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쓰기 귀찮은 글들.
일기장/2008-06-09
KBS 토론에서 드디어 대의제의 위기 이야기가 나왔다. 이제야 이 이야기가 나오는 건 좀 늦은 감이 있다. 인터넷이 가져온 또다른 혁명으로 대의제의 문제점이 드디어 수면 위로 나온 것이다. 5년에 한 번, 4년에 한 번 1분 동안 주권을 행사하는 것을 두고 민주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 지금처럼 시민들이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시민들의 의견이 그대로 반영되어야 한다. 그게 안되기 때문에 시민들이 2개월 전 총선을 후회하고 3개월 전 대선을 후회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냥 그 때 잘 찍지 그랬어라고 말할 상황이 아니라 이번 사태를 통해서 드러난 정치 제도의 버그를 수정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노무현의 헌정 질서 운운은 문제가 있다. 물론 전직 대통령 입장에서 말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이 되어 있긴 하나 발언 내용으로 볼 때 진정으로 헌정 질서라는 것을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대의제를 채택하고 있는 이유는 과거 인터넷이 발전하기 이전에 여론 수렴 비용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지 지금처럼 정보가 거침 없이 흐르고 이처럼 국민들의 마음이 모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여론을 거부할 명분은 민주주의 안에는 없다. 사실 노무현이 행정적으로는 업적을 많이 쌓았고 정치 문화에 좋은 영향을 많이 끼쳤지만 민주주의라는 점에서는 거듭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도요타 방식을 따른다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아마도 FiveWhy를 통해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을 것이다. FiveWhy를 한 번 해보자.
- 왜 수십만의 시민들이 촛불시위에 나가는가?
- 쇠고기 협상을 비롯한 정부의 활동이 맘에 들지 않아서
- 왜 정부의 활동이 시민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는가?
- 법적으로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투표에서 당선만 되면 권력의 정당성이 확보된다. 고로 지금 시민들이 반대해도 법적으로 자신들의 권력 행사를 막지 못하기 때문에 시민들의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을 덜하게 된다. 여기서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미세하게 입장이 갈린다. 대통령은 어차피 임기가 끝나면 다시 할 수 없기 때문에 굳이 시민들의 의견을 듣지 않아도 상관 없지만 국회의원은 4년 후에 또 선거에서 당선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한나라당은 조금씩이나마 대통령보다 더 국민들의 입장을 반영하려고 하는 것이다.
- 왜 투표에서 당선만 되면 그걸로 권력에 정당성이 부여되는가?
- 법적으로 대의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 왜 대의제를 하는가?
- 직접민주주의를 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크고 기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지금도 그러한가?
- 이 한계점은 이제 완전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깨뜨릴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 지금도 그러한가?
- 직접민주주의를 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크고 기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왜 대의제를 하는가?
- 법적으로 대의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 왜 투표에서 당선만 되면 그걸로 권력에 정당성이 부여되는가?
- 법적으로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투표에서 당선만 되면 권력의 정당성이 확보된다. 고로 지금 시민들이 반대해도 법적으로 자신들의 권력 행사를 막지 못하기 때문에 시민들의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을 덜하게 된다. 여기서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미세하게 입장이 갈린다. 대통령은 어차피 임기가 끝나면 다시 할 수 없기 때문에 굳이 시민들의 의견을 듣지 않아도 상관 없지만 국회의원은 4년 후에 또 선거에서 당선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한나라당은 조금씩이나마 대통령보다 더 국민들의 입장을 반영하려고 하는 것이다.
- 왜 정부의 활동이 시민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는가?
- 쇠고기 협상을 비롯한 정부의 활동이 맘에 들지 않아서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철지난 가정에 토대를 두고 있는 대의제에 있고 해결책은 직접 민주주의 요소들을 더 많이 도입하는 것이다. 당면한 쇠고기 협상도 제대로 풀어야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근본 문제를 해결해야 진짜로 한걸음 전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근본 문제를 해결하려면 또 문제의 일부인 국회의원의 힘을 빌어야 하는 것이 난점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일기장/2008-06-07
촛불시위에 또 갔다왔다. 부산에서 올라와서 서울역에 도착한 게 4시 40분, 집에 도착한 게 5시 30분, 다시 나간 게 6시 10분이니 그냥 서울역 주변에서 놀다가 바로 집회에 합류하는 게 나을 뻔 했다. 괜히 지하철역 뛰어내려오다 발목이나 삐고. 역사의 현장에 가고 싶은 마음에 조급했나보다. 생각보다 심하게 삐어서 처음에 몇 분간은 걷기도 힘들었는데 좀 있다보니 걸을 만은 해서 시청으로 갔다. 시청역에 도착하니 정말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차이 있다. 7시 30분쯤 되자 시청역 주변을 꽉 매우고 광화문까지 사람들이 늘어섰다. 근데 뭔가 뿌듯한 마음이 들 줄 알고 갔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집회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는데 내 마음은 오히려 점점 더 다운되어 갔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도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 화가 나고 안타까웠다.
9시 쯤인가? 행진을 시작했다. 청와대로 바로 갈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고 뒤로 남대문을 거쳐서 갔다. 남대문에 이르자 또 화가 났다. 이명박이 개방한 남대문, 촛불은 물대포로 끄면서 남대문은 왜 못 껐나. 사람들도 명박이가 태웠다를 외쳤다. 행진하는데 보니까 사람 수가 정말 엄청났다. 가다가 중간에 좀 쉬었는데 한 10분 쉬는데도 사람들이 끝도 없이 지나갔다. 오늘은 25만은 되지 않았을까? 8차선 도로에 사람이 서는 걸 세보니까 대충 40명이 서던데 100줄만 되도 4만명이다. 근데 100줄이 아니라 1000줄은 되어 보였으니 정말 엄청난 숫자일 것이다.
전경들이 길을 미리 버스로 꽉꽉 막아놨다더니 과연 경복궁 옆에서 길을 완전히 봉쇄해놨다. 전경들이 시민들하고 부딪히느니 차로 막자고 생각한 것일까. 아뭏든 그렇게 막고 나니 시위대도 별수 없이 그 앞에서 다시 집회를 시작했고 또 일부는 광화문 쪽으로 내려왔다. 이쯤에서 내 발목이 발목을 잡아 결국 난 돌아왔다.
정말 다양한 사람이 집회에 참가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끌고온 가족들, 연인들, 학생들, 할아버지 할머니, 장애인 등등. 오히려 2,30대 남자 청년들이 드물어 보일 정도로 집회는 폭력적이래야 폭력적일 수 없는 인적 구성을 하고 있었다. 이런 사람들에게 좌파니 빨갱이 배후니 하는 말을 뒤집어 씌우다니. 정말 화가 난다. 뉴라이트 인간들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단순히 자기 이익을 위해서 그런 주장을 한다기보다 비판적인 사고 능력이 떨어지는 게 아닐까?
[:세계화의 덫]을 다 읽었다. 정말 한숨이 나온다. 이명박이 가려고 하는 그놈의 신자유주의란 길, 그 길을 따라 갔던 나라들의 처참한 실태가 드러나 있다. FTA가 lose-lose 게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세계화의 순서가 거꾸로 되었다. 정말 win-win 세계화가 이루어지려면 정치적 민주적 세계화가 우선해야 한다. 그 이후에 경제적 세계화가 추진되어야지 지금처럼 경제적 세계화가 우선하면 결국 니 월급 빼고 다 오릅니다가 돌아올 뿐이다.
일기장/2008-05-25
나쁜 일이 어떻게 이렇게 한꺼번에 많이 터질 수 있는지 정말 어이가 없다. 나도 잘못이 있다. 지난 대선, 이명박의 승리가 확실해져가고 있는 동안에도 아무런 저지 활동을 하지 않았다. 난 우리 사회가 이제 꽤 튼튼해져서 이명박이 웬만큼 삽질하더라도 큰 악영향은 주지 않을 꺼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별 부담 없이 민노당에 표를 줬다. 문국현 찍는 사람도 주변에 많았지만 그냥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이미지 보고 찍지 말라" 정도만 말했을 뿐 적극적으로 말리진 않았다. 이회창 찍는 사람들에게도 "이회창은 게임의 법칙을 어겼고 이회창이 되면 민주주의의 후퇴다."라고 주장하면서 "그럴 바엔 차라리 이명박을 찍으라"라는 실수를 범했다. 난 정말 상황이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기업에서의 [:권리를 위한 투쟁]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정치에 대한 나의 활동은 투표 정도 뿐이었다. 나 같은 사람들이 많았고 나보다 더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상황이 이 지경이 된 것이리라.
내가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권일이 덕분이다. 그 전엔 그냥 한나라당은 열라 나쁜 놈, 민주당은 약간 나쁜 놈, 민노당은 좋아하진 않지만 그나마 좀더 옳은 일을 하는 놈 정도로 분류하고 있었을 뿐이다. 지역주의에도 관심 없었고 극우니 보수니 조중동이니 하는 것도 그닥 관심 없었다. 하지만 권일이 덕분에 노무현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고 노무현을 찍었다. 그 때는 사실 민노당 찍으려다가 마지막에 그래도 노무현에 힘 실어주자는 생각에 노무현 찍은 거라 나중에 잠깐 후회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결과적으로 잘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노무현이 집권한 5년 동안 난 정치에 관심을 쏟을 필요가 없었다. 내가 관심 갖지 않아도 별로 크게 잘못되어 가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이명박이 집권한 지 3개월. 어떻게 이렇게 많은 재앙을 뿌리고 다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대운하에서 시작해서 영어몰입교육, 건강보험 민영화, 쇠고기 협상, 고소영 논란, 강부자 내각, 종부세 유명무실화, 과거사 청산 노력 전부 분쇄, 남북 관계 험악하게 만들기, 공영 방송 탄압, 인터넷 포탈 탄압, 촛불 시위 규제. 한 1분 동안 기억나는 것만 바로 적었는데 이 만큼이다. 그러면서 생기는 구멍들은 전부 전시 행정과 립서비스로 메운다. 사실 내가 이명박이 정말 싫은 이유가 바로 전시 행정이다. 서울시장 때부터 실질적으로 시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보다 겉보기에 번드르르한 정책만 해왔다. 대통령이 되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전봇대 하나 뽑으면서 마치 느리고 답답한 공무원을 자기가 다 혁신하는 것처럼 생색 냈지만 그 이후로는 아무 진전이 없다. 입으로만 물가 잡는다고 떠들고 실질적인 대책은 아무 것도 내지 못했고 아무 것도 잡지 못했다. 쇠고기 협상은 다 자기 잘못인 것처럼 사과하는 시늉을 냈지만 구체적인 잘못은 아무 것도 시인하지 않았고 아무런 대책도 내지 않았다. 계속 국민들에게 경제 살리고 규제를 풀고 정부를 기업처럼 효율화시키는 것처럼 선전하는 립서비스들을 하지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이명박이 노리는 것은 오직 하나, 박정희가 아직도 "경부고속도로 하나는 선견지명이 있었지"라는 말을 듣는 것처럼 "대운하"라는 작품을 만들었다고 인정 받고 싶은 것이다. 청계천 하나로 이미지 굳혔듯 대운하로 이미지 정치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이제 나쁜 이미지가 생기는 것들은 언론 탄압으로 막으려 하는 것이고.
문국현마저 부화뇌동하고 있는 것도 좀 충격이다. 난 문국현을 "진보" 쪽으로 분류하는 것은 예전부터 말도 안된다고 생각해오긴 했지만 검증되지 않았을 뿐, 한나라당 같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민주당과의 단일화 논란에서 시작해서 이번 야합까지 보니 가망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문국현을 노무현 후계자라고 했는가. 지금의 노무현은 3당 야합에 분노를 터트리고 뛰쳐나온 노무현, 청문회에서 죄인들을 준엄하게 심판했던 노무현, 바보 노무현이 있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언젠가 검사들과의 토론에서 말한 것처럼 자신의 신념에 따른 삶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말에 무게가 실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리저리 눈앞의 이득만 쫓아다니는 행태를 보이는 문국현이 어떻게 노무현의 뒤를 이을 수 있겠는가.
이제 나도 방관만 하고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목소리를 높여야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다. [:권리를 위한 투쟁]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이자 사회 공동체에 대한 의무다. 금발이 너무해2 엘 우즈의 말처럼 Speak up! 해야 할 때가 아닐까.
어쨋든 아이언맨은 재밌었다. 10살 짜리 소년들의 로망을 실현시켜준 영화.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테러 같은 것만 잘 필터링하면서 보면 정말 재밌는 영화인 듯.
내가 자는 사이에도 많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살수차의 살수, 방패와 곤봉의 무력 진압, 강제 연행. 어떻게 이럴 수가. 오늘은 나도 나간다.
일기장/2008-05-14
창업한 지 대략 3개월이 지났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일을 했지만 한 편으론 뭐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의 종류가 너무 많아서 정신이 없다. 회사 일만해도 고민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일이 매일매일 대여섯 가지씩은 되는 것 같고 개인적인 일들도 여러 개 겹쳐 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할만 했는데 이제 2mb까지 날 괴롭힌다. 이제 몇 개월 채 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 많은 일들을 저질러 놓은 건지. 이젠 쇠고기 문제만 잘 해결해도 고마운 마음이 들 정도다. 사실 지금이라도 2mb가 FTA 재협상하겠다고 나서면 지지율이 팍 오를 텐데 뭐 때문에 이렇게 버팅기는 걸까. 도대체 미국한테 뭐 그리 대단한 걸 받았길래 이렇게도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일까. 내가 이 바쁜 시점에 먹는 것까지 걱정을 해야 한단 말인가. 정말 밉다.
자기 집값 오른다고 한나라당을 찍는 사람들. 그러면 얼마나 잘 살 수 있길래? 미국 축산업자는 미친 소 팔자고 머나먼 한국을 압박하고 미국 군수업자는 무기 팔자고 무장해제된 이라크를 두들겨 팬다. 아아 천민자본주의. 혐오스럽다.
일기장/2008-03-19
이너게임, 내가 유일하게 독서목록에서 10점 만점에 11점을 준 책이지만 사실 이 책이 나에게 큰 변화를 가져다 주진 않았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내가 습관적(?)으로 이너게임을 하는 부분이 많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너게임을 하지 않던 부분에는 적용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난 어려서부터 스포츠를 좋아했는데 생각해보면 스포츠를 상당히 이너게임스럽게 대해왔던 것 같다. 승부욕이 강해서 경기 중에도 많이 타오르는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self1의 간섭은 거의 없었다. 승부욕이 강해서 경기 중에 늘 활활 타오르면서도 승부를 의식해서 즐거움이 떨어지는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승부의 긴장감을 즐겼고 그러면서도 스코어보다 내 플레이에 잘 집중했다. 축구에서는 공을 찬다는 그 느낌이 좋았고 자연스럽게 경기에 몰입이 되었다. 농구도 그 농구공을 만지는 모든 동작이 다 재밌었다. 특히 레이업을 할 때 그 손끝에 공이 걸리는 느낌, 그런 게 좋았다. 탁구나 배구, 족구 같은 것도 마찬가지. 그래서 내가 스포츠를 같이 배운 다른 친구들보다 빨리빨리 익혀왔던 것 같다.
그냥 원래 내 성격 자체가 약간 이런 감이 있다. 원래가 지 잘난 맛에 살다보니 self1이 self2를 비난하거나 평가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런 걸로 의기소침해지는 경우도 별로 없고 자신감을 잃는 경우도 별로 없다.
그렇지만 예외도 몇 가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당구다. 내가 처음 당구를 배운 건 고등학교 때 이미 300을 치던 선욱이한테서다. 이넘이랑 같이 치니까 이넘은 나한테 계속 가르치려 들었고 자기가 시키는 길로 치지 않으면 좋아하지 않았고 계속 내 기술을 평가하려 했다. 그러다보니 당구는 재미가 없었고 거기에 돈 드는 스포츠라는 점도 작용해서 대학 때도 당구를 거의 치지 않았다. 그래서 당구 친 건 한 10번 되는데 아직 30이다. 보통 남자들은 당구 처음 치러 가서 2시간 정도 하면 50으로 올린다고 하는데-_-
합창도 그 중 하나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당시의 합창단은 신입단원이 들어가면 들어가자마자 수많은 to do와 not to do를 매일 매일 들어야 했다. 노래할 때 자세는 어때야 하고 호흡은 어때야 하고 배에는 힘을 어떻게 줘야 하고 목은 어때야 하고. 노래 외적인 부분에도 지각하면 안되고 연습 중간에 쉬는 시간에 말 많이하면 안되고 선배 말 잘 들어야 하고 모르는 사람한테 인사 잘해야 하고 열심히 해야 하고 등등. 게다가 더 암울했던 건 선배들이 말하는 합창의 즐거움이란 게 합창 자체의 즐거움이 아니었다. 그보다 몇 달 동안 열심히 연습해서 공연에 서서 노래를 완성했을 때의 보람과 감동을 더 많이 이야기했다. 그 감동이란 게 노래 자체가 주는 그런 감동이 아니라 "와, 우리가 이런 힘든 과정을 거쳐서 이걸 해냈구나"하는 감동이었다. 그래서 이에 실망해서 선배들한테 문제 제기를 했더니 그에 대한 반응도 비슷했다. 니가 열심히 안해서 그래, 혹은 열심히 해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게 있어, 혹은 미치면 미치고 안 미치면 못 미친다 등등. 난 합창이 이래서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말 단 한 명도.
그런데 오히려 그런 점 때문에 더 합창이란 걸 정복(?)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그리고 점점 나 자신도 self1이 날 지배하기 시작했다. 뭔가 선배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있었고. 그러다보니 합창의 즐거움이란 걸 잘 못 느꼈다. 그러면서도 4학년 때까지 계속했고 어찌어찌 파트장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게 내 인생 최악의 코칭 경험이 되었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다보니 자신 있게 후배들을 가르치지 못했고 심지어 한 사람의 단원으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나마 위안으로 삼을 수 있는 건 그 때의 내 후배들이 나보다 훨씬 더 합창을 잘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남에게 outergame을 강요하진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 스스로의 불만족은 너무나도 컸다.
어쩌다보니 예외 이야기가 더 길어졌는데, 아뭏든 이너게임을 읽기 전에도 이미 이너게임을 해오던 부분이 있었고 또 실패한 경험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게 이너게임을 읽고 나서도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이너게임을 통한 성공 사례를 추가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지난 번 RT 가서 이너골프 이야기를 듣고 읽고 싶어졌다. 실제로 적용하는데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었다. 그래서 이너골프를 사서 읽었는데 생각했던 것만큼은 아니지만 꽤 도움이 되었다. 딱히 일의 이너게임보다 도움이 된 건 아닌데 되새기는데 도움을 줬던 것 같다. 그래서 이너게임도 다시 한 번 읽고 이번엔 무언가 다른 곳에 직접 적용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당구가 떠올랐다. 내가 경험한 스포츠 중에 유일하게 이너게임을 하지 못했던 종목. 다행히 지섭이는 당구를 좀 친댄다. 120이래니까 어쨋든 30인 나보다는 훨씬 잘 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기분도 꿀꿀하고 해서 당구를 치러 가보기로 했다.
당구에는 이너게임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일단은 별 생각 없이 self1을 배제하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그것만으로도 좀 달랐다. 예전에는 누가 길 가르쳐주면 괜히 그리로 치기 싫었는데 지섭이한테 미리 그런 점을 말하고 시작해서 그런 부담 없이 내 맘대로 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달랐다. 그래서인지 첫 포인트를 지섭이가 아니라 내가 먹었다. 그것도 쓰리쿠션으로. 이걸 보고 지섭이가 나 사기 다마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_- 사실 나도 믿기 어려웠는데 그 이후로도 술술 풀려서 10분도 안되서 30을 클리어, 이겼다.
그러고 나니 확실히 이제 30은 넘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근데 사실 내가 당구를 두번째 쳤을 때도 이런 적이 있었다. 대학 면접 보러 서울 올라왔을 때 홍동이랑 같이 쳤는데 그 때는 둘다 초보라 부담 없이 30 놓고 쳤는데 그 때도 한 10분 만에 내가 이겼고 그래서 50으로 올렸다. 그러자 다음 판에 홍동도 10분 안되서 30을 먹어서 둘다 50을 놓고 쳤다. 근데 문제는 이 때, 30을 금방 먹어서 자신감에 충만했지만 둘다 50을 놓고 치자 없던 부담감이 생겼는지, 자신감이 지나쳤는지 1시간이 넘도록 게임이 안 끝났다. 그래서 사실 바로 50으로 올리는 게 약간 걱정이 되었었다. 하지만 지섭이한테 미안한 감도 있고 이너게임을 실험하는데 오히려 제약조건을 주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에 50으로 올렸다.
그러고 다시 게임 시작. 아까보다는 좀 더딘 느낌이 들었다. 지섭이는 이제 몸이 풀렸는지 조금씩 실력이 나오는데 난 아까보다 페이스가 떨어졌다.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부담 없이 치기는 하는데 내가 길을 모르다보니 공 하나 칠 때마다 길을 보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그러다보니 지섭이한테 미안한 느낌도 들고 기분도 좀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집중할 다른 대상을 생각했다. 내가 당구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부분은 무엇일까. 어차피 길을 제대로 계산해 내는 즐거움은 그리 크지 않았다. 계산한 게 맞든 아니든 제대로 치지 못하면 소용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얼마나 두껍게 맞으면 얼마나 경로가 바뀌는지, 얼마나 스핀을 주면 어떻게 바뀌는지에 대한 감이 없다보니 길이란 게 큰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일단은 공을 치는 느낌에 집중하기로 했다. 길도 대강 보고 각도를 대략 잡은 다음엔 목표한 빨간공은 보지 않고 치려는 흰공, 그 중에서도 치려는 지점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공에 맞을 때 큐대의 느낌을 느끼려고 했다. 그러자 삑사리가 사라졌고 공 맞는 느낌이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좀 맞는다 싶어서 이제 관찰 대상을 늘렸다. 이번엔 흰공이 첫번째 빨간공을 맞고 나서 궤적이 어떻게 꺾이는지를 관찰했다. 두껍게 맞추면 어떻게 가는지, 얇게 맞추면 어떻게 가는지, 스핀을 주면 어떻게 되는지 등등. 그러다보니 조금씩 감이 왔고 점수도 하나씩 먹었다. 그러면서 이제 빨간공에 맞은 공이 그 다음에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관찰했다. 여전히 칠 때는 흰공에만 집중했다. 그러니까 이제 꼭 점수를 내진 않더라도 내가 의도한 방향대로 가는 횟수가 점점 많아졌다. 사실 그 전엔 친 결과가 내가 예상한 것과 완전 다르게 어이 없는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얇게 맞춰야 하는데 두껍게 맞춰야 한다고 계산하거나 스핀을 반대로 주거나 하는 등. 근데 이제 점점 예상대로 공이 움직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50점 다 따고 쿠션도 해서 또 이겼다. 두 게임에 총 게임 시간 40분 가량. 나름 괜찮은 성적이랜다. 예전에도 50 놓고 클리어한 적이 있긴 하지만 정말 힘들게 힘들게 했었고 해내도 별로 재미 있다는 느낌이 안 들었는데 이번엔 정말 재미도 있었고 공이 내 맘대로 가는 횟수가 많아지니까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아직 한 번 가지고 뭐라 말하긴 힘들지만 어쨋든 이너게임은 당구에도 먹히는 것 같다.
아직 그래도 일에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지는 잘 감이 안 온다. 어쨋든 이너게임을 좀더 여러 군데에 적용을 하다보면 일에도 적용할 방법이 하나 둘씩 보이지 않을까나.