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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일기장/2015-07-07 | edited by Youngrok Pak at 9 years, 5 months ago.

손가락 골절이 된지 열흘 정도 지났다. 이제 통증은 거의 사라졌고 다 나은 듯한 느낌이 들지만 골절은 무조건 한 달 기브스 해야 한다고 해서 얌전히 하고 있다. 근데 계속 손가락을 못 펴니까 반대로 근육통이 좀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 가끔 피가 안 통하는 느낌도 들고 그래서 가끔 빼서 씻고 움직여주기는 하는데, 이게 잘하는 짓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오른손을 못 쓴 채 열흘 정도 살아보니 두 가지 상반된 느낌이 든다. 생각보다 살만하다는 느낌과 생각보다 불편하다는 느낌. 나는 일상 생활에서 양손을 고르게 쓰려는 노력을 꽤 오래 해왔다. 양치질도 익숙하고 마우스도 큰 불편 없이 쓴다. 의외로 설거지 같은 것도 양손을 반대로 해보면 매우 어색한 느낌이 들지만 이것도 익숙해졌다. 왼손 드리블이나 레이업슛도 그럭저럭, 근거리 점프슛도 넣을 수 있다. 그러다보니 의외로 처음 해본 왼손 젓가락질도 그럭저럭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을 정도까지는 금방 익숙해졌다. 그래서, 이렇게도 살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어려울 것 같은 일들이 의외로 그럭저럭 해결이 되는데, 반대로 예상 못했던 작은 불편들의 개수가 상당히 많다. 그러니까 오른손을 못 쓰면 불편지수 100인 일이 4~6가지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반대로 불편지수 20 정도인 일이 20가지 쯤 있는 그런 느낌이다. 그래서 불편함의 총합은 별로 작지 않다.

그러다보니 장애인에 대해 여러 모로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난 어려서부터 장애인이 나오는 미디어를 보기 꺼려했다. 만화고 드라마고 다큐멘터리고 다 싫었다. 왠지 내가 저렇게 되는 상상을 하게 되는데 그게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아마 사람들이 장애인을 차별하는 심리의 기저에 이런 심리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다가 장애인을 미디어에서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은 리얼 때문이다. 어서오세요 305호를 볼 때 동성애가 뭔지 학습하는 기분으로 봤다면 리얼은 정말 장애인이 된 느낌까지 같이 느끼는 기분인데도 별다른 거부감 없이 몰입할 수 있었다. 장애인이 된다는 것은 죽고 싶을 만큼 몹시도 우울한 일임은 틀림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고 웃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런 메세지를 던져준다.

내가 겪는 이 잠깐 동안의 불편과는 비교도 안되는 불편을 평생 겪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걸 때때로 떠올리게 된다. 그렇다고 내가 갑자기 장애인 봉사활동을 하거나 그러지도 않을 것이고, 길가는 장애인을 동정어린 눈으로 바라보지도 않겠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그 사람들도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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