게 진짜인 줄 알 것이고.

그래서, 영남지역의 수구층은 대물림된다. 20년 후가 되어도 별반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얘기다.

그럼, 그래도 엎치락뒤치락한 전력이 있는 지역들, 혹은 야당 성향의 지역들은 시간이 지나면 젊은이들이 수구를 멀리하게 되지 않을까? 그것도 희망적이지 않다. 취업난 때문이다. 수구 세력의 마인드에 동조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취직을 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사회 안전망이 없는데 무작정 창업을 한다는 것도 쉽지 않다. 결국 20대들은 자신들을 궁지로 몰아넣은 수구 세력의 마인드에 동조해야만 그나마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앞으로 일자리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낮다. 중소기업이 커 나가야 일자리가 늘어나는데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로 중소기업이 하나 둘씩 망해가는데 일자리가 늘어날 리 없다. 화장실도 못 가고 하루종일 서 있어야 하는 이마트 계산대 직원 같은 일자리나 늘겠지. 이런 젊은이들의 생활고가 분노가 되어 정치권을 향한다면 달라질 수도 있겠으나, 이들에겐 분노도 사치다. 분노해서 거리에 나가 시위하다가 짤리면 어쩌려고. 결국 자신의 처지를 어떻게든 합리화하면서 살게 마련이다. 사람은 잃을 것이 없을 때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이지 조금이라도 잃을 게 있다면 오히려 분노보다는 굴종을 선택한다. 그래서, 설령 20대의 투표율이 높아진다 하더라도 그 힘이 그리 엄청나진 않을 것이다.

또 하나는 언론이다. 노무현 때의 패배를 열심히 분석한 새누리당은 언론 장악이 키워드라고 보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공정한 보도를 해주던 MBC와 YTN을 장악하면서 TV에서 정권 비판 목소리를 거의 완전히 제거했다. 엉뚱하게도 요즘 SBS가 그나마 약간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한겨레와 경향은 여전히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조중동에 비하면 영향력이 미미하다. 그리고 댓글 알바로 인터넷 포털도 장악했고, SNS에도 일부 침투하고 있는 상황. 실질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접하는 대부분의 매체가 친 새누리당이 된 것이다. 그리고, 조중동도 예전처럼 투박하게 선동하는 게 아니라, 아주 교묘하게 선동전을 펼친다. 스스로 합리적인 보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아주 효과적으로 세뇌시키고 있다. 그런 반면 지금 SNS를 지배하고 있는 진보의 목소리는 주류 미디어로 전달이 되질 않으니 SNS를 폭넓게 쓰는 사람이 아니면 수구편형된 언론 밖에 접할 수 없는 것이다.

나꼼수가 무려 천만명이 다운로드를 받아서 봤지만, 나꼼수를 한 번도 안 들어봤거나, 들어보자마자 내용도 안 듣고 그들의 말투에 화를 내는 사람들이 2천만이다.

정리하면, 1) 영남지역의 수구 성향은 대물림되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으며, 2) 젊은이들은 생존에 목매여서 진보에 귀기울일 여유가 없고, 3) 언론이 장악 당해서 뉴미디어를 제대로 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수구로 기울게 된다는 것.

그러니까, 지금 이대로 가면 5년 후에 안철수가 되기는 커녕 정몽준이나 오세훈이 되지 않을까 걱정해야 되는 시간이 또 올 거라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세력이 줄어드는 그 날은 오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뭔가 대변혁을 일으킬 만한 게 없다면.

난 그래도 나꼼수가 그 대변혁을 일으킬 만한 그 무언가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엄청난 노력에도 이 사태를 어쩌지 못한다는 게 정말 믿기 어렵다. 그 이상으로 뭔가 더 대단한 일을 해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게 가능하긴 한 것인가. 나꼼수의 노력이 정말 창의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상 창의적인 무언가를 찾아내지 못하면 답이 없다는 거, 이게 현실이다.

노무현 때만 해도 정말 난 더 이상 정치에 관심 안 가져도 되리라 생각했다. 이제 우리나라도 민주화가 되었고, 노무현이 탈권위도 상당히 이뤘고, 과거의 올바르지 못한 역사도 상당히 많이 바로잡았다. 그래서 이명박이 되어도 민주화의 뿌리는 흔들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명박과 새누리당은 이 나라의 언론 자유의 수준을 가나 수준으로 끌어내렸고, 트위터에 농담 잘못했다고 처벌 받는 시대가 되었다. 더 후퇴할 리는 없다고 생각하는가? 지금보다 훨씬 더 후퇴할 수 있다. 인류의 역사는 수많은 후퇴로 가득하다. 로마의 민주정이 있었던 그 나라에 중세 암흑시대가 왔고, 무솔리니가 등장했다. 박정희 시대로 되돌아갈 가능성도 대단히 높다.

더 암울한 것은, 그런 상황이 되면 진보 성향의 능력 있는 사람들은 한국을 바꿔보려고 하기보다는, 그냥 더 좋은 나라로 떠날 거라는 점이다.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가 다른 곳에 있는데, 뭐하러 굳이 힘들게 투쟁해가면서 나라를 바꾸려고 하겠는가.

나도 아마 이 나라가 내가 참을 수 있는 한계점을 넘어선다면 미련 없이 버릴 것이다. 내 자식에게 다른 사람이 굶어죽든 말든 자기만 잘 살면 된다고 가르칠 생각은 추호도 없고, 그런 나라에서 살게 하고 싶지도 않다.

정말 우울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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