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인상파 거장전에 갔었다. 나도 한 번씩은 이름을 들어본 유명한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다수 있었다. 내가 미술에 대해 안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예술 분야에 비해 미술은 상당히 친숙한 느낌이 들고 감상하는 것이 즐겁다. 누나는 피아니스트에 나 자신도 합창단을 4년 동안 했고 클래식 음악도 적지 않게 접했지만 아직도 클래식 음악이 친숙하게 느껴지진 않는 반면 미술은 별로 아는 것도 없는데 상당히 친숙한 느낌이 든다. 내가 청각보다는 시각에 더 많이 자극을 느끼는 것 같다. 미술 작품을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경우는 많지만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는 그런 경우가 드물다. 최근에 읽은 [세계 명화의 비밀]도 그런 친숙함을 더해 주는 것 같다. 전시회에 나온 작가들이 대부분 아는 이름이고 아는 작품도 있는데다 혼자가 아니라 선화와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보니까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다만 전시회의 관리는 그다지 좋게 평가해줄 수가 없었다. 유럽 여행 갔을 때는 사진 찍으면 안되는 전시회라곤 군사 박물관 하나 밖에 없었고 미술 작품은 모두 바로 앞에서 감상할 수 있었는데 여긴 사진도 못 찍게 하고 사진 앞에 1.2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막아놔서 가까이서 보지 못하게 해놨다. 8인치도 안되는 크기의 작품도 좀 있었는데 그런 작품을 멀리서 감상해야 하는 상황이 되니 좀 짜증이 났다. 1만 2천원의 관람료를 생각하면 좀 화가 난다. 직접 비교하긴 무리가 있을지 몰라도 루브르 박물관은 그 엄청난 규모와 엄청난 가치의 전시물을 만 원도 안되는 가격에 볼 수 있고 사진도 마음대로 찍고 작품 바로 눈 앞에서 볼 수 있었는데 이건 대체 뭐란 말인가. 좋은 시설에 좋은 작품 전시하면서 이런 식으로 하다니.
어쨋든 이런 류의 짜증을 잘 참을 수 있다면 가볼 만한 전시회인 것 같다. 국내에서 이런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을 듯.
예전에 권일이가 외국인 노동자 센터에서 컴퓨터 교육을 하는 봉사활동을 했었다. 당시 권일이는 입으로만 레드를 떠들지 말고 직접 사회에 참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다고 했었다. 그래서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먼 거리를 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오곤 했다. 당시 나도, 그 녀석도 SI 업체에 몸 담고 있었고 나는 먼 거리 출퇴근에, 그 녀석은 매일 같이 이어지는 야근에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이었는데 그 놀고 싶은 일요일에 아침 일찍 나가는 걸 보면서 한 편으로는 '나는 저렇게 못할 꺼야'라는 생각을 했었고 또 한 편으로는 그 귀중한 일요일을 희생할 만한 동기가 정말 그렇게 간단한 것인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갖가지 자원봉사자들의 스토리를 보고 들으면서 그 사람들의 동기가 궁금했다.
내가 일생동안 해봤던 봉사활동이라고는 과학고 다닐 때 고아원 가서 하루 정도 애들이랑 놀아준 것이 전부다. 아니, 굳이 넣자면 열흘 간의 농활이 있긴 하다. 원래 농활은 봉사활동이어선 안되지만 봉사활동이 되어버렸으니. 어쨋든 그 때는 다른 무언가 할 일이 없는 상태였으니 그다지 강한 동기가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기 직업이 있는 사람들이 주말마다 봉사활동을 하는 걸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 동기를 알고 싶었다. 이것이 내가 대안언어축제에 자원 봉사로 나선 이유다. 굳이 대안언어축제였던 이유는 그래도 내가 참가하고 싶은 행사인 게 좋겠다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년에도 정말 가보고 싶었던 행사였고 올해도 꼭 참가하고 싶었던 행사였기에 자원봉사로 활동할 만한 동기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시작한 지 한 달도 넘게 지난 현재, 아직은 힘들다는 생각이 앞선다. 사실 요즘 내 머리 속을 채우고 있는 것은 회사의 우리 팀이 어떻게 성공할까 뿐이다. 그렇다고 야근 같은 걸 하는 건 아니지만 집에 와서도 계속 그 생각 뿐이고 그러다보니 다른 곳에 관심을 할애하기가 어렵다. 그 생각만 한다고 딱히 잘되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그러다보니 자꾸 대안언어축제는 다음 일정 잡아야 하는 것도 잊고 장소 예약해야 하는 것도 잊고 어영부영 시간만 보내면서 대자봉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 퇴근 후에 또 앉아서 회의하는 것도 유쾌하지 못한 일이고.
구체적으로 두 가지를 풀어야 한다. 대자봉으로서의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 나의 관심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할당할 수 있을까.
일단 대자봉으로서의 역할을 처음에는 모임 일정 관리하고 주최하는 정도로 생각했다. 실상 누군가 대표 한 명이 이끌어가는 조직보다는 모든 참여자가 셀프 리더쉽을 발휘하면서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그런 모습을 상상했다. 대안언어축제가 끝났을 때 "대자봉이 정말 잘했더라" 같은 말은 별로 듣고 싶지 않았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저 그저 자원봉사자들이 모두 즐겁게 축제를 준비하고 축제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즐겁게 2박 3일을 즐기다 가는 것, 그것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무언가를 이끌어가는 모습이 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저 사람들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게 멍석을 깔아주는 것이면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일은 나에게 별로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연락처 관리하고 매번 연락 돌리고 모임 장소 잡고 하는 일들은 나에게 별로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다들 직장인이다보니 다들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못했다. 나오는 멤버가 매번 바뀌는 것도 상당히 부담이었다. 그리고, 오늘, Good to Great를 읽으면서 생각이 조금 더 바뀌었다. Good to Great에 성공한 기업의 CEO들은 개인적 겸양과 직업적 의지를 역설적으로 융합한다고 한다. 나는 개인적 겸양에만 치우쳤던 것이 아닐까. 일단 현재 추진력이 다소 부족해 보이는 상황에서 엔진이 하나 필요한 건 사실인 것 같다. 조금 더 의지를 드러낼 필요가 있다.
여기서 두번째 문제가 걸린다. 그러려면 일단 나의 관심을 여기에 좀더 할당해야 한다. 하지만 사실 퇴근하고 나면 다른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지 않는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생각해보면 내가 부담을 느끼는 또다른 이유는 내가 대안언어축제에서 맡은 일들의 가지 수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 많은 숫자가 시간적 제약이 있는 것들이다. 그러다보니 그 개별적인 일들을 처리하는 것이 스트레스가 된다. 이런 일들도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에 대해 한동안 고민했었는데 별다른 뾰족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지금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맡는 개별 안건의 숫자를 줄이는 것이다. 그러면 개별 안건에 대해 좀더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좀 맡길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자봉들에게 자신이 나선 일이 아니면 내가 맡기거나 하지는 않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일을 분배하는 형태가 어떻게 되건 참여자들에게 일이 나눠져야 한다. 내가 많은 일을 맡을수록 일이 잘 흘러갈 가능성은 오히려 낮아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참여자들에게도 한 사람에게 과중한 일이 맡겨지는 일은 피해야 할 것이다.
이제껏 나름대로 리더 역할을 많이 경험해왔다고 생각했다. 3~4명에서부터 30명 규모까지 많은 경험을 해왔고 성공적이었던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건 내가 열정적으로 활동하면서 내가 다른 구성원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투입해서 잘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금처럼 나 혼자 열심히 한다고 잘 되는 일도 아니고 내가 쓸 수 있는 시간도 한계가 명확한 경우, 이런 상황은 사실상 처음이다. 실상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경영(management) 능력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의 경영 능력일 것이다. 대자봉이라는 역할에 대해 고민이 모자랐었다는 생각이 든다.
집 문제도 요즘 다른 생각을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다. 이 문제는 대체 어떻게 풀어야 할까. 전쟁이냐 평화냐. 문득 전세라는 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이나 일본에는 전세가 없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거긴 나 같은 사람들이 돈 모으기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목돈을 묵혀 놔야 하는 전세가 더 안 좋은 것 같기도 하다. 좀더 pragmatic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