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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일기장/2013-05-03 | edited by Youngrok Pak at 10 years, 10 months ago.

글 쓰기 전에 먼저 부탁 하나. 이 글은 다른 곳에 퍼가거나 링크하지 말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일기장/2013-02-21에서 이콜레모를 접고 카카오로 들어가는 이유를 주저리주저리 써놓았다. 그리고 카카오에 입사한지 두 달, 그 동안의 소감을 적어보고자 한다. 링크하지 말아달라고 미리 밝힌 이유는 그 소감이 몹시 부정적이고 글 내내 카카오를 엄청 씹을 것이므로 굳이 이 이야기가 카카오의 다른 사람들 귀에 들어가게 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냥 내 지인들에게 내가 이렇게 갑갑해하고 있다는 것을 토로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트위터에도 노출하지 않고 페이스북에 친구공개로만 노출할 것이다. 내가 페이스북에 전체공개가 아닌 글을 쓰는 건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입사 첫날의 느낌은 '응?' 이었다. 둘쨋날, 입사 취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 째, 카카오에 입사한 선택을 몹시 후회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난 지금은 갑갑해서 미칠 것 같다.

왜 이렇게 후회하는가? 그 답은 지난 번에 쓴 글 일기장/2013-02-21에 나와 있다. 내가 카카오에 들어가려는 이유, 그 이유를 하나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 드림팀 재결성과 글로벌 IT 기업과 붙어볼 수 있는 기회.

드림팀 재결성은 이틀 째에 바로 깨졌다. 입사하기 전에 일부분 예고가 되긴 했지만, 팀을 쪼개는 것에 대해 반대 의견도 충분히 피력했고, 쪼개더라도 충분히 협업할 수 있는 형태로 프로젝트만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하지만 전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냥 팀을 반으로 뚝 잘랐다. 그 이유는 초기 프로젝트 팀으로는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이건 오히려 카카오가 신규 프로젝트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반증이다. 초기에 아이템 탐색 과정에선 다양한 크기의 팀이 요구된다. 명확한 아이템이 있어서 출발한 팀이라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 아이템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여러 개의 아이템 후보가 떠오르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아이템의 초기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비용은 제각각이다. 한 명이 하루만 작업해도 되는 게 있는 반면, 3~4명이 2~3주씩 작업해야 하는 것도 있다. 그러면 아이템 발굴 과정에서 팀이 실시간으로 이합집산을 하면서 가설을 검증하면서 아이템을 좁혀나가게 된다. 그런데, 7명이 많다고 그냥 둘로 딱 나눠서  아이템 두 개 정해서 각각 하라는 것은 아이템 발굴 과정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른다는 얘기다. 당연히 납득할 수 없었고 반발했지만, 또 그렇다고 끝까지 반발하면서 이번에 말썽장이들이 들어왔군 하는 시선을 받고 싶진 않았다. 뭐, 끝까지 반발한다고 결론이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았고. 그래서, 내가 카카오에 들어간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입사 이틀째에 깨진 것이다.

우리팀은 팀 구성이 좀 독특하다. 단순히 장단점과 역할만 놓고 보면 지금처럼 반으로 나눠도 각각의 반이 충분히 full stack이 되므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데는 문제가 없지만, 이렇게 나누면 그냥 평범한 팀이 되버린다. 비교를 하자면, 티몬에서의 5인방일 때의 팀은 당시 경쟁사의 20명 팀보다 높은 퍼포먼스를 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팀 구성이 시너지가 발생할 수 있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근데 지금은 그냥 개개인의 합산만큼 밖에 안된다. privacy 문제도 있기 때문에 더 깊이 이야기하긴 어렵지만 팀 케미스트리라는 게 단순히 스펙 덧셈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카카오가 팀웍을 중시한다는 말은 뻥이었다.

 

글로벌 기업과 붙어볼 수 있는 기회라는 것도 일주일 째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카카오는 글로벌 의지가 없다. 글로벌 진출을 안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이라고 자꾸 단서를 달긴 하지만, 실질적인 행동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목표 자체가 글로벌이 아니라 그냥 한국에서 착한 네이버가 되겠다는 것이다. 물론, 글로벌은 노리고 싶다고 노릴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런데 지금 정말 글로벌을 노릴 수 있는 아이템을 발굴해내는 거대한 행운을 누렸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걷어차버렸다. 사실 성공이라는 건 예상치 못한 기회가 찾아왔을 때 잡는 능력인데, 카카오가 잡았던 기회가 얼마나 큰 기회였는지를 잘 몰랐던 듯 하다. 아뭏든 이제는 그 기회가 거의 사라져가는 중이다. 라인은 미개척지를 한발 앞서서 개척하고 있고, 페이스북은 기존 영토를 굳혀나가고 있다.

어쨋든, 입사하고 한 달 정도는 글로벌 노래를 불렀는데, 아무 반응이 없었다. 심지어, 왜 나를 믿고 글로벌을 맡겨야 되느냐는 식의 반응까지 들었다. 그렇게 못 믿을 꺼면 뭐하러 뽑았나? 카카오 초기에 글로벌에 실패한 경험이 움츠러들게 만든 건지도 모르겠다. 아뭏든 앞으로 6개월 안에 파격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글로벌은 그냥 라인 차지라고 보는 게 맞을 듯 하다. 사내의 분위기도 라인이 앞서가는 것을 그다지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 쿠팡과 위메프의 추격을 겪으면서 그 와중에 경쟁자들에게 배우려고 했던 티몬과 몹시 비교된다. 물론 소셜커머스는 지나치게 경쟁자를 의식한 감은 있지만, 시장 상황상 경쟁을 안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지금 카카오는 일부 정신승리까지 나오고 있을 만큼 안이하다. 아뭏든 이렇게 나의 글로벌 꿈은 좌절되었다.

나중에 다시 기회 아닌 기회가 찾아오긴 했다. 내가 하도 불만을 투덜거리고 다녀서 그런지 그럼 하고 싶은 아이템을 제안해보고 한 번 추진해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근데 이미 프로젝트 시작했는데 그걸 내버려두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건 죽도 밥도 안되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이든 실패든 마무리되면 그 다음에는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그 때는 이미 라인 2억 돌파한 이후일 걸?

 

아뭏든 이렇게 내가 들어가려고 했던 결정적인 이유 두 가지가 모두 깨졌다. 근데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또 한 가지, 내 방식대로 일해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무너졌다. 성공은 과연 운인가에서 난 우리 팀에 부족한 것이 돈(=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시간) 밖에 없다고 생각했었고, 그 부족함을 카카오에 들어오면 채울 수 있기 때문에 1~2년 안에 성공을 맛볼 수 있을 거라고 호언했다. 근데 들어와서 그 돈은 채워졌는데, 나머지 부분이 모두 실종되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팀도 깨졌고, 내 노하우들이 담긴 방식을 실행할 수도 없게 되었다. 그 핵심은 린 스타트업이다. 사실 내가 들어가기 전에 경영진에서 전 직원에게 린 스타트업 책도 나눠주었고, 린 스타트업 세미나도 하고 전체 회의 때도 이야기하고 심지어 우리 팀은 린 스타트업의 시범 사례를 보여달라는 미션까지 받았다. 그래서, 당연히 린 스타트업을 제대로 해볼 수 있을 줄 알았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이미 회사 구조 자체가 린 스타트업보다는 대규모의 퀄리티 높은 제품을 유지보수하기에 적합한 구조로 변해있었다.(변해있었다고 말하는 건 옛날에는 안 그랬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인데, 사실 옛날에도 정말 안 그랬는지는 몹시 의심스럽다.)

경영진이 린 스타트업을 이야기하는 이유도 그 저의가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린 스타트업의 철학에 깊이 동의해서라기보다는 그냥 "빨리"라는 키워드 때문인 것 같았다. 최근 카카오에서 진행한 신규 프로젝트들이 6~9개월 걸렸는데 그게 너무 느리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뭔가 빨리 결과를 보고 싶은데 마침 린 스타트업이 떠오르는데 거기서 "빨리"를 이야기하니까 그냥 끌어온 것 같다. 여기에도 직원들에 대한 불신이 느껴졌다. 그 직원들이 잘 못해서 느리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마침 내가 아는 사람들이 있는 팀들인데 결코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아니다. 지금은 카카오 회사 구조상 누가 프로젝트를 해도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고, 그 책임은 경영진에 있는 것인데 오히려 직원들에게 느려진 책임을 묻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우리 팀은 내가 시작하기 전부터 린 스타트업은 퀄리티 희생하는 걸 각오해야 한다고 수십 번 엄포를 놔서 그나마 실험적인 시도들을 할 수 있었지만, 거기에도 걸림돌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프로젝트의 첫 릴리스까지 4주가 걸렸고, 그 릴리스에서 시험해볼 가설은 두 가지였는데, 오픈 셋째 날에 가설 하나는 검증되었고 다른 하나는 미지수로 나왔다. 딱 이 결론까지 얻는 것을 이콜레모에서 진행했다면 아마도 다 합쳐서 사흘이면 충분했을 것이다. 내가 아니라 다른 외부의 스타트업이었더라도 뛰어난 개발자 한 명 이상 있는 팀이라면 일주일 이내에 같은 결론을 얻었을 것이다. 이게 현재 카카오의 스피드다. 내가 12년간 겪은 모든 회사 중에 가장 느리다. 오픈마루보다는 당연히 느리고 2002년의 NHN, 외주로 일해본 삼성보다도 느리다. 티몬이랑은 비교 불가다.

뭐가 그렇게 느리냐는 것도 일일이 짚고 싶으나, 역시 민감한 문제들이 얽혀 있어서 일단은 참기로 한다. 이건 회사 안에서 계속 문제 제기를 할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엔지니어들의 협조는 매우 신속했다는 것이다. 사람이 대응할 수 있는 속도로는 더 이상 빠를 수 없을 만큼. 하지만, 사람이 대응하는 구조인 만큼 어쩔 수 없는 지연이 발생한다. 아마존이 AWS를 만들게 된 과정은 아마 이 지연을 제거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아뭏든 린 스타트업에 적절한 구조라고는 할 수 없다.

 

카카오가 자유로운 조직이라는 점도 인정할 수 없다. 그냥 방만한 조직일 뿐이다. 비전과 규율이 명확히 서 있지 않기 때문에 제각기 행동하는 것을 통제하지 못할 뿐이다. 반대로 자율이 필요한 부분에는 자율이 없다. 그저 제멋대로 하고 싶은 사람은 제멋대로 할 수 있는 정도의 자유가 있을 뿐이다. 개발자들이 기술을 마음대로 선택하는 자유? 요즘 그건 자랑거리도 안된다. 수평한 팀 문화? 스타트업이라면 당연하지. 근데 내가 겪어본 회사들 중엔 별로 수평적인 편도 아니다. 적어도 오픈마루보다는 수직적인 조직이다. 난 그 오픈마루가 갑갑해서 뛰쳐나온 사람이란 말이지.

카카오에 입사해서 자리를 좀 잡고 나면 데려오고 싶은 인재들도 여럿 있었다. 전부터 같이 일하고 싶었던 사람들. 하지만, 그 사람들 추천해서 입사해도 같이 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젠 자신 있게 데려오지도 못하겠고.

티몬 있을 때도 맨날 시발시발 거렸지만 그 때는 그래도 일 자체는 몹시 재미있었다. 그리고 티몬 경영진을 그닥 좋아하진 않았지만 나보다 한참 어린 그들에게 배울 점은 무척 많았다. 하지만 카카오에선 별로 배울 게 없다. 내가 직원으로 다닌 회사 중에는 아직까지도 오픈마루보다 좋은 회사는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불만이 많은데 왜 다시 안 나가냐고? 뭐 그건 당연히 현실적인 이유다. 카카오에 들어오기 위해 기존 고객의 계약 연장 제안을 거절했고, 2월 달엔 회사 정리하면서 보내느라 수익도 못 냈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당장 나가면 다시 일거리를 찾고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그 시간을 감당할 수 없다. 곧 출산을 앞두고 있어서 리스크 있는 선택을 하기 어렵기도 하고. 그래, 이제 나도 월급쟁이 된 거다.

같이 들어온 사람들의 입장도 있다. 사실 나 이외에는 대부분 카카오에 적응은 하고 있고, 만족도가 나쁘지는 않은데, 여기서 내가 나가버리면 팀원들 입장도 몹시 애매해진다. 나가더라도 적어도 저 사람들 박영록이랑 같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다들 잊을 때쯤 나가야지.

그래서 이래저래 1년은 버터보기로 한 상태다. 그 사이 달라질 희망은 좀 있지 않을까? 냉정하게 말하면 없는 것 같다. 두 달 동안 아무 변화 없는 조직이 1년이라고 변화가 생길 리는 없지 않겠는가. 내가 그래도 두 달 동안 위에 요구한 변화가 여러 개 있는데, 어느 하나도 실현되거나, 혹은 명확한 답조차 돌아올 것 같지 않은 상황이다. 경영진 스스로도 변화를 위해 워크샵도 다녀오고 공청회도 하고 했지만, 아무 변화가 없는 건 마찬가지.

뭐 아뭏든, 월급을 두 번이나 받고 보니 이렇게 한가하게 일해도 월급이 나온다는 사실을 비로소 믿게 되어서, 앞으로 10개월쯤은 그럭저럭 버틸 수 있을 듯 하다. 요즘은 일에 대한 재미는 포기하고 코딩에서 재미를 찾아가는 중이다.

아뭏든, 나 지금 카카오에서 일하는 게 너무 답답해 미칠 지경이니 잘 되어 가고 있냐고 묻기보다는 그냥 위로를 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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